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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un 12. 2019

제주 맛 기행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⑤

제목이 ‘제주 맛 기행’이라 제주의 맛집에 관한 정보를 기대하고 이 페이지를 여셨다면 미리 사과드린다. 나야말로 제주의 정통 맛집들이 궁금하다. 이 글은 그래서 썼다.     


지난해 여름 홍콩에 들른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 갔다가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아홉 시간 정도 경유하게 된 것이다. 공항에만 있기에는 제법 긴 시간이라 AEL을 타고 구룡역으로 향했다. 최대 번화가인 침사추이에 들러 배우 주윤발이 단골이라는 50년 된 밀크티 전문점 란퐁유엔에서 브런치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몽콕으로 이동해 짝퉁 시장이라 불리는 레이디스마켓을 한 바퀴 휘- 둘러보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때는 6월 말.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아스팔트에서는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열 좀 식혀보겠다고 아이스크림을 사면 돌아서는 순간 곤죽이 돼 흘렀고, 그러고도 채 몇 걸음 못가 아이스커피가 당겼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스타벅스로 피서해 빈둥빈둥. 더위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자유분방한 흡연 문화 탓에 길을 걷다가 별안간에 담배 연기를 연거푸 마시다 보니 머리도 띵해져 쉼이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3년 전에도 똑같았다. 마카오 여행을 하는 동안 왕복 페리를 이용해 반나절 홍콩에 있었다. 그때는 금융 중심지로 꼽히는 센트럴 지역에도 갔었는데 높은 빌딩들이 만들어 낸 화려한 마천루보다 인상 깊었던 건 그 사이로 뿌연 대기였다. 편도 4차선 도로엔 차들로 가득했고 공원이나 쇼핑몰 앞에서는 누구랄 것 없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두 번의 홍콩. 나는 생각했다. 

    

홍콩은 이걸로 충분해! (하필 가는 날이 뿌연 날이었을 지도 모를 일. 그렇다면 궁합이 안 맞는 걸로 치자며!)  

   

그런데 웬걸. 뜻하지 않게 마음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홍콩에서 시작된 강렬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질 즈음이었다. 거실에 누워 리모컨을 돌리다 한 프로그램에 시선이 꽂혔다. S본부 <미운 우리 새끼>였다. 방송인 이상민과 간호섭 교수가 홍콩에서 초저가 밤도깨비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마사지를 받고, 해돋이를 보는 여정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나의 흥미를 끈 건 ‘홍콩 조식 맛집 투어’였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지역민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숨은 맛집들을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60년 전통의 월병집과 우리네 기름 떡볶이와 닮은 홍콩식 라이스롤, 두부에 생강 시럽과 설탕을 뿌려 만든 두부 디저트 가게와 물냉이를 넣어 만든 북방식 손만두 맛집이 포함됐다. 어느새 자세도 고쳐 앉은 채 나는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내 맘이 네 맘. MC인 신동엽도 진짜 가보고 싶다며 입맛을 다셨다.     


홍콩에 한 번 더 가야 할까 봐.     


어이없게도 ‘홍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앞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하기야 일본의 전설적인 관상가 미즈노 남보꾸는 ‘식(食)은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먹는 행위는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맛은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관능적인 즐거움이다. 그러니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이것들’은 여행의 동기가 되기에 충분한 셈이다. 애석하게도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을 때는 돈이 없고 애석하게도 대부분 그 둘 모두가 없는 인생인지라 반년째 항공권 사이트만 들락거리고 있지만.     


제주에도 있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말이다. 섬이라는 특성상 다른 지역과 도드라지게 구분된 식문화가 있다. 개인 그릇을 낼 겨를이 없어 물질을 마치자마자 낭푼에 밥을 푸고 가족들 숟가락을 꽂아 상에 낸 해녀들의 낭푼 밥상이라든지, 봉평이 아닌 제주가 메밀 생산 1번지여서 빙떡 같은 간식이 발달했다든지, 고추 농사가 잘되지 않아 된장 베이스의 생선국과 물회가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들. 제주의 자연만큼이나 보물 같은 제주의 음식들이다.     


나는 오직 맛을 위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을 안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앞에 하루 다섯 끼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과 다 먹지 못한 음식에 대한 미련으로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 관광 지도는 접어두더라도 제주 맛집 지도는 손에 움켜쥐고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이다. 그들을 위해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하는 맛집 투어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제주 맛 기행’, ‘제주 맛집 투어’ 같은. 나라면 당장 참가할 텐데!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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