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찡구의 샤이니 예찬
2008년 5월 25일 데뷔한 나의 아이돌 샤이니는 내일이면 만 15세가 된다. 샤이니가 활동하는 동안 나로호 발사도 하고 누리호도 발사도 하면서 우리나라는 우주강국에 가까워졌고, 타지에서 외롭게 “누난 너무 예뻐”로 아침을 맞던 유학생은 학교도 졸업하고 13년 차가 직장인이 되었다. 그 예뻤던 누난 내가 아니겠지만, 뭐 또 그러면 어떠하겠냐 하며,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며 ( 왜냐면 15주년이 몇 시간 안 남았기 때문) , 나를 위한 글을 작성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샤이니 덕질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구석의 찡구임으로!
최근 찡밍아웃을 하고 다닌 계기를 글을 쓰겠다고 떠올려보니, 아무래도 회사 (전/현 모두 해당) 탓이다. 그러니까 작년 3월, 6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하게 되면서 10여 년 만에 다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전 직장을 그만두고 청주로 내려가기 전까지 중국에서 보낸 대학시절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만 30여 년 이상을 살았으니, 사실상 나는 서울 밖에선 미아인셈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려 했지만 사실 서울 지도 밖으로 항해해 본 적이 없는 초행자이다. 나의 3N년 인생에 포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권에 거주 중으로, 연고 없는 지방으로의 이직 결심이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으나, 전 직장과의 결별하고 내려온 이별사유를 글로 작성하라고 한다면, 당시 나를 질색팔색하게 만들었던 사람들로만 (물론 그 사람들도 나 때문에 질려했을 거라는 것을 안다. ) 100가지 퇴사 사유 작성이 가능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고국의 타지는 외로움을 내뿜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나를 더 쓸쓸하고 씁쓸하게 만들었다. 타지생활 2회 차인 나는 중국 항저우에서 보낸 5년 덕분에 새로운 곳에 적응을 빨리하는 방법을 배운 어른으로는 성장한 듯했
지만, 지금 이 순간을 언제나 살아내야 하는 오늘의 어른이도 친구와 가족이 없는 곳에선 채워야 할 타인이 필요했고 오랜 기간 내 마음 어딘가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외로움의 해제되었다. 내 밑바닥의 감정들이 가장 짙게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내가 내 안에 살아나면서, 그 시절의 왜곡된 추억이 돌아왔고, 그렇게 내 사랑 샤이니 온유와의 거리두기가 자동으로 해제되었다.
전자제품 간의 분업이 성행하던 시절에 나는 지금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iPod Nano4세대 (사실 세대명도 가물가물하지만, 네이버 검색 찬스로 확인해 보니 그는 4세대였다. )로 샤이니와 온유를 만났다. 그 시절엔 삼순이도 30이라고 노처녀를 구박을 받았으며, '연상녀-연하남 커플' 통계적 소수로 취급을 받았다. 그런 시절에 '누난 너무 예뻐'라니.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너도, 노래도 가사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난 너무 예뻐'라고 말해주는 게 중요했다. 누난 내 여자라고 너라고 부를게 하는 동생보다 그냥 누난 예쁘다고 한 네가 좋았고, 정말 그 와중에 너무 우습게도 노래 제목의 문법이 틀린 게 거슬렸다. 알고 있기로는 현재의 국어 문법이 좀 더 개방적으로 바뀌어 너무 뒤에 긍정적인 형용사가 붙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엔 '너무 + 부정적인 형용사'가 문법상 옳지 않아, 라떼 시절의 문법 오류를 피해 가려면 누난 정말 예뻐나 누난 진짜 예뻐가 맞았을 텐데, 누나가 정말, 진짜 예쁘다고 했었으면 빛돌이들이 빛처럼 빠르게 내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았을까 한다. (이 부분에 대한 내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문법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오래라 이 내용이 틀릴 수도 있지만, 오늘의 내가 기억하는 샤이니에 대한 최초 원형은 이러하다. 기억의 왜곡일 수도)
물론,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나는 너무 예쁜 누나는 당연히 아니었고, 지금도 그런 누난 아니지만, 감미로운 목소리로 누나가 예쁘다고 귓가에 속삭여주는 샤이니와 온유가 너무 좋아, 꽤 오랜 기간 나의 아침잠은 누난 너무 예뻐가 물리쳐줬고, 덕분에 지각을 적게 하고 졸업도 해서 돌아왔다. 온유의 목소리를 꽤나 좋아했고 샤이니 팬이었기에 누난 너무 예뻐 이후의 대부분의 곡들은 오랜 기간 iPod에 살아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용돈 대신 월급을 받는 사회인이 되면서 모자란 능력에 눈칫밥을 먹으며 덜 떨어진 사회 초년생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샤이니는 다양한 노래로 목소리에 빛을 내고 있었고, 나의 업무 경력이 쌓여가는 만큼 그들의 노래들도 모여가고 있었지만, 늘어간 샤이니 노래의 무게만큼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길어지면서 샤이니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 덕질하는 걸 보고 직업이 있냐고 의심하시는 분들이 있어 강조 )
매일 퇴근길에 온유의 미니앨범을 듣다 보니, 아무래도 이건 심각하게 열심히 다시 좋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책을 사러 갔다가 온유의 앨범을 사러 간 게 온유앓이 중증의 시발점이 되었다. 앨범깡을 하고 어지간한 영화가 아니면 N차 관람을 하지 않는 CGV SVIP인 내가 비욘라를 보러 여기저기 서울 CGV 탐험을 주말마다 했으며, 맘에 드는 캐스팅이 아니고서야 (사실 다른데 돈 쓰느라 돈이 없어서) 잘 보러 가지도 않는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나를 알게 되었다. 역시 난 그저 그런 돌판 덕후라는 것을.
하필이면 비자를 발급받고 나가야 하는 시기에 온유는 일본 콘서트를 투어를 해서, 2차로 끝내려던 백신을 3차까지 가게 만들었고, 일본 비자 하나 받겠다고 청주-서울 다마스퀵을 부르고, 도쿄로 나를 보내주기도 했다, 하필 추석에!
9월에 다녀온 일본 도쿄 콘서트가 덕질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본래의 자아를 찾고 덕후의 길을 묵묵하게 그리고 빠르게 걷기로. 저 날 들었던 노래들로 인해, 마음에 온기가 가득 찼다. 건강하게 온유보다 오래 살아 그가 서 있는 모든 무대의 관객석을 지키고 싶다는 인생의 목표가 생겼고 ( 즉흥적인 ENFP 답게 인생의 장기 계획이란 게 없는데, 갑자기 생겼다), 청력이 있어 그의 노래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 내가 엄청난 음치라는 것도 퇴근길 노래 따라 부르며 다시금 깨달았다. 봉인된 음치 해제 - 그러니까 떼창 할 때 옆에 음치 노래 안 한다고 구박 노노요 )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매번 실패했던 사녹도 온유 사녹은 성공했다. 하필이면 그때 그렇게 많이 사제 낀 온유의 정규앨범을 청주에 다 두고 서울 가는 바람에, 사용도 안 하는 트위터 어플도 다운로드하여 사녹 가시는 분 중 앨범 하나 빌려주실 분을 구해 (정말 그때 쓴 디엠 보면 구질구질하다 ), 귀한 동행분들도 만났다. 온유 덕분에 올해의 인생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아무래도 장편으로 써야지 않을까 싶다. ( 회사 뒷담 빼고 글을 가장 잘 써질 것 같은 주제 )
이 글은 어차피 15주년 기념 베타 버전임으로 일단 발행을 하고 무한 수정을 할 예정이다. ( 그때는 이 글 부분을 삭제하겠지)
나의 행복이 되어준 샤이니의 15주년을 축하하며
서로가 서로의 행복이 되길 바라고
좋은 노래 불러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의 삶이 엄청 다채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