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날짜를 찾아보니 9월 21일이었다.
성격이 급해 10월 초까지는 못 기다리겠더라.
부랴부랴 짐을 싸고 문을 두드렸다.
"저 방 뺄게요. 이사 갈게요."
똑똑 신호를 보낸 지 한 시간 만에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입주했다.
아직 살림살이가 없는 이주민
살림살이를 구하고 이곳에서 살아갈 방법을 배우려면 갈 길이 멀었다.
살려고 바둥바둥 움직이기만 해도 다들 박수를 쳐준다. 웃어준다.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모두 미소를 띠고 있을까. 아무래도 오길 잘한 것 같다.
입주한 지 1년이 되던 날에는 잔치가 열렸고,
가슴팍에 빨간 꽃모양의 명찰을 달던 날에는 꽃다발을 받았다.
매일 달고 다녔던 명찰을 떼던 날에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살림살이를 하나둘씩 모았다. 이제 이곳이 익숙하다.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며 이곳의 묘미를 알아간다.
사람도 사랑도 맛깔나는 곳이다.
가끔 이마를 짚는 일도 있지만 웃고 떠들고 박수치는 일이 더 많다.
사계절을 한 번씩 걷고 나면 9월 21일이 돌아온다.
항상 이때쯤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이 불더라.
35년 전 비어있던 이 날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숫자가 되었다.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 숫자가 되었다.
작은 발을 가지고 있을 누군가에게 숫자를 선물하고 싶다.
이 숫자는 기쁘고 행복한 것이며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생일'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입주한 날이 '가장 행복한 날, 생일'이라고 35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알려준 부모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