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작 Oct 24. 2021

환갑, 밤샘 테트리스의 맛


올해 환갑인 우리집 파티셰에게서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



“밤새 게임했어.”



범인은 모바일 테트리스. 평생 컴퓨터게임이나 모바일게임을 해 본 적도 없는 엄마가 테트리스를 하다가 밤을 샜다는 것이다.





엄마의 취미는 퀼트, 뜨개질, 베이킹, 커피, 화분 관리 등이다. 딱 봐도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손을 움직여 결과물이 탄생하는 이러한 취미들에 비해 게임은 정신을 쾌락으로 달래며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던가.



위의 말을 할 당시 엄마는 잠 잘 시간도 없이 바빴다. 한밤중까지 재료와 반죽 준비로 바쁘게 보내고 다시 새벽에 출근하기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게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잠 잘 시간도 없는데 게임을 했어?”

“너무 피곤한데 그냥 잠이 안 와서 그랬지.”



집에 와서 곯아떨어질만도 하건만 그만큼 엄마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테트리스 밤샘 사건은 그런 밤 중 하나였다. 아마도 긴장과 설렘, 걱정이 새벽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엄마를 재우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에게도 엔진이 있다. 엔진에 시동을 걸고 기름칠을 하고 굴려야 계속 관성을 갖고 굴러간다. 잘 굴러가는 속도에 힘을 조금만 더 실어도 가속이 엄청나게 붙는다. 그래서 오히려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더 잘 보이는듯 하다.



아들딸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가, 일을 시작하며 엔진의 속도가 엄청나게 붙은 모양이었다.

엄마의 일탈은 게임 뿐이 아니었다. 다음 스탭은,



“올 때 편의점에서 맥주 좀 사 와.”



술이었다.



파티셰의 최애 종목은 흔들지 않은 맑은 막걸리나 청량한 맥주다. 이제까지 우리집에서 술은 별미 같은 개념이었다. 비가 와서 부침개를 굽거나, 오랜만에 기분 내고 싶을 때,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의 빈도로 즐겨 왔다. 그런데 엄마는 바빠질수록 술을 찾고 있었고, 저녁밥에 반주가 오르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었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갑자기 가벼운 음주가 일상이 되다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서 말리지는 못한다. ‘엄마의 일’이 생긴 만큼 엄마의 ‘해소 창구’도 동시에 필요해진듯 하다. 일상과 취미의 경계가 없던 취미와 다르게, 쿠키 굽기는 이제 출퇴근이 필요한 업무가 되었으니 말이다.



엔진도 과열 상태가 계속되면 문제가 생기니 식혀줘야 한다. 식힐 타이밍이 없던 기간에 우리는 불안했다. 미처 해결 못한 일을 다 되짚지 못한 채로 다음 날을 맞이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주문이 나눠서 들어오면 좋을 텐데!”



오픈 거품이 가라앉자 이런 말이 쏙 들어가긴 했다.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올 때 더 즐길 걸 그랬다. 이렇게나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주문이 몰릴 때는 다음 날로 나눠 들어왔으면 싶은데, 주문이 줄어들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게다가 한여름에 부득이하게 휴가를 갖게 되며 이러다 망하는 건 아닐지 생각까지 들면서 조급해졌다. 고작 며칠 단위로 새롭게 안 좋은 생각들이 들면서 마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마약탐지견들을 위해 종종 일부러 마약을 숨겨 놓고 찾게 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마약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울해하기 때문이다. 주문이 없던 어느 날 ‘아이고 어떡하나’ 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니 위의 생각이 났다. 먹고사는 걱정보다 앞선 게 그거였다. 돈보다도 우리 파티셰의 자존감과 자아에 신경이 더 크게 쓰이다니 참 이상한 쿠키집이다.



자연스럽게 일이 손에 익고 오픈 때보다 주문이 줄어드니 그만큼 긴장도도 낮아졌다. 엄마는 더 이상 테트리스를 하지 않는다. 우리집 파티셰는 결국 손을 쉬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여유가 생기자 엄마는 테트리스 대신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가게는 알록달록해지고 엄마의 손길과 색을 가진 가게로 변신하고 있었다.  



어깨나 팔이 자주 아팠던 엄마를 식구들은 계속 걱정하는데, 그럼에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쿠키를 굽고, 매일 화분을 햇빛 드는 곳에 내놓고, 바느질과 뜨개질을 한다.



몇 달 쉬겠다면서 계속 이력서를 올리고, 쓰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는 허세를 부리고, 은퇴란 없는 인생처럼 책을 파고드는 쿠키네 다른 가족들도 각자의 페달을 밟으며 엔진을 끄지 않는다. 엄마는 오늘도 맛있는 쿠키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하고 퀼트 작품 너머 드는 햇빛 아래에서 오븐을 켠다. 밤샘 테트리스가 다시 시작될 날을 기대하며!





이전 07화 오픈 10일, 단종할 메뉴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