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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Feb 06. 2016

설, 그 따뜻함에 대하여

고향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작년 추석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온갖 시련과 도전에 힘들었던 상황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전화로 아프다는 핑계를 댈 때 눈물이 났다는 것 외엔 견딜  만했다. 내려갈 고향이 있는데도 가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시련이었다.


설이 다가왔다. 고향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께서 받으셨다. “우리 아들이가?” 목소리에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를 받는 반가움과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이번설에 내려간다는 말을 전할 때 어머니께서는 한마디를 하셨다. “아들아,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 오니라. 보고 싶다. 이 눔 아야”


‘엄마, 미안해’

올 설에는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좋아하는 추어탕을 올해도 끓이고 계시리라. 한여름 들에서 손수 잡은 미꾸라지를 장만하여 냉동했다가 아들 좋아한다고, 아들 올 때마다 녹여 배추를 넣고 푹 끓이신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넣는 전라도식에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나는 된장만으로 끊여내는 고향 우리집표 추어탕이 으뜸이다. 아마도 내 아내는, 끝내 내 어머니 손맛은 따라가지 못하리라.


공부해서 고생 않고 살라시던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으시다. 힘든 남의 땅 농사일과 겨울에 남의 공장 일하시며 너는 여기를 떠나서 고생 없이 살라고 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이곳 고향을 두고 어디 다른 곳에 갈 맘이 없으시다. 아직 농사를 하시는 부모님, 50여 년간 이곳에서 세월과 함께하며 땅이 고향이 되신 거다. 땅이 고향이니 떠날 수가 없는 것이리라.


나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계시는 한 고향에 계속 올 것이다. 오래오래 오고 싶다. 삶 이 유한 하니 찬란하다지만 내 부모님에게만은 예외였으면 한다. 두고두고 오고 싶다.  그래서일까? 고향 친구들이 점점 좋아지고 보고 싶다. 언제  내려오냐며 전화와 문자 하는 고향의 친구들이 더 좋아진다. 고향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같이 보자고 약속이 정해졌다. 막걸리를 고향에서 고향 친구들과 마신다고 생각하니 벌써 취기가 느껴진다. 소주가 타향의 위로라면, 막걸리는 고향의 향기리라.


이번에도 나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 막걸리에 그간의 얘기로 즐거울 것이다. 먼 훗날, 고향 친구마저 그곳에 없다면 영영 이곳 어머니 아버지의 땅에 오지 않게 될까 봐. 내 어머니 아버지의 기억이 옅어 질까 봐.


이번 설에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세배를 할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내 세배는 덕담을 넘어 소망에 간절함 일 것이다.


고향, 나에겐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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