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레이캬비크 시내 관광
아이슬란드의 날씨는 정말로 예측불가다. 분명 이메일로 날씨가 안좋고 파도가 쳐서 배타고 나가는 Whale Searching (고래 투어)가 연기됐다고 했는데 호스텔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왜 이리 화창한가. 사실 아침 식사 할 때는 먹구름도 끼고 바람도 꽤나 부는듯 했다. 그런데 투어도 취소됐고 호스텔 근처 전망대인 Perlan에나 가볼까 싶어 어슬렁 거리며 나가보니 그새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동동. '이건 뭐지?' 싶다.
아이슬란드에 처음 방문하면 우선은 너무나 경이롭고 신비로운 자연 환경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에 놀란다. 게다가 바람은 어찌나 자유자재로 불어 제끼는지! 이곳에서는 풍향과 풍속이 아주 중요한 일기예보 지표 중 하나다. 분명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 같았는데 5분 후에 해가 반짝 날 때도 있고 이 편은 하늘이 새파란데 산 하나 너머는 새까만 구름이 가득 덮여 있기도 하다. 이 나라는 호랑이가 하루에도 열두번 장가를 가나 보다. 또 실내에서 보면 완연하게 푸릇푸릇하고 정말 좋은 날씨인데 속아서 봄옷이라도 입고 나가면 찬 기운이 온 몸을 훑기도 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런 날씨를 '윈도우 웨더(Window Wheather)'라고 칭한다.
예정에 없는 이틀치 투어를 하루에 몰아 하게 생겨서 레이캬비크 시내를 온전하게 하루 내내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찬기운이 돌지만 5월의 레이캬비크는 봄이다. 바람 많은 이 고장의 주제가스러운 소라 언니의 '바람이 분다'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정처 없이 시내 이 끝에서 항구 저 끝까지 걸어 다녔다. 그렇게 강제(?) 레이캬비크 자체 투어를 하며 만났던 관광지들을 소개해 본다. 나는 봄의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노을을 찾아 의자를 옮겼던 어린왕자처럼. 가는 곳마다 봄바람이 맞았다. 그림자도 낮게 깔린다. 길게 늘어진다. 아이슬란드는 백야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이캬비크는 '연기의 만'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도시다. '연기'는 수많은 간헐천과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를 뜻하는 것일 테고 '만'은 항구도시란 뜻일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탄생에 얽힌 설화나 지리적 생성에 대한 언급에도 바다 속에서 마그마가 폭발해 불의 바다 가운데서 솟아나 만들어진 섬이라고 칭하고 있다. '연기의 만'이라니 그런 나라의 수도다운 이름이다. 하지만 거창한 이름에 비해 레이캬비크는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더 크다. 해가 긴 여름에는 끝자락 등대가 있는 그로타 섬에서 구 항구와 주요 관광거리인 Laugavegur 거리,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시청 옆 트요르닌 호수를 거쳐 BSI 버스정류장 방면(혹은 Fly버스중간기착지, 국내선 공항 쪽)의 Perlan 전망대 일대의 숲길과 모형 게이시르까지 걸어서 둘러 볼 수 있을 정도다. 체력이 된다면 Gray line 여행사 버스 정류장 방면(혹은 캠핑장 부근)인 보타닉 가든 및 동물원까지 돌아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여유롭게 이동하려면 시내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참고) 레이캬비크 시티 가이드북 선정 시내 관광지 10선
1) 할그림스키르캬 교회는 관광안내소와 주요 쇼핑점 및 음식점, 카페가 있는 Laugavegur 거리를 걸으며 함께 관광하면 좋다. 주일 2시에는 영어 미사와 함께 짧은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예배니까 당연히 무료입장, 매 예배시 성찬 진행.) 그리고 여름 특정시즌에는 주중에도 오르간 음악회를 연다. 입장권은 당일 구입 가능하다. 교회 전망대 관련 정보는 매거진 1편 참고. (입장시간은 일몰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행사가 있으면 입장 불가.)
3), 9), 4) Laugavegur 거리의 끝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Gray line 인포센터와 Lakjartorg 버스 정거장이 있다. 이 정거장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3) 트요르닌 호수와 많은 새떼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주말에는 시민들과 아이들이 한 손에 보너스 빵봉지를 들고 오리와 거위들에게 먹이를 준다. 그래서 꽃청춘에서 비닐봉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얘네들이 열광(?)을 했던거다. '비닐 봉지소리=식량'으로 인식된다. 나도 보너스에서 장보고 호수에 갔다가 습격당할 뻔 했다. 호수 뒤편으로 다리를 건너면 이어지는 건물이 9) 시청이다. 무료 개방이고 레이캬비크 관광안내지와 전시물이 있으니 잠시 들어가 둘러보면 좋다. 시청 건물 뒷편으로 또 다른 번화가가 4)이다. 여기에도 핫도그 가게와 많은 펍과 레스토랑이 있다.
5),6),7),8) Lakjartorg 버스 정거장에서 한쪽 편이 시청과 호수 방향이라면 그 반대편으로 6) Harpa가 보인다. 건물 디자인 자체가 멋지니 들어가서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유리창과 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1층에 디자인 및 아트샵이 있고 꼭대기 층에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 음료 메뉴는 생각보다 가격이 높지 않으니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렌지맛 핫쵸코렛 강추합니다. 오픈시간은 오후 4시경.) Harpa 방향으로 차도를 건너가면 바다를 따라서 산책로가 있다. (길 건너기 전 삼각주처럼 있는 주차장 용지 쪽에 그 유명한 핫도그 월드(?) 가게가 있다.) 빌딩들이 많은 신시가 쪽으로 걸으면 8) 썬 보이저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바이킹을 형상하는 조각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바닷새들이 주변에 앉아 있기도 하다. 핫 포토존 중 한 곳! 하르파에서 옛 시가지 쪽으로 걸어가면 창고 같은 건물 외관에 5) KOLAPORTID라고 써 있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토, 일 주말 11-5시에 연다.) 계속 걷다 보면 그라피티가 그려진 건물들 사이에 시립도서관(도서관 6층은 사진 전시실이다. 관람 무료.)을 지나 7) 구 항구에 도착하게 된다. 이 쪽에 고래 투어 등 배를 이용해 하는 투어사들이 있고 구 항구 끝쪽에 Saga 박물관과 오로라 박물관 등이 있다. 랍스터 수프로 유명한 씨바론도 구 항구 쪽에 위치한다.
2) Perlan은 또 다른 전망대로 유명한데 꼭대기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360도 회전뷰를 자랑한다. (좌석에 앉아 있으면 유리창을 통해 주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꼭 레스토랑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360도 전망대는 누구나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회전뷰는 볼 수 없다. 사진 속의 돔 안쪽이 레스토랑이고 그 밖으로 360도 전망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카페테리아가 있다. 운이 좋으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근처에 조용한 숲길이 있고 숲길을 지나면 모형 게이시르와 공동묘지(유럽식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가 있고 전망대에서 구항구 건너 편에 위치한 바다에 면해 있는(이 쪽이 오로라가 잘 보이는 방향이다.) 경비행장과 국립대학교 방면을 볼 수 있다. Perlan은 레이캬비크 시내 중심가에서 약 30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니 버스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혹시나 Bus Hostel에 묵게 된다면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이다.
참고) S버스 노선도 및 시간표 (상단의 레이캬비크 시내노선 참고)
http://www.straeto.is/english/plan-your-journey/schedules-and-maps
아이슬란드는 자연이 워낙에 압도적이라 상대적으로 도시인 레이캬비크 관광에 대한 관심이 적고 정보도 많지 않지만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즐길거리가 꽤나 많은 곳이다. 보통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면 도시의 문화 생활을 포기해야하는 아쉬움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곳은 도시문명의 혜택과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삶이 가능한 곳이다. 집 밖으로 몇 걸음 걸으면 뒷산이 설산이고 앞 뜰에 오리와 백조가 거닐고 동네 산책하다가 냇가에서 물고기 구경하고 조금 더 걷다보면 온천지대(라바지형이라고 부른다.)나 바다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작은 도시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십여개고 서점은 거리마다 있으며 주말에는 수많은 연주와 공연이 있고 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가능하고 Harpa(예술의 전당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라는 공연예술장이 랜드마크로 버티고 있다. 내게는 아주 이상적인 도시였다. 말그대로 Perfect City!
5월의 어느 봄날, 하루 종일 레이캬비크 여기저기를 둘러봤는데도 황혼녘은 아직이었다. 왜 이리 피곤한가 했는데 아홉시가 다 되가는데도 해가 안지고 지평선에 걸려 있다. 해가 길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쏘다니니 피곤할밖에. 윤석중의 시에서 넉 점 반을 외치던 꼬마 아이처럼, 해가 꼴딱 져서도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끝없는 오후와 저녁이 이어졌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아이슬란드였다. 태양은 오랜 기간 머리 위가 아니라 측면에서 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표지사진 속 교회의 시계탑을 보아라. 이것이 9시 15분 전 하늘이다. 오전이 아니다. 저녁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은 초현실적 그림이 아니었다. 레이캬비크에서는 현실이었다. 백야가 막 시작된 레이캬비크의 거리를 걸으며 내 여행도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
덧. 저번과 이번 편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레이캬비크는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도시라 한 편에 담기가 힘들었습니다. 봄편 마감하고 이제는 여름편으로 넘어갑니다. 그 전에 아마도 못다한 레이캬비크의 숨겨진 명소 소개(오로라 명소도?) 겸 맛집 소개가 부록편으로 들어갈 듯 해요~
[아이슬란드 1인 여행자] 전편 모아 읽기
0. 아이슬란드, 물기 어린 나라
1. 아이슬란드의 봄은 가을하늘빛
2. 봄엔 핑크 게이사르?
부록_ 아이슬란드 맛 탐험
3. 밍크고래와 스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