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Golden Circle_ 게이사르, 굴포스, 싱벨리르 국립공원
하루를 건너 뛰어 여행사 단체 버스 관광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왜냐면 이 글은 일인 아이슬란드 여행자에게 촛점을 맞춘 글이기 때문이다. 보통 3~4명 이상 그룹으로 여행을 할 때는 렌트카를 이용한다. 하지만 일인 여행을 시도할 경우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나 운전 미숙 때문에라도 단독 렌트를 감당하기가 쉽지는 않다. 더구나 여성 혼자 일 경우는 아무래도 더 부담스럽다. 이럴 때 대안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이나 버스 패스 또는 히치 하이킹을 이용하는 것이다. 배짱이 두둑하거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느정도 가능한 분이라면 히치 하이킹도 시도할 만하다. 장점은 제일 저렴한 이동수단이라는 점, 단점은 자신의 일정에 딱 맞는 운전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일정이 빡빡한 단기 여행자는 시간활용을 효율적으로 못한다는 점. 여행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시도할 만하다. 승용차나 렌트카 여행자들이 자리에 여유가 있다면 기꺼이 히치 하이킹에 응해 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로 치안과 시민 의식이 높은 나라가 아이슬란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모두 아이슬란드인도 아니고 혹여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기 보호가 가능한 분들만 도전하시길 권한다. 그래서 첫 아이슬란드 여행에서는 만만한 여행사 버스 투어를 신청했다. (레이캬비크에서 주로 이용하게 되는 양대 여행사는 레이캬비크 익스커전과 그레이 라인이다. 둘 중에서는 후발주자인 그레이 라인이 더 싼 편. 어떤 투어를 선택하냐에 따로 그 외에 다양한 여행사가 있으니 시내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나 여행사에서 상담 후 결정해도 된다.)
내 경우 제일 많이 알려진 레이캬비크 익스커전(항공사 아이슬란드 에어와 연결된 여행사)을 통해 공항셔틀버스를 예약하면서 골든써클+폰타나 온천 투어, 고래+퍼핀 투어, 블루라군 투어를 함께 예약했었다. 1) 하지만 대부분의 숙소에서 투어 신청도 받기 때문에 첫날 도착해서 정보를 얻은 후에 신청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투어회사에서 예약한 투어 시간에 맞춰 숙소로 픽업을 와준다. 보통은 투어 시간 30분 전에 숙소 앞에 나가 있으면 해당 투어사 셔틀 버스가 온다. 셔틀을 타고 투어사에 도착한 후 예약권을 정 티켓으로 교환하고 다시 해당 투어 버스로 옮겨 타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시작하는 식이다.
여기서 이 전 날을 건너 뛴 이유를 고백하자면 여행사의 픽업 셔틀을 놓쳤기 때문이다. ㅜㅜ 30분 전에 나와 있으란 예약권의 문구를 봤음에도 '설마, 예약자가 있는 걸 알텐데, 가겠어?'란 마음에 화장실에 간 새 버스가 왔다 떠났었나 보다. 보통 숙소 리셉션에서 여행사 관련 응대도 하길래 물어봤더니 '셔틀 못봤다고, 기다려 보라고' 해서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 기다리다 지쳐 여행사로 전화를 부탁했더니 이미 그 날 투어 버스는 떠났고 난 울상이 됐고 리셉션 직원은 정말로 미안해 하고, 뭐 그런 상황이 된거다. 그래도 관광업의 나라 답게 바로 예약일자 변경해 줘서 그 다음날 골든써클 투어를 하게 됐다. 물론 추가 차지 같은 건 전혀 없다. 사실 어느 정도는 내 잘못도 있는데 이런 면에 있어서 상당히 너그러운 나라다. 날씨 등의 이유로 투어가 취소되면 예약한 루트(이메일이나 해당 숙소 등)로 연락을 주고 일정 변경을 해준다. 특히 오로라 투어의 경우 못보면 무료로 다음 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
어쨌든 아이슬란드에 온 모든 관광객은 꼭 가는 골든써클(간헐천 게이시르, 폭포 굴포스, 싱벨리르 국립공원)이란 장소에 나 역시 발도장을 찍고 왔다. 안타깝게도 전날에 비해 이날은 온종일 비가 오락가락해서 놓친 버스가 더욱 아쉬웠던 하루. 하지만 여행의 묘미인 친구 만들기에 성공해 그나마 덜 외로웠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다른 여행객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이런 것도 일인 여행의 묘미다. 이날의 동지는 중국에서 유럽여행을 온 20대 청춘, Luo. 덧붙이자면 아이슬란드에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정말로 많다. 그러니 고요한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꾼다면 이들이 주로 출몰(?)하는 장소와 타이밍을 피해서 여행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Luo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시끄러운 중국인이 아닌 조용하고 상냥한 친구였다. Luo도 일인 여행자라 우리는 서로의 지난 여행지를 이야기하고 각자의 사진도 찍어주며 친해졌다.
당일 버스의 투어 코스는 '토마토 재배 하우스 견학-게이사르-굴포스-폰타나 온천-싱벨리르 국립공원'이었다. 하우스 투어는 오전에 식사 못한 사람들에게 간단한 요기도 하게 할 겸 끼워넣기 관광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Luo가 산 방울 토마토를 맛보니 싱싱하긴 했다. 어쨌든 여기도 단체 관광은 이런 깍두기 투어를 같이 하는 모양.
게이사르는 오자마자 환영하듯 바로 수직 상승 폭발해 주시고! 주의 표지판을 보니 물온도가 80-100도라고 한다.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난 그들을 '기다림'이라는 주제로 찍었다. 폭발 전의 게이사르 Strokkur(이 일대에는 다양한 이름의 간헐천들이 곳곳에 표지판을 붙이고 있다.)는 블루라군처럼 우유빛 쪽빛이다. 물론 김도 아주 무럭무럭 난다. 자꾸 듣다 보니 이 폭발음이 뻥튀기 소리 같아 정겨웠다. 나중에 파란 하늘로 오르는 천연 분수 같은 게이사르를 보고 싶어 다시 왔는데 그 날도 날씨가 우울했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실을 알게 됐는데 예전에 게이사르란 말을 탄생시킨 원조 Geysar(비버리가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화가 된 것과 마찬가지)는 지금은 폭발을 거의 하지 않고 현재는 Strokkur가 관광객들이 주로 보게 되는 간헐천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번째 방문했을 때는 뒷 편에 있는 원조 Geysar에도 들렀었다.
다음은 굴포스 폭포.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과수 폭포보다 멋졌다. 왜 이게 세계 3대 폭포에 안드는지 모르겠다. 한 편에 마블링 된 지면은 페루 살리네라스 같고 폭포의 한 편은 온천물인데 반대 편은 얼어서 터키 파묵칼레의 하얀 암석 같다. 작은 물웅덩이는 얼고 큰 폭포는 모여서 뜨거워 계속 흐르는게 아닐까 짐작. 다시 방문했을 때는 여름이라 파묵칼레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주변이 목초지처럼 파릇파릇해져 있었다. (윗 사진의 마지막 장이 여름의 굴포스.) 어쨌든 어느 때 봐도 포스가 느껴지는 폭포였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에서는 폭포를 'Foss'라고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영어의 'Force'와는 어원이 다를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이후로도 계속 느낀 점은 뭔가 안전 장치는 주의팻말이 전부라는 점. 시민의식이 뛰어나서 감히 모험을 시도하는 이들이 없는건지, 자연을 훼손하기 싫어서 인간적인 장치들을 안하는 건지, 그 둘 다 인지 모르겠지만 아시아나 남미 쪽이랑은 또 다른 문화다. 무엇보다 좋은 건 국립공원 입장료 같은 거 전혀 없다. 발품만 들이면 이 천혜의 자연 풍광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
Luo 왈, '온천은 엄청 뜨거운데 날은 왜 추운지 모르겠다.'해서 '날씨가 추워서 우리에게 온천이 필요한 거!'라고 말해놓고 뭔가 숨어 있는 진실을 발견한 듯 혼자 흐뭇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엽서처럼 폭포 위에 무지개가 떠 있길 바랬는데 비가 와 무지개 없는 굴포스에 또 2프로 아쉬웠다. 점심식사는 폭포 아래 관광버스 주차장 쪽에 있는 휴게소 겸 선물센터 같은 곳에서 하게 되는데 여기서 사 먹어도 되고 미리 도시락을 싸왔다면 간단하게 차 종류만 사서 함께 먹어도 된다.
약속한 시간까지 관광버스로 돌아와 골든써클의 마지막 장소인 싱벨리르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온천까지 옵션으로 신청한 이들은 중간에 폰타나 온천에서 내리고 나머지는 싱벨리르로 직행. Luo는 골든써클만 신청해서 버스에서 작별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우연한 만남의 기회들이 연속되는게 또 여행의 묘미 아닌가.
마지막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 판이 만난다는 싱벨리르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폰타나에서 하차했던 우리는 다시 오후 골든써클 투어 일행과 합류하는 버스를 탔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옵션 투어를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공원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는데 먹구름이 가시지 않아 푸릇푸릇 함을 못봐 역시나 아쉬웠다. 전망대에서 아이스크림 콘 닮은 산들과 호수와 들판 파노라마를 보고 저 밑 두 판들이 지나고 해마다 그 거리가 멀어진다는 협곡 속을 거닐다 추워서 버스로 되돌아 왔다. 가이드는 이쪽은 유럽이고 저쪽은 아메리카라고 두 대륙을 왕래해 보라며 농담을 했지만, 난 이미 터키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몇 분 간격으로 지나친 일인이라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자연의 장엄함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월터 미티가 보드를 타던 모습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세계최초의 의회가 있었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다는 이유 등이 없어도 가 볼 만한 장소였다. 여름에 갔을 때는 더 아래 쪽까지 내려 갔었는데 물빛이 정말 예술이었다. 지중해의 녹색 빛에 빙하가 녹은 푸른 빛이 섞인 영롱한 옥빛이었다.(나중에 찾아보니 옥사라 강 쪽인 듯 하다. 옥빛이라 '옥'인가? 옥하니 떠오르는데 싱벨리르 공원 전망대에 있는 아이슬란드 지도에 표시된 산 중 'Ok'이란 이름의 산이 있다. 오케이가 아니다 '옥'이라고 읽는다. 이 산도 옥빛일지 궁금하다.) 공원 인포메이션 센터 안에서 가이드 영상도 상영하니 시간이 되면 한번쯤 봐도 괜찮을 듯 하다. 오후 5시에 문을 닫으니 염두에 두시길. (관광객 없는 폐장 무렵에 갔다가 난 인포센터에 갇힐 뻔 했다;; 참고로 인포 자판기 커피는 정말 맛이 없으니 정 춥지 않으면 권하지 않겠다. 레이캬비크 시내 음식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가 더 맛있다.)
투어 이후, 호스텔에서 신문을 보다가 핑크 게이사르에 대한 기사를 봤다. Marco Evaristti라는 예술가가 게이사르에 염료를 넣어서 게릴라성 이벤트를 벌였다는 기사였다. 이걸 예술로 봐야할지 자연파괴로 봐야할지라는 논지의 글이었다. 되도록이면 자연에 인공의 손을 닿지 않게 하려는 아이슬란드인에게는 일종의 테러로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오기 한 달 전쯤 이제 막 봄일 4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조금 더 일찍 와서 기회가 닿아 봤으면 더 좋았을 걸, 이란 욕심이 일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봄날의 핑크 게이사르라,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솜사탕 빛 물빛은 자꾸 보면 질릴 것도 같았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일 때 제일 아름답다는 사실을 이후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끊임없이 느꼈으니까.
관련기사
http://icelandreview.com/news/2015/04/25/artist-colors-icelandic-geyser-pink?language=en
주1) 이 글에서 언급한 여행사 레이캬비크 익스커젼의 투어 프로그램 링크
https://www.re.is/day-tours/the-golden-circle-fontana-well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