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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Apr 19. 2018

각자의 마들렌, 기억의 맛

짜이와 오스마니아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검색대 앞에 서고, 면세점이 몰려 있는 구간을 지나 보딩 직전까지 계속해서 승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끄는 물건들이 있다. 어쩐지 인천공항에선 늘 바빴기에 여유롭게 그 길을 걸은 일이 없어 기억이 흐릿하지만... 바삐 걷는 와중에도 마스크팩 더미 같은 걸 계속 보았던 것 같다. 한류 열풍이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K-뷰티의 위상은 여전한 것 같다.


  인도에서도 공항에 도착해 공항을 떠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진 히말라야 제약사의 제품들도 그렇지만, 하이데라바드의 명물 오스마니아 비스킷도 뻬놓을 수 없다.


  7대 니잠의 이름이 미르 “오스만” 알리 칸이라서 그가 만든 대학 이름이 오스마니아 대학교인데, 이 비스킷도 어원(?)이 같다. 하이데라바드에 있는 카라치(Karachi)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비스킷인데, 원래 분점도 내지 않을 만큼 자부심이 엄청난 곳이었다. 대신 오스마니아 비스킷을 마트에 유통시켰는데, 그 덕에 나도 이따금씩 먹는 것은 물론 주변인 선물로도 많이 구입하곤 했다.


  최근에는 전략을 바꿔 분점을 부지런히 내고 있는데 잘한 선택으로 보인다. 비슷한 비스킷을 동네 빵집마다 만들어 팔면서 오스마니아 비스킷은 그냥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만큼 오스마니아 비스킷이 하이데라바드에서, 아니 더 넓은 지역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처음에 같이 지내던 언니들이 오스마니아와 블랙 커피의 조합을 워낙 좋아해서 늘상 같이 먹었다. 비스킷은 동그란 모양인데 그 크기나 무게가 얼추 달걀 하나의 그것 정도 될 듯하다. 크기도 두께도 제법 되는데다가 그 밀도도 높아, 양만 보면 비스킷보다는 묵직한 쿠키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두어 개 먹으면 더 당기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게 무거운데도 맛만큼은 담백하다. 옅은 단맛에 그보다 더 옅은 소금기가 느껴지는 정도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들 좋아하니 같이 종종 먹곤 했지만 사실 나는 오스마니아 비스킷이 그리 맛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니들 먹을 때마다 같이 먹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그러니 사실 내가 정답다 느낀 건 비스킷 자체보다는 비스킷을 같이 먹던 시간이었던 셈이다.


박스에서 꺼낸 오스마니아 비스킷


  그러나 왜였을까. 이번 여행에서 에이즈 환자 가정 방문을 하다가 오스마니아 비스킷 맛에 눈을 떠 버린 것이다. 사실 내가 먹은 건 오리지널이 아니라 동네 빵집에서 만든 것일수도 있지만... 아니면 늘 블랙 커피와 먹던 대신 짜이와 먹으니 그 궁합이 찰떡 같아 맛을 더 살려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도 아니면 이 또한 나중에 추억의 맛으로 기억될, 소중한 순간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날 내가 먹은 것은 내가 그 동안 먹은 오스마니아 비스킷 중에 제일 맛있었다.



  그 날 내가 방문한 아이는 사실 내가 잘 아는 아이는 아니다. 처음 아동결연한 20명은 1년 가량 매달 한 번씩 하는 식량 배분 행사 때마다 얼굴 보며 많이 친해졌지만, 다음 연결된 아이들은 내 손으로 문서 작성하고 후원자와 연결까지만 시키고 정작 본인들은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하필 한국 돌아온 시점이 그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올 때도 이 아이들 서류를 다시 펼쳐 보며 혹여나 이름 못 부르는 아이가 없도록 나름대로 준비를 한 참이었다. 그래도 이 아이 경우에는 따로 볼 일이 두어 번 있었던지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슬림 여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 아이는 그중에서도 유독 말수가 적었다. 좋아도 싫어도 미미한 표정으로만 표현을 주로 하곤 했다. 이 달 식량 배분 행사 날에도 한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곧잘 말을 잘 들을 뿐이었다. 이제는 서로 다 얼굴 익힐 만큼 익혀서 다 친구가 된 지 오래이며, 만나면 왁자지껄 놀기 바쁜 또래 아이들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제일 오른쪽 손이 내 후원아동. 자기들끼리 다 좋은 친구가 되어 있다.


  아이와 나이 차가 예닐곱 살은 족히 날 것 같은, 10대 후반의 무슬림 소녀들이 아이를 그래도 착실히 챙기는 게 보였다. 내가 후원하는 아이가 아이 옆을 부지런히 지키고 있어 더욱 유심히 보았다. 내 후원 아동은 사실 아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다. 10대를 천천히 마무리해 가는 단계인데 이 친구도 초승달 같은 미소만 은은히 지을 뿐 말이 유독 없는 편이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미소였는데, 아이 옆에서는 더 활짝 웃으며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이도 작게 웃으며 뭐라 속살거렸다. 의무감으로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정말 아이를 귀여워하는 게 눈에 보여 더 예뻤다.


  나는 그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넣어 사진으로 찍었다. 후원 보고용으로 다달이 사진을 찍는 아이들이지만 그 사진보다 밝은 미소를 짓는 걸 보지 못했다. 같이 있기만 해도 기쁘고 즐거운 걸까. 남들과 약간 거리를 두는, 그래야만 한다고 배우며 자라는 아이들이라 자기들끼리 마음 헤아리는 건 더욱 깊고 고운 듯했다.


  극단주의 무슬림들처럼 “여자가 있을 곳은 집 아니면 무덤뿐이다” 혹은 “남자가 대동한 여자가 아니면 밖을 나다닐 수 없다”고까지 말하는 이는 없다만, 그래도 인도 무슬림 여성들은 자기들만의 내밀한 세계를 갖고 있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많고, 전하고자 하는 극히 일부만을 은은한 미소에 담아 보낼 뿐이다. 어릴 때 왈가닥이던 아이들도 자라면서 차차 엄마의 그런 교육 아래 그렇게 되어 간다. 그래서 무슬림 가정을 방문하는 일은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어야만 가능했다. 히잡을 두르지 않고 진솔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아이에게는 동생이 줄줄이 있었거니와 큰 아파트 한 채에서 삼촌의 가족까지 모두 함께 살고 있어 집안은 복작거렸다. 우리는 다 같이 앉아서 얼마 전에 치렀다는 삼촌의 결혼식 비디오를 두 시간 동안 보았다. 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장미꽃잎을 뿌리는 여자들, 요란하게 북을 치고 춤 추는 남자들, 예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는 꽃더미로 베일을 쓰고 꽃목걸이를 가득 걸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늘 조용한 미소만 짓던 우리 아이조차 환하게 웃고 있을 만큼, 모두가 기분 좋게 웃고 있는 동영상이라 한참 보아도 지겹지 않았다. 나로서는 순서와 의미를 다 알지 못하는 의식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좋아 보였다. 모름지기 잔치라면 풍성해야 맛이라 여기는 그들답게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 같아 보여 좋았다.


  아이의 동생은 옆에서 아이가 후원자에게 받은 선물을 기웃거려 보다가, 네발 자전거를 끌고 나와 한참을 놀았다. 그러다 급기야는 삼촌이 일전에 외국에서 일하다 돌아올 때 사주었다는 오토바이 장난감을 끌고 나왔다. 진짜 오토바이 타듯 앉아서 뭔가 조작하면 앞으로 나가기도 하는, 제법 그럴 듯한 장난감이었다. 큰 맘 먹고 사준 선물이 다 그렇듯 꽤나 질이 좋았다.


  아이는 넓지 않은 거실을 그걸로 뱅뱅 돌다가 우리 간사의 딸이 거기 관심을 보이자 기꺼이 앞자리를 내어 주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짧게 잘라 놓은 머리도 비슷한 두 아이가 서로를 밀어 주고 끌어 주고 같이 타고 하면서 노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웠다. 어른들 모두 짜이를 들이키다 말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른쪽이 장난감 주인. 왼쪽이 손님.


  우리 아이와 그 어머니는 호리호리하고 덩치가 작은데 눈만 커다란 반면, 그 아버지는 풍채가 좋고 눈이 작았다. 배우 고창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아빠는 하나도 안 닮고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그러나 무슬림 남성 특유의 호방한 어투로 우리를 집에 초대하고 아이의 성장을 흐뭇해하며 웃는 그 아버지가 아이 친아빠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부는 재혼 커플이었고, 아버지의 대가족이 사는 집에 어머니와 아이가 들어와 살고 있던 거였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은 암만 봐도 친 가족의 그것이었는데. 가족이 꼭 피로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는 건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그런 걸 따지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곳이라 그 자연스러움이 조금 놀라웠다.


  결국 최근에 부부는 이사를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날 내가 다 보지 못한 다른 가족들과도 그렇게 마냥 자연스럽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고모, 아버지에게는 여동생 되는 쪽에서 자기네 위층이 비었는데 여기 와서 같이 살자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구시가지 한켠의 어느 집에선가 지금도 그들은 둥지 속 작은 새들처럼 사랑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자기들끼리도, 자기들을 찾아오는 손님에게도 기꺼이 그 사랑의 조각을 내어주면서.


  그 너그럽고 풍성한 사랑을 그 날 나는 오스마니아 비스킷에서 맛보았다. 그래서 더 맛있었던가. 갑작스럽게 당긴 오스마니아 비스킷을 더 사 와서 짜이랑 같이 먹어 보았지만 그때만큼 맛있지가 않다. 다만 그 비스킷을 베어 물 때마다 입안에서 종이 공예품이 피어나듯 기억이 사르르 풀어지니 그 맛에 황홀했을 뿐이다.



  “프루스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선 오래 전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에서 삼순이(김선아)의 대사로 유명해졌고, 영화 <러브 레터>에서도 제목이 나오며 그 때문에 동 감독이 후에 만든 <4월 이야기> 배경이 된 서점에도 꽂혀 있었다. 이렇게 로맨틱한 레퍼런스로 몇 번이나 나왔지만 정작 그 책을 다 읽기란 쉽지가 않다.


  성큼성큼 전개되는 내용이 아니라, 찰나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포착해서 레이스 뜨개질을 하듯 자잘한 묘사로 엮어 나가는 문장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관계사로 줄줄 이어진 문장이 얼마나 긴지, 3페이지에 달하는 한 문장도 있다. 문장을 함부로 가르지 않는 문학 번역 특성상, 그리고 짧은 문장이 더 강렬하며 길어봤자 보통 그 정도로는 길게 쓰지 않는 한국어 특성상 이는 번역에 엄청난 제약을 준다. 게다가 그 묘사에 쓰인 관념들이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한 것들이 아니어서, 각주로 달자니 너무 많아 흐름이 끊길 것 같고 독자 몫으로 남기자니 너무 무책임해 보일 것 같은 고민이 된다. 어떤 결과물을 내도 원작의 그 섬세한 맛을 다 옮겨 담기가 어렵다. 그런데 또 이런 책이 7권이나 된다. (번역 전 7권이고 번역하면 더 많아진다.)


  학부 시절 프루스트 수업을 들으며 당시 이 책을 번역 중이셨던(TMI:아직도 번역 중이심) 교수님의 고충을 체험판으로나마 함께 느껴 보았을 뿐, 프랑스어를 전공했어도 프랑스와 연 없이 살아온 나는 당연히 완독을 못 했다.


  그래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읽고, 사람들이 왜 프루스트를 사랑하는지 이해하게 된 부분은 있다. 프루스트 하면 다들 아는 그 장면, 삼순이도 이야기했던 바로 그 마들렌 장면이다.


마들렌에는 본연의 맛에 문화의 맛이 씌여 있는 것 같다. 쓰다 보니 또 먹고 싶다.

  홍차에 적힌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종이 공예품처럼 피어나는 기억, 그 맛과 향 하나로 순식간에 화자는 어린 시절 살았던 콩브레의 저택으로 돌아간다. “오랜 세월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는 첫 문장으로. 그리고 볼에 닿는 베개의 차가운 느낌이라든가 벽에 비춰진 그림자의 느낌 같은 것들을 섬세하게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억의 촉매 역할을 한 게 홍차와 마들렌이었다. 그 때문에 생긴 “프루스트 효과”(혹은 “프루스트 현상”)은 기억이 냄새로 저장되고, 그래서 특정 냄새를 맡으면 당시의 기억이 같이 소환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오래 전 쓰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핸드크림을 우연히 펴 바를 때, 특정 섬유유연제의 포근한 향이 코끝을 스칠 때,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입 안에서 풀어질 때... 그리고 우유와 설탕, 찻잎과 향신료가 고루 섞여 끓은 짜이 냄새가 나고 거기 오스마니아의 담백한 냄새가 살짝 곁들여질 때. 그때 우리는 기억 속의 그 시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과 들려오는 소리들, 그 날의 날씨, 해가 어느 정도 기울어 빛이 내려오고 있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벽에 어떤 낙서가 있었는지, 커튼 자락은 어떤 무늬였고 어느 쪽으로 하늘거렸는지, 손끝에 닿아 오던 소파는 어떤 촉감이었는지... 향이 끌어오는 기억에 잠시 스며들어 시간을 보낸다.


  프루스트에게 홍차와 마들렌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짜이와 오스마니아가 있다. 기억의 맛이, 있다. 오늘 오후에도 향긋한 짜이 한 잔을 끓이고 오스마니아 몇 개를 곁들여 먹으며 기억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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