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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Aug 05. 2018

53. 뭉크 미술관

엄마와 딸이 함께 한 유럽 감성 여행

많은 사람들이 뭉크 (Edvard Munch)의 “절규”를 본 적이 있고 또 알고 있을 것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분간할 수 없는, 피골이 상접한 표주박 같이 생긴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림.

어두면서도 강렬한 색조에, 기괴한 주인공의 모습도, 흐느적거리는 듯한 그림의 느낌도 내 취향은 아니었기에 더 이상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내게는 특별한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이 그림이 언젠가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나의 상상을 초월한 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사람들이 다 정신이 나갔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오슬로에 도착하면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작품들로 만들어진 미술관을 가보자는 딸의 제안에 순순히 응한 이유는, 어쩌면 미처 알지 못한 그의 진짜 실체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고가의 미술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을 포함해서.


전시를 접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그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겪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 여동생의 정신병, 이후 일찍이 아버지와 남동생까지 모두 잃고,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평생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고통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예술 혼으로 고스란히 피어난 셈이다. “절규”는 다름 아닌 그의 자화상이었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것일 수 있음에 생각이 미치자 그의 그림은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림뿐만 아니라, ‘사랑’이나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서사 또한 마음에 와 닿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남’인 그에게 ‘여’란, “Like a star that emerges from the dark..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별과 같은” 존재. 하지만, 그에게 사랑 또한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그의 연애는 대부분 불행하게 끝났으며, 이로 인해 그의 그림에서는 성스러운 여성과 함께 여성에 대한 피해 의식을 들어낸 매우 이중적인 작품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죽음을 자연 속에서의 영생으로 표현한 그의 서사에도 깊이 공감이 되었다.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했던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마침내 그가 일구어낸 내면의 평화를 엿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짠했다.


오슬로를 출발해 남동쪽으로 신나게 달리다 보니, 미쳐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의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다다른 스웨덴의 칼슈타드 (Karlstad) 해변.  

사실 이 곳은 거대한 호수 (베네른호 Vanern)였으므로 해변이 아니라 호숫가라 해야 맞겠지만, 우리 눈엔 그저 해변으로 보이는 곳이다.  해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족들과 한가로이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았다.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두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행복이란 바로 자연 속에서의 이런 소소한 일상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전해져 온다.


우리가 찾은 스웨덴의 첫 캠핑 장. 그동안 거쳐 온 노르웨이의 캠핑 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리조트처럼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진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랄까.

아직 밝은 초 저녁이었기에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고 있는데, 눈 앞에서 체크인 데스크 앞의 철문이 막 내려지고 있었다. 우린 그 철문 아래쪽으로 동시에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해서 마감 준비를 하던 카운터의 여자를 간신히 붙잡는 데 성공했다.  

카운터에서 우리가 묵을 작은 캐빈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앳된 여자. 난 한눈에 ‘한국의 피’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생후 2개월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고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사라.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이별하고 이 먼 나라에 까지 와서 살게 된 이 소녀의 해맑은 미소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 같은 마음이 울컥 일고 말았다. 말없이 그녀를 꼬옥 안아 주었다.

'이 곳에서 부디 행복하기를..'




뭉크 미술관
칼슈타드의 베네른 '호숫가'


스웨덴에서의 첫날 밤을 보낸 cabin 7


아침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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