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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작 Jul 26. 2021

부엌의 작은 공장




2020년 봄. 나와 동생, 아빠까지 모두 무직 상태로 집에 눌러앉았다. 각각 이직이나 자발적 퇴직으로 쉬게 된 징검다리 시기였고 시국 때문이라거나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주부인 엄마의 시름이 깊어졌다. '먹고사는' 생계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다.



끼니마다 제때 식사를 차리는 것이 엄마에게는 그렇게나 큰일이고 스트레스였다. 매 끼니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밥 먹을 생각만 하면 엄마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동생이나 내가 그냥 사 먹자고 해도, 아빠가 간단하게 먹자고 해도, 엄마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집에서 엄마가 누빌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 식구들이 출근하면 비로소 엄마의 휴식 공간이 되던 집인데, 다들 집에 있으니 하루 종일 쉬는 기분이 안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부엌을 택했다. 책, 태블릿, 바느질거리를 들고 식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식탁에 평소보다 오래 앉아 있으니 안 쓰던 식기들이 보이고, 찬장에 숨겨 뒀던 그릇이나 찻잔이 보이고, 방치했던 반죽기와 제빵기도 보이니 엄마는 밥 대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생각났다.



“오늘은 빵을 먹여야겠다.”



수년 전부터 홈베이킹을 해온 엄마에게 제빵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죽기와 제빵기를 돌려 빵을 만들다 보니, 마침내 엄마의 시선이 오븐으로 향했다.



부엌에 잠들어 있던 작은 오븐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본격적으로 제빵, 제과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매일 반죽을 만드느라 부엌에서는 밀가루 파티가 열렸다. 식빵, 스콘, 쿠키… 놀랍도록 여러 종류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간식으로 볶아 먹던 견과류, 여행 기념품으로 사 온 초콜릿 등이 반죽 재료로 변신했다.



단 것을 먹지 않는 아빠와, 오독한 식감을 좋아하는 딸과, 간식을 좋아하는 아들 모두를 위한 엄마표 레시피도 생겨났다. 그렇게 탄생한 메뉴 중에 아침 대용으로 가능한 쿠키까지 탄생하게 되었다.(후에 대표 메뉴가 되었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엄마도 손이 작지 않다. 코울슬로를 만들 때 다라이 단위로 만들길래 김장하는 줄 알 정도였으니까. 쿠키도 다를 게 없었다. 엄마는 한 번 반죽을 시작하면 결과물을 식힘망 위에 가득가득 올려야 할 정도로 쿠키를 구웠다.



식구들 끼니를 위해 시작된 베이킹인데 엄마는 과정 그 자체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부엌에서 쉼 없이 쿠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쿠키는 빵보다 꽤 긴 시간 두고 먹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네 식구가 먹기엔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도 선물했고, 내가 종종 SNS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때 쿠키 맛을 보거나 사진을 본 친구들의 반응이 재밌었다.



[문 열어 집 앞이야]

[지갑은 준비됐어요 팔아주세요 제발]

[엄마, 나 숨겨 둔 딸이야. 나 안 잊었지? 집 주소가 어떻게 되더라?]



엄마가 모르는 엄마의 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의 반응을 엄마에게 전해줬다. 30여 년 엄마 밥을 먹어 온 식구들은 건방지게도 맛 평가에 있어 무뚝뚝한 편이다. 그래서 엄마는 모르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에 즐거워했다.



여름 이후 식구들은 다시 각자의 일터로 나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홈베이킹과 쿠키 만들기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지치지 않고 상당량의 쿠키를 꾸준히 굽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쿠키를 팔아 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꺼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에이’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처음으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의 한 마디가 갑자기 머릿속에 콕, 들어왔다고 한다.

 


“이제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선보이는 건 어때?”



드디어 엄마의 입에서 “그럴까?”라는 답이 나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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