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에 익숙해지면 친숙해지고, 친숙해지면 편안해진다.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 오랫동안 해오던 일,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 우리는 상황에 익숙해지면, 친숙해지고, 편안해진다. 익숙하다고 모두 친숙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익숙하면 친숙해지게 마련이다. 친숙해진다고 모두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친숙해지면 편안해지게 마련이다. 편안하다고 다 친숙하거나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편안하면 익숙하고 친숙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그렇게 적응하고 순응하는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이른 아침에 깬 여름 아침이었다. 2학기 개학을 한 아들을 태워줄 요량이었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지만, 작은 선행(?)이 힘이라도 될까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얼핏 시계를 보니 오전 8시가 다 되었다. 늦었다. 얼른 챙겨서 가자고 아들을 부추겼다. 아들은 나더러 피곤하니 조금 더 자라고 했다. 굳이 괜찮다면서 집을 나서는데,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8시로 잘못 본 것이다. 아들은 친구와 서점에 들러 교재를 사 간다고 먼저 나갔다.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에 잠시 멍하니 대문 밖 골목을 서성였다. 찌뿌드드한 몸을 한번 풀고는 수돗가에 앉았다.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모아두는 수돗가에 개미가 줄지어 오가고 있었다. 쓰레기를 모아두면 과자부스러기며, 과일 껍질을 찾아 분주히 오가던 개미들이었다. 어제는 쓰레기를 모두 깨끗하게 비워 개미가 갈 길을 잃은 듯 보였다. 늘 깨끗이 치운다고 하는데도 녀석들이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다. 개미가 들락날락하는 구멍을 찾았다. 방역하는 형님이 주신 살충제가 눈에 들어왔다. 구멍에 얼마 남지 않은 살충제를 한번 뿌렸다. 찍, 찍, 두어 번 하고 나니 살충제도 다 떨어졌다. 모두가 당황하여 길을 잃었다. 동에 백백(200마리), 서에 백백, 남에 백백, 북에 백백. 얼핏 봐도 800마리는 넘어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에 개미 떼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다 어느샌가 줄을 지어 천천히 이동했다.
시골에 다녀왔다. 한 달에 두어 번 들르는 고향이지만, 언제나 익숙하고 친숙하다. 불편함 따위는 느낄 수 없다. "니가 누고? 밥 묵었나? 밥을 해야 할낀데. 반찬이 없어 우짜노?" 늘 돌고 도는 엄마의 도돌이표는 익숙한 불편함이지만 말이다. 어머니 방에 개미 몇 마리가 기어다녔다. 형님은 엄마가 과자를 드시고 흘리니 그렇다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엄마는 "내가 흘리긴 뭘 흘리노" 하셨다. 그러면서 "짐승이 하는 일을 우리가 우찌하노"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내가 어찌한단 말이냐"로 들렸다. 명언이다. 인생의 철학을 아는 엄마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불편한 익숙함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참으로 익숙하고, 친숙하고, 편안한 일도, 공간도, 사람도 많다. 아마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은 참으로 익숙하지도, 친숙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일도, 공간도, 사람도 많다. 아마 오래되어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에 익숙해지면서 그 불편함조차 익숙하게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불편함에 적응하고, 순응하도록 강요받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러니까, 세상이 그러니까, 나도 너도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것처럼.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이 하는 일을 내가 어찌한단 말이냐"처럼. 익숙한 불편함은 일상에 함께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