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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작 Sep 29. 2021

이날을 기다렸소





‘모든 것이 계획대로야.’



그럴 리가 없다.



계획대로 흘러가면 불안함이 들게 마련이다. 위의 대사를 읊는 악역은 다음 계획부터 실패한다. 응급실에서 의료종사자들 사이에 ‘한가하네’라는 말이 금기어라고 한다.



순탄하게 진행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은 온전히 입에 올리기가 힘들다. 앞으로도 계획대로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고, 그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 실망이나 당혹스러움을 더 크게 겪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많은 경우 실수와 불찰을 안고 부딪치며 사는 게 인생이려니 하고 버티며 무뎌지는듯 하다.



쿠키가게 오픈 초기 아직 재료 소진 속도에 대한 감이 없을 때, 어떤 재료를 얼마나 사 놔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었다. 소위 ‘오픈빨’로 예상보다 주문이 많았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재료가 하나씩 동나기 시작했다. 재료마다 구입처가 마트, 도매, 인터넷 등으로 다양했 그때그때 추가구매 필요한 재료를 뒤늦게 인지하고 주문하다가 결국 문제가 생겼다.



“로투스쿠키가 없다. 어떡하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로투스시나몬쿠키가 있는데 비주얼이 좋아서 제법 인기 메뉴다. 쿠키 위에 로투스쿠키를 올려 마무리해야 한다. 당장 몇 시간 뒤에 발송되어야 할 쿠키가 완성되지 못하게 생긴 것이었다.



올릴 로투스쿠키가 없으니 발송을 미루거나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주문자 중에 직접 주문한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서비스쿠키를 따로 궁워서 챙기고, 양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도 썼다. 그러고도 마음이 불편해서 엄마와 나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신없이 택배 포장까지 다 해놓고 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들었다.



“로투스쿠키 그냥 편의점에서 사다 쓰면 되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 순간에는 고장난 것처럼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재료라는 실이 죽어도 안 떠올랐다. 머리가 안 돌아가니 손발과 마음 고생한 것이다.



치명적이지 않은 실수는 경험으로 좋은 양분이 되었다. 이후로 로투스쿠키는 부족하지 않게 사다 놓고 있고, 부족하더라도 대처할 아이디어가 있어 마음을 놓고 있다. 매뉴얼을 두고도 직접 부딪쳐야 와닿는 경우들이 있다.



반대로, 잉여재화로 여긴 것이 기다렸다는듯 중요하게 제 자리를 찾은 기가 막힌 일도 있다.



이전에는 쿠키박스를 1종으로만 판매하고 있었다. 쿠키 6개가 들어가는 사이즈였다. 제작주문을 하다 보니 수량을 천 단위로 크게 잡아야 해서, 다른 사이즈의 박스는 아예 염두하지 않고 각대봉투와 박스1종만 활용했다.



그러다 지인으로부터 결혼식 답례품 문의가 들어왔다.



"쿠키 4개 구성이면 좋겠어요. 될까요?"



원하시는 가격대와 구성을 논의하고 보니 쿠키 4개가 딱이었다. 그러나 기존 6개들이 쿠키박스에는 자리가 너무 남아서 적절하지 않은 구성이었다.



주문을 받으려면 결국 박스를 새로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족끼리 긴급회의까지 했다. 박스를 새로 맞춰서 주문을 진행할지, 거절할지 말이다. 그때 은인이 나타났다.



"고민하지 말고 해! 개업 선물로 내 줄게."



아빠의 오랜 친구분이 개업 선물이라고 비용을 지원해 주신 것이. 날개를 숨겨 놓으셨을 것이다 분명. 천사니까...!



그렇게 새로 맞춘 박스로 첫 답례품 문의를 진행할 수 있었고, 론적으로 무사히 끝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후 작은 쿠키박스는 거의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불쌍한 작은박스는 구석에 웅크린 채 몇 달을 보냈다.



그동안 쿠키가게는 자리를 잡았고, 쿠키가 아닌 신메뉴 그래놀라출시하게 되었다. 여러 종의 견과류를 구워 시리얼처럼 요거트나 우유에 말아 먹기 좋은 먹거리다. 포장은 종이 완충제를 둘러 보내기로 하고, 두고 먹기 좋은 사이즈를 골라 대량으로 주문을 해버렸다.



막상 그래놀라 주문을 받으려고 보니 포장이 다시 고민되었다. 왜 아쉬울까 어떻게 포장해야 마음에 찰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불쌍한 박스들을 떠올렸다.



쿠키박스 작은 거에 넣어 볼까?”

“신기하다 어쩜 기다렸다는 듯이 꼭 맞네.”



혀 계획하지 않고 주문한 그래놀라 통이 계획한 것처럼 작은 박스에 꼭 맞게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존 쿠키박스가 너무 빡빡하게 맞아서 쓰지 않던 택배박스, 마찬가지로 쓰지 않던 작은 사이즈의 뽁뽁이까지 전부 그래놀라 출시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 용도를 찾았다. 따로 포장 준비를 할 게 없었다. 어찌나 짜릿하던지. 몇 달 만에야 만족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다시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종종 이 얼레벌레 성공담을 안주 삼는다. 몇 번을 얘기해도 즐겁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지?



항상 쓸모 있는 시행착오를 겪는 건 아니다. 쿠키 재료가 아닌 시리얼로 잘못 산 오레오미 없이 아침식사를 달달하게 만들었다. 큰 사이즈로 하나 사면 되는 스프게드를 작은 사이즈로 너무 많이 사서 한동안 손에 쥐가 나도록 번거롭기도 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ㅎ) 계획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데에 위의 모든 사건들이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또 한편으로는,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짜릿함을 부르고 인생의 즐거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낄낄대며 글을 쓰고 잇는 지금이 그 대가 중 하나이다. 애정에도 권태가 존재하기에 안정감을 넘어서면 다이나믹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니 더 큰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건 언제나 별일이 일어날 준비가 된 자에게 선물 같은 일이 아닐까. 초보 자영업자는 계속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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