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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재, 다른 배경

by 구직활동가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며 공책에 스케치하는 사람이 있었다. 실력이 상당했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니 대만이라 했다. 그는 내게 친구를 소개했다. 회색 털이 가득한 곰 인형을 내밀었다. 인형을 친구라 소개한 성인 여성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곧바로 여행 사진이라며 곰 인형과 함께 찍은 모습을 보여줬다. 쓱쓱 몇 장 넘기니 장소는 달랐지만, 둘은 늘 함께 있었다. 곰 인형을 들어 환하게 웃는 표정이 맑았다.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낯설고 친근했다. 배경은 달라도 주인공은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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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 없는 황폐한 바위산에 파란 음료가 담긴 잔이 덩그러니 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단숨에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벌컥 들이키면 안 될 위험을 느낀다. 유혹의 ‘잔’이다. 이브를 시험했던 금단 열매처럼. 사진 한 장에서 성경 이야기를 건져 올렸다.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바다 배경에 푸른 잔이 있다. 편안한 마음이 든다. 배경과 물체 색깔이 비슷해서 그럴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음료를 마시면 바다 위를 걷거나 하늘을 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한다. 벌컥 마시고 싶은 마음이 덜하다. 그저 여유 있게 즐기며 입을 적시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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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신기하다. 사진을 주도하는 역할은 보통 앞에 드러난 ‘주인공’이 하는데, 가끔 배경에 눈이 간다.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다. 드러난 대상만 바라보면 꼭 뭔가 빼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사진을, 또 작품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진은 발견하는 맛이 있다. 천천히 오래 보아야 이미지에 숨은 이야기가 보인다. 사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유가 당신에게도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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