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있어야 할 곳으로 가게 돼 있어
The two most important days in your life are the day you were born and the day you find out why. - Mark Twain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틀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알아낸 날이다
- 마크 트웨인
덴젤 워싱턴의 영화는 늘 우직한 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악의 역할을 맡았을 때라도 개연성을 한 번쯤 생각하게 됩니다. <이퀄라이저 시리즈> 역시 한 남자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중심을 두고 바라봅니다.
삶의 어느 한 시기에 도착하게 되면, 지난 시간에 대한 약간의 회한과 앞으로 살아야 할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을 하는 시기가 옵니다. 특수 요원이었던 맥콜(덴젤 워싱턴), 과거의 자신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그였지만 그 가슴 밑바닥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만큼은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 애쓰는 보통의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일들로 힘들어할 때 이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새벽시간, 고질적인 불면증을 떨치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알리나 역시 외면할 수 없는 모습에 선뜻 도움을 자처합니다. 알리나와 마일스, 알타몬테에서 만난 주민들까지 모두 선하게 자신의 삶을 꾸리며 살지만, 그 사이사이 끼어 구차하고 비루하게 기생하는 더러운 삶들은 생각보다 힘이 강력하고 매 순간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특수요원이었을 당시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잘못된 행동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는 극단의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맥콜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훨씬 더 더러움이 폭넓게 퍼져있고 선의의 마음들이 평화를 느끼며 지내기란 불가능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노력 -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 - 그것이 그의 분노의 시작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종일관 덴젤의 표정은 눈빛을 제외하고 큰 변화가 없습니다. 한때 서늘했다가 또 한때 잠시 미소를 띠며 따뜻했다가, 분노에 이글거렸다가, 차갑게 냉혈한이 되는 그의 빛나는 연기는 전 시리즈를 통해 한 인간의 삶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많은 이야기를 겁니다.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분명 액션 영화지만, 여느 액션물과는 많이 다릅니다. 물론, 잔인하고 폭력적입니다. 하지만, 잔인함과 폭력성보다 훨씬 더 깊은 슬픔과 커다란 쓸쓸함이 그 안에 있습니다. 끔찍한 그 모든 것들이 '인생'이란 이름 속에서 휘몰아칩니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남의 삶에 간섭해도 되는가 - 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 보지만 본능적으로 옳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그래도 한 번쯤 올바른 것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지만 역시 기생하는 삶에서는 그런 배려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맥콜 인생의 가장 따뜻한 순간은 수전과의 만남입니다. 맥콜이 인간적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상대는 수전뿐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훈훈한 조언과 격려, 강력한 신뢰의 든든함이 있었기에 맥콜에게 수전의 죽음은 동료의 죽음 그 이상의 큰 충격을 몰고 옵니다. 석연치 않은 동료의 죽음과 또한 한때 동료였던 자들의 무자비한 죽음 사냥들을 보며, 그 잔악함의 구렁텅이를 빠져나오려던 맥콜은 다시 그 안에서 겨우 가라앉아 있던 잔인함을 끄집어냅니다. 우연히 만난 벽돌공의 연금을 되찾아주기 위해 시칠리아에 들렀던 맥콜은,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착한 사람들에 반하며 그들과 함께 지내기로 합니다. 콜린스(다코타 패닝)와의 만남에서 잠시 <맨 온 파이어> 꼬마 피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케미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수전과의 인연이 콜린스로 이어지는 과정은 괜히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시칠리아 알타몬테의 아름다운 풍경은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서로 돕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다른 한 편의 지독한 폭력과 죽음들은 묘한 어우러짐이 있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요? 극한의 잔인함과 극한의 아름다움이 한꺼번에 공존합니다. 너무나 극한의 모습들이라 오히려 아름다움이 더 슬퍼 보이는 걸까요? 피로 물든 거리와 죽음의 장면들 위로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 매번 응징을 하고 결혼반지의 피를 정성껏 닦아내는 맥콜의 행동은 아내에 대한 끊임없는 미안함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어떤 의식처럼 보입니다.
영화의 시작 문구처럼 맥콜은 평생을,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려고 애썼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도착한 시칠리아, 알타몬테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풀어놓고 함께 어울리는 노쇄한 맥콜의 모습은 이제 자신의 마음 둘 곳에 - 자신의 말처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 도착한 것 같습니다. 옆에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도 한때 서로 보듬어 도와주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고 잘못에 대해 함께 분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은 각가 달랐지만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공감대가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각자 살기 힘들어 옆을 돌아볼 수 없이 생활에 치여 살고, 불의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합니다. 팽배한 개인주의와 극한의 이기심들이 판을 칩니다. 새삼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는 사람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우선인 사람들 - 이들에게 올바름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요? 잘못에 분노할 줄 모르는 지금 무신경한 우리의 모습은 괜찮은가요? 현재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과 감정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세상을 향한 맥콜의 조용한 분노와 절제된 액션이 더더욱 슬프게 느껴지나 봅니다. 맥콜이 자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현실적 싸움을 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과정은 어둡고 무겁습니다. 폭력적인 액션 영화지만 너무 인간적이라 슬픕니다.
<이퀄라이저 1,2,3>은
꼭 전체 시리즈를 함께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