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닌 척해도, 저 역시 꼰대가 맞습니다
붐비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은 누구나 괴롭습니다. 전 어릴 때부터 학교도 직장도 남들보다 일찍 서둘러 집에서 나갔고 남들보다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정해진 등하교 시간과 출퇴근 시간은 있었지만 나름의 기준이 있어서 저만의 룰대로 다녔습니다. 이유는 사람을 ‘회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을 견딜 수 없고 밀집도 말고도 그 소음과 열기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가급적 적당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되도록 사람이 덜 밀집된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주로 고요한 새벽 시간에 일찍 움직였습니다.(통금이 풀리고 난 시간 정도)
며칠 전 퇴근 후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퇴근 지옥철을 타야만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아찔합니다. 당연히 도착한 전철은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고 비집고 들어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약속한 시간이 빠듯해서 큰 마음을 먹고 지옥철에 발을 디밀었습니다. 뒤틀어지는 몸과 조여 오는 사람들의 몸이 서로 걸리고 밀려서 정상적으로 서 있기가 불가능할 지경이었습니다. 잡을 곳도 눈을 둘 곳도 없이 흔들리다 멈춰 선 다음역, 과연 더 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열린 문을 비집고 속속 들어서는 사람들, 신기할 정도로 점점 더 촘촘히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다 마지막 한 분은 정말 타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파란 가방 든 사람 팔 좀 올리고
염색한 사람 한 발만 뒤로 들어가요!.... 아 거기 할머니는 경로석으로 조금 당겨 주시구요...“
이건 뭐지?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늘 지옥철은 이런가? 내가 정시에 처음 타봐서 나만 처음 보는 건가?
신기한 건,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다 그대로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 더 놀라웠습니다. 네, 세상엔 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보디 나이가 어린 사람을 -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반발하는 사람을 전 지극히 혐오합니다. 설사 아는 사람이라 해도 그런 명령조라면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저라면 무시하고 말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더 나이 많은 아저씨와 할머니에게까지 이건 너무 무례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만히 바라볼 뿐 말하지 않습니다.(전 가끔 반응 없는 이런 광경이 섬뜩합니다.)
저도 나이를 먹은 사람입니다. 아직 회사를 다니지만 인간적인 예의는 매우 중요해서 나이나 성별,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알고 얼마나 친하다고 그럴까요? 가끔 어느 순간 특별한 상황을 바라볼 때 편협해지지 않으려고 물어보고 확인하고 무던히도 애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인식과 습관의 한계는 분명해서 서서히 굳어지는 머리가 빠르게 꼰대를 향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가끔씩 애써서 그 방향키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안 그래도 다들 풀 죽어 피곤한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자식들에게(설사 자식이라 하더라도 납득이 안되는데) 명령하듯 하는 사람이란 저에겐 외계인에 가깝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해 불가의 영역입니다. 뇌에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무례할 수 있는 건지.
장난 삼아하는 말 중에,
“ 그렇게 급하면 어제 나오지 그랬어요? “
하마터면, 입 밖으로 중얼거릴 뻔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다면(군대를 갔어야 할지도) 그건 태생적인 것일 테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그런 성격을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에 익숙한 우리들은 정신적으로 까무러칠 지경이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정신줄을 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까딱 놓치면 손해를 보거나 치명적인 실패가 될 수 있는 것들, 부모들은 가정을 컨트롤하느라 애쓰는 것이 생활습관이 되어버립니다. 그 습관이 고착되면 누구나 꼰대가 됩니다. 문제의식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그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져서 당연하고 맞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고착된 이유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꼰대들은 가만히 샹각해봐야 합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긋지긋하지 않았었나요? 가장 혐오하던 잔소리 대마왕이 자신이 된 지금 괜찮은가요? 자각은 하고 있나요? 다르다고 부인해도 소용이 없습니다.(물론 요즘은 젊 꼰들도 존재합니다.) 어릴 때 자신이 극히 혐오했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들도 그렇게 우리 꼰대들을 혐오합니다. 꼰대라 말이 안 통한다고...
삶의 지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무조건 정답을 강요하거나 무의미한 잔소리를 반복할 때, 자신의 원칙이 절대 바뀔 수 없는 고집으로 태도가 굳어졌다면 우린 모두 꼰대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앞서가는 세대와 '같이' 살아갈 생각이라면 예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례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꼰대에서 한 발씩 탈피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