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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Nov 15. 2024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인생이 닭장의 횃대처럼 더럽고 옹색하더라도, 피할 이유는 없어요


우린 모두 약한 사람들입니다. 밝은 빛 속 그늘이 더 어두운 것처럼 모두에게 좋은 날, 행복한 날 더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잘 섞여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부유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외로운 섬에 갇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대열에서 밀어냈다가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떠밀렸다가 다시 섞였다가를 반복하며, 밀려가고 다시 밀려오지만 세월이 지나도 세상과의 그 접점은 좀처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접점에서 멀어져 혼자인 사람들은 - 서로 같음을 빠르게 알아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의 아픔을 갖고 산다고 별일 아닌 듯 말하지만 그런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섣불리 위로 따위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투박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아픔의 힘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사람 사는 건 어느 시대나 똑같아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나 혼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1970년 바튼 아카데미, 학기를 마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두 가족을 만나러 가고 텅 빈 학교에는 세 사람만 남습니다. 고집불통 역사 선생님 ‘ 폴(폴 지아마티), 문제아 '털리(도미닉 세사)' 그리고 전쟁에 자식을 잃은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이들 세 사람은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원치 않았던 동고동락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상은 쇠퇴하고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요? 폴을 보면 정말 학교에서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볼 때마다 잔소리하는 꼬장꼬장한 선생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심지어 술집에서 한잔을 해도 꼭 유명한 구절 하나쯤 읊어야 하는 사람, 교훈을 줘야 자신의 할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설명이 지나치다 싶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잘난척하며 혼자 뿌듯해하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자긍심이 묻어나지만 그가 혼자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들 자신의 삶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삶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무시하고 이해하지 않으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진 의미와 시간에 이유가 있듯 모든 사람의 삶은 소중합니다. 폴은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지난 시간을 볼 수 있다고 - 역사는 그저 과거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답을 찾기 위한 공부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말처럼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고 싶었던 폴이지만, 사실 그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미움받는 외톨이일 뿐입니다. 동료에게 무시당하고 심지어 교활하게 이용당하지만 모른 채 합니다. 학생들의 야유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인생은 닭장의 횃대처럼 더럽고 옹색한 거야


스스로 사고뭉치임을 인정하는 털리는 정신병원에 있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몰래 학교를 벗어나 보스턴을 향합니다. 부모와 대화하듯 털리는 학교 생활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빠.. 치매초기인 걸 알게 됩니다. 좋은 아빠로 기억하지만 정신병원에 있는 아빠를 보는 털리의 마음은 그리움과 외로움, 답답함에 무너집니다. 그토록 보고 싶은 아빠였지만 한편으론 만나기 싫었다고, 자신도 언젠가 아빠처럼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털리의 이야기를 들은 폴은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히 들려줍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자신과 비슷한 털리를 향해 - 고칠 것도 많고 천재는 아니지만 잠재력이 있고 분명히 달라질 수 있는 '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 삶이 과거에만 매여있어선 안된다는 걸, 폴은 스스로에게도 되새깁니다.





우연히 학교를 벗어나서야 털리는 늘 벽처럼 답답한 원칙만 주장하던 폴의 지난 시간과 상처를 알게 됩니다. 그도 나름의 아픔을 무겁게 지니고 살아가는 평범하고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식당에서 알코올 때문에 체리주빌레 주문을 거절당하자 재료만 잔뜩 주문해서 주차장에서 그냥 만들어버리는 메리와 폴의 센스. 세 사람이 함께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모습은 훈훈합니다. 자신이 하버드에서 퇴학당할 때 교수가 믿어줬던 것처럼 폴은 털리의 일탈을 이유로 전학 시키려는 부모를 설득하고 털리의 퇴학을 막아냅니다.

 


 

엔딩 무렵 흘러나오는 노래, 어릴 때 올리비아 뉴튼존의 버전으로 듣던 노랬였는데요, Labi Siffre가 담담하게 부르는 <Crying Laughing Loving Lying>를 천천히 반복해 듣습니다. 그렇죠, 이런 모습이 우리 인생이겠지요



Crying,

Crying never did nobody no good, no how

That's why I, I don't cry

That's why I, I don't cry

Laughing,

Laughing sometimes does somebody some good somehow

That's why I, I'm laughing now

That's why I, I'm laughing now

Loving,  

Loving never did me no good no how, no how

That's why I, Can't love you now

That's why I, Can't love you now

Lying,

Lying never did nobody no good no how, no how

So why am I lying now?

So why am I lying now?

So why am I lying now?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과 과격한 행동으로 포장을 하고, 사람들을 밀어내고, 세상과 멀어지며 자꾸 안으로 숨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더는 새로운 시작을 못하고 주저앉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상처 또한 우리 인생일 테고, 하나씩 차근차근 여백을 채워나가면 그뿐입니다.

 
 
이 많은 여백을 어떻게 다 채우죠?

그냥 한 글자씩 써 나가면 되죠
그게 뭐가 어려워요?

 
-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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