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가 곧 삶의 종착지를 결정한다. 연극 '해리엇'을 보고
향수가 번지는 계절이 왔다. 높디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선뜻 그럴 순 없다. 자꾸 떠나고 싶은 이유는 '방랑벽'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현실에 만족을 못해서일까. 여러 생각이 들지만 살고 싶은 삶, 머물고 싶은 동네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인생이 익어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이모가 연출하신 연극 '접근성 높은 연극 : 해리엇(원작 한윤섭, 각색/극작/연출 김지원)'을 보고 왔다. 해리엇은 175년간 고향인 갈라파고스 섬을 가슴에 품고 동물원에서 살아온 바다거북 해리엇과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다. 원작은 창작동화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좁디좁은 동물원, 그 안의 우리 안에 갇혀 살아낸 동물들의 삶과, 해리엇의 탈출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175년이란 긴 세월을 인간이 만든 동물원에 갇혀 지냈던 해리엇. 동물원은 해리엇과 친구들을 억압한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해리엇의 마음 속에는 늘 고향인 '갈라파고스 섬'과 푸른 바다가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동물원에 오지 않았다면, 해리엇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해리엇을 낯선 곳으로 데려왔다.
힘든 현실에서도 해리엇은 불평하거나 그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들을 돌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려 노력한다. 만약 나였다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곳에 갇혀야 하는지, 왜 본성을 짓눌러서까지 인간에게 사육당해야 하는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병이 나 이내 삶을 마감하지 않을까.
돌아가고 싶은 천국 같던 고향 갈라파고스섬. 어쩌면 그곳의 추억을 잃지 않았기에 해리엇은 175년이라는 시간을 인내로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탈출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175년의 시간을 온전히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해리엇의 삶이 훌륭하지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에 그 누구도 해리엇의 탈출을 돕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해리엇을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었다. 살고 싶은 삶,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삶을 불평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어디에 있든 올바른 삶의 태도만은 변치 말자고. 그럼 변치 않는 태도와 자세가 결국 우리를 천국의 고향으로 데려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