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가는 날이면 삼촌이 없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그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책상 위에 조용히 놓여있는 일기장에는 삼촌의 순수한 사랑이야기와 여러 감정들이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적혀 있었다.
삼촌은 어린 조카인 내가 자신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문장들을 읽을 때 나는 나쁜 짓을 저지르는 듯한 죄책감을 느꼈고 어느 순간부터 더는 삼촌의 일기를 읽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 숙제가 사라진 어느 날부터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누군가 내 진심이 담긴 글을 몰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묻어둔 문장들은 글이 되지 못한 채로 쌓여갔고 나는 점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2015년 9월 어느 날, 우연히 ‘브런치’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마음 깊숙이 머물던 생각과 수많은 감정들을 일기나 단편 소설처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맴돌던 생각과 감정들, 내 안의 작은 틀에서만 머물렀던 내가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브런치 작가’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글들을 마주하며 나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와 퇴근 후 치맥을 하고 있었던 평범한 저녁.
그날은 다른 날과 달리 내 글의 조회수가 9천을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기쁨과 설렘 대신 낯선 두려움을 느꼈다. 한동안은 글을 쓰기가 두려워졌다.
무엇이 나를 겁먹게 했을까.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아마도 그때의 두려움은, 내가 작가로 살아갈 기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글이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진심을 드러낸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론 두렵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하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 더 나 자신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작은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