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쉬지 않지만, 글은 잠시 쉬어갑니다
안녕하세요, 차윤입니다.
저는 추석 연휴를 맞아 지난주는 울산 시댁에서, 이번 주는 부산 친정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문경을 거쳐 울산까지. 내려오는데만 1박 2일이 걸린 여정은 그야말로 작은 모험이었어요. 아기와 자동차로 장거리는 처음인데요. 2주를 지내려다 보니 피난 수준의 짐 가방들이 주렁주렁, 그 속에 파묻혀 제 자리는 카시트 옆 겨우 두세 뼘 정도였습니다. 16개월 아기와 이틀에 걸쳐 두 시간 반씩 나눠 달린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고, 버거웠어요.
사실 이번 귀향은 단순한 명절 방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기 돌잔치를 따로 하지 않았던 지난 6월,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아쉬워하셨을 부모님들을 생각해 이번엔 남편과 상의 끝에 길게 머물기로 했거든요. ‘이왕이면 천천히, 오래 함께하자’는 마음으로요.
그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현실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시댁에서는 낯가림과 예민함이 극에 달한 아기를 달래며 하루 종일 품 안에 안고 있었고, 낯선 환경 속에서 저도 함께 예민해졌습니다. 하루가 저물 때쯤이면, 몸과 마음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졌어요.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육아 치트키 3종세트를 다 지닌 우리 아기도 새로운 환경에선 무섭게 돌변하더군요. 그래도 괜찮다고, 그래도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소중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조금만 더 힘내자’는 생각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친정에 오면 숨 좀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오히려 더 분주해지네요. 엄마집에 있지만, 이제는 제가 또 다른 엄마이기 때문이겠죠. 쉬러 온 게 아니라, 또 하루를 버티러 온 사람 같습니다. 아기는 또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댁에서의 1일 차와 똑같은 행동을 그대로 반복 중입니다. 엄마는 이런 저를 보고 속상하고, 저는 저대로 쉽지 않고, 아기도 이 긴 여정이 힘들거라 생각하니 이 정도면 모든 게 저와 남편의 욕심이었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결혼 후에 아기가 없을 때도 부모님 댁에 일주일씩이나 머물렀던 기억은 없더군요. 그래도 혼자 하는 육아와 달리 매 끼니 따뜻한 밥이라도 얻어먹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일찍 주무시는 고요한 집에서 새근새근 잠자는 아기의 숨결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글을 쓰기가 어렵겠다고요. 온 가족이 모여 아기를 반겨주는 이 상황이 감사하지만, 사실은 조금 고단하고, 그 고단함을 억지로 감춘 글은 결국 공허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까진 잠시 글을 쉬어가려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제게 작은 실패처럼 느껴집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마음이 쓰이네요. 그래도 이 긴 여정을 끝내고, 조금만 숨을 고르고, 집으로 돌아가 다시 리듬을 찾으면 그때는 지금보다 따뜻한 글과 단단한 마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쓰다 보니 휴재공지가 아니라 글이 되어버렸네요... (이럴 거면 글을 쓸 걸 그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