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 변화를 읽어야 좋은 리더가 된다

2025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을 보고서 느낀 점

by 준서민서패밀리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누구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중에 그러한 위치에 있을때 한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할 여지를 두기 위함이다.





리더라는 위치가 참 어렵다. 많은 걸 고민하고 결정하여야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이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리더 역시 그렇다. 따라서 확률, 경험 또는 직감 등에 의존해서 결정을 해야하는데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운 좋은 사람, 경험 많은 사람, 감 좋은 사람들이 좋은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리더의 경험은 독이 될 가능성도 높다. 리더는 본인의 과거 경험을 근거로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게 되는데 그 경험이 너무 오래전이거나 본인만의 편견(혹은 의지)가 담겨있을 경우에 오판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리더의 경우 약간의 아집이 더해져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을 확률도 더해진다. 결론적으로 결과가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겠지만 확률상으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내가 미국에 잠시 있을때, 친해진 미국인 부부가 있었다. 그들이 초대한 작은 파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부부의 지인이 나에게 대학원에서 무엇을 배우냐고 물었다. 난 데이터 관련 공부(정확히는 데이터 사이언스가 중심인 정책학)이라고 하였다. 그 때 대뜸 미국인 남편이 요즘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궁금증보다는 데이터 그게 뭐 중요한데 정도의 약간의 시니컬한 질문이었다. 내가 증거 기반(evidence-based) 정책결정을 위해서라고 설명해줬지만 그는 경험, 직감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내 주장을 귀에 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는 컨설팅 회사의 임원이었고 당시 미국 내에서 데이터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대한 반감이 약간 섞여있었지 않을까 내 개인적으로 추측했다. 그게 거의 4~5년 전 일이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AI시대로 전환되었고 데이터에 근거하여 판단하지 않으면 심하게는 원시인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는 내가 좋아하는 "머니볼"이라는 소설에서도 나온다. (브레드 피트 나오는 영화도 있다) 오클랜드 야구단의 빌리빈 단장은 기존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프런트 직원들과 다른 생각을 갖는다. 데이터 중심으로 효율적인 야구단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버드 나온 컴퓨터 사이언스 전문가를 단장 보좌역으로 데려오면서 데이터 중심으로 선수를 영입하고 퇴출하는 과감한 정책을 펼친다. 당연히 기존 프런트 직원들은 그를 모욕하고 망할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데이터의 승리였다.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현재 모두 데이터 중심 야구를 한다. WAR, OPS, BABIP 등에 따라 선수를 평가하고 기용하고 영입하고 퇴출한다. 예전처럼 방어율, 타율만 보고 야구하는 상황은 모두 옛날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두가 길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2025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이다. 한화와 삼성이 4차전까지 2:2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그 시리즈다. 어제 4차전이 열렸는데 3차전까지는 한화가 2:1로 앞서서 한 경기만 더 이기면 한국시리즈로 갈 수 있는 경기였다. 한화 입장에서는 그 경기에 총력전을 펼쳐서 4차전에서 끝내기를 원했을 것이다.


3차전까지 선발투수를 모두 소모했기에 선발은 올해 고졸 루키 정우주였다. 정우주는 풀타임을 해본 적도 선발로 나서 승리를 거둔 적도 없던 선수였다. 감독은 3이닝 정도 막아주면 다행으로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수가 3.1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틀어막았다. 감독으로서는 본인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이어서 김범수가 0.2이닝, 박상원이 1이닝을 잘 막아서 5회까지 한화가 4:0으로 앞서게 되었다. 이정도 되면 리더는 내 판단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에 더해 나머지도 내 생각대로 되겠구나 하는 약간의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시리즈 생각도 들기 시작할 것이다. 플레이오프 끝나고 한국시리즈에서 어떻게 운영할지까지 생각이 미칠 것이다. (결과가 잘못될 경우 이러한 생각이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6회말이 시작되고 1번부터 5번까지 이어지는 삼성의 좌타 라인을 상대하기 위해 2년차 고졸신인 좌완투수 황준서를 올린다. 아마도 좌타자는 좌투수를 어려워한다는 경험칙에 근거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데이터로 보자면 황준서는 좌타자 상대 타율이 올해 정규시즌 3할 3푼으로 우타자 상대 타율이 2할 2리보다 1.6배 이상 높아서 좌타자에게 약점이 있는 투수다. 홈런도 5개(우타자 2개), 3루타도 3개(우타자 1개)나 맞았다. 결론적으로 황준서는 1번타자에게 3루타, 2번타자에게 볼넷을 주고, 3번타자에게 안타를 맞아 1점을 준 뒤 강판되었다. 점수는 4:1이었다.


그렇게 무사 1, 2루에서 등판한 투수는 김서현이다. 김서현은 올해 마무리투수로 33세이브를 하면서 한화의 뒷문을 책임져준 선수다. 그가 있었기에 올해 한화는 우승경쟁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올해 풀타임 마무리가 처음으로 후반기 27경기 방어율이 5.68이고 전체적인 지표도 안좋았다. 체력이슈와 더불어 멘탈이슈도 있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화가 우승으로 갈 수 있었던 중요한 경기였던 SSG와의 최종전에서 9회말 투아웃까지 잡아놓은 상태에서 투런 홈런 두 방을 맞고 우승을 날려버린 초유의 경험을 한 상태였다. 더불어 4일 전 플레이오프 1차전에 마무리로 등판하여 투런홈런을 맞고 강판당한 일도 있었다. 물론 마무리 투수에 대한 고마움과 한국시리즈로 가기위해서는 이 투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었겠지만 데이터와 최근 상황으로 봤을 때 그건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었다.


김서현은 쓰리런 홈런을 맞고 4:4 동점을 허용하였다. 무리하게 직구를 가운데로 세 개 던지면서 홈런을 맞았다. 그러면서 게임은 넘어갔고 결과적으로 4:7로 패하였다. 에이스인 폰세가 6회부터 몸을 풀고 있었는데 결국 게임에는 나오지 못해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타력이 강한 삼성에게 4:0 점수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는데도 리더의 아집과 더불어 경험과 직감에 의한 잘못된 판단이 패착이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코치들도 선수들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KBO 역대 세 번째로 1,000승을 달성한 노감독에게 누구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한화 현 감독이 KBO에서 마지막으로 감독을 했던 해가 2018년인데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당시 감독으로 신화를 이뤘지만 벌써 17년이 지난 때다. 경험과 직감으로 이뤄낸 1,000승이 본인에게는 큰 자산이자 영광이겠지만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데이터가 아닌 개인의 판단들은 그저 개인 서가에 전시된 빛바랜 상패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과감히 떨쳐내고 데이터를 읽고 주변 코치들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야 승리할 수 있다.


플레이오프 3차전 문동주 케이스처럼 폰세에게 4이닝을 맡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겸손하게 플레이오프부터 완벽하게 이기고 한국시리즈를 생각하면 어땠을까. 김서현은 미안하지만 내년에 다시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서랍에 넣어두고 팬들이 원하는 승리를 위해 데이터를 확인하고 코치들 선수들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감독은 김서현이 홈런 맞을 때 김서현 표정을 살피지말고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 얼굴을 봐야 한다. 문동주가 3일만에 나와서 4이닝 역투를 했고 외국인 폰세는 구원투수로 몸을 푼 것이 김서현 하나 살리자고 다 날아갔다. 김서현이 어제 여지없이 홈런을 맞은 그 순간 그라운드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본인과 같이 김서현 살려야하는데 같은 안이한 생각을 할까. 비디오가 있다면 그 선수들 얼굴을 보면서 팀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것이 감독 본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팀퍼스트는 구호만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리더는 그래야 한다. 그래서 리더는 어렵고 좋은 리더는 더더욱 어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