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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Aug 27. 2021

경계 없는 환대의 식탁을 꿈꾸며

이방인이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한국에서 7살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는 영국에 와서 갑자기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다. 3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9월부터 시작하는 시스템이라 2011년 9월부터 2012년 8월생 아이들이 한 학년으로 묶였다. 6월 말에 태어난 선율이는 그중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친구들은 어린이집인 널서리부터 시작해 리셉션(한국의 병설유치원과 비슷하나 초등정규과정에 포함), 1학년을 거쳐 2학년으로 올라왔으니 초등학교 생활만 해도 벌써 3년째 접어드는 셈이었다. 유치원생에서 2학년으로 갑자기 점프한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역시 가장 큰 장벽은 영어. ABC만 겨우 익히고 왔는데 하루 6시간씩 학교에 보내려니 걱정이 앞섰다. 갑자기 바뀐 환경, 낯선 사람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속에 둘러싸여 종일 견뎌야 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절로 기도가 나왔다.     

 

  영국 초등학교에서 첫날, 둘째 날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3일째 되던 날 아침, 어깨가 축 처져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는 걸 겨우 달래 들여보냈다. ‘오늘 하루는 잘 보냈을까...?’ 걱정스러운 맘에 일찍 학교에 와서 하교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엄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반 단톡방에 초대해주겠단다. 한국에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같은 반 엄마들 사이에 단톡방이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영국 엄마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한국은 카톡, 여기는 왓츠앱(WhatsApp)이라는 게 다를 뿐 엄마들의 정보공유는 세계 공통인 듯하다. 집에 와서 왓츠앱 그룹에 가입된 것을 확인하고 주섬주섬 나와 아이를 소개했다.      


“우리는 몇 주 전에 한국에서 영국으로 왔어. 선율이는 영어를 거의 못 해. 오늘 아침엔 학교 가기 싫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끝나고 나니 다행히 재밌었다고 하더라. 앞으로 잘 좀 부탁해...”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였을까 싶지만, 그때는 힘들어하는 녀석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잠시 후 단톡방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오늘 괜찮았다니 선율이는 무척 용감하구나. 우리 아이에게 말해서 같이 놀라고 할게. 걱정하지 마, 금방 적응할 거야. 어릴수록 영어도 금세 배우더라. 가까운데 한국 합기도 학원이 있는데 같이 다니는 건 어때?”


  하나같이 다정한 격려의 말들. 그때 한 엄마가 따로 말을 걸었다. 이름은 카트리나, 미국 국적인데 친정엄마가 한국인이어서 하프 코리안이라고 소개를 했다. 한국말은 못 하지만 한국 음식은 아주 좋아한다고. 한국에 뿌리가 닿아있다는 말에 더욱더 가깝게 느껴지는 마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가족사진도 주고받으며 한참 채팅을 했다.      


  “내일 주말이니 오후에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아? 저녁 같이 먹자. 가족 모두 데리고 와. 완전 환영! 애들은 같이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더라고.”      


  뜻밖의 말이었다. 집에 오라고? 세상에,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이를 선뜻 초대한다고? 그것도 저녁 식사 자리에? 적잖이 놀랐지만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흔쾌히 좋다고 하고 다음 날로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 오후, 디저트와 꽃을 사 들고 카트리나네 집에 갔다. 어색할 법도 한데 모두 반갑게 맞아줘서 금세 분위기가 풀렸다. 하얀 식탁보 위에 구운 닭요리와 찐 채소, 샐러드가 올랐다. 어른 넷, 아이 다섯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했다. 처음엔 영어 때문에 쭈뼛거리던 우리 아이들도 레고와 TV, 애교 많은 반려견 쇼코 덕에 편안하게 어울려 놀았다. 그 덕에 어른들은 와인을 곁들여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지하철역이나 빌딩 같은 굵직한 건설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는 회사의 시니어급 직장인이자, 세 아이의 엄마. 매일 런던 시내까지 출퇴근하며 바쁘게 일을 하고, 아이들을 챙기기도 벅찰 그녀가 어떻게 나에게까지 마음을 내주었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짐작할만한 힌트는 이방인의 경험이 있다는 것. 카트리나의 남편, 피에르 룩은 프랑스 사람이고 아이들의 모국어는 프랑스어란다. 처음에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온종일 영어를 들으니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몇 주간 울면서 힘든 적응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타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고 긴장되는 마음을 카트리나는 알고 있었고, 우리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뼈마디까지 시린 영국의 겨울날, 그녀의 집에서 받은 따뜻한 환대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놀라움과 고마움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동네 친구 사이로 가깝게 지낸다. 한식을 좋아하는 가정이라 추석, 설 같은 한국 명절엔 갈비찜이나 잡채를 해서 갖다 주기도 하고, 피에르 룩의 생일잔치에 매년 초대되어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신나는 파티도 함께 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카트리나에게 기초 한국어를 가르쳐준답시고 시작한 줌(Zoom) 미팅은 결국 매번 목적을 잃은 수다 대잔치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또한 즐거운 기억. 지난해 코로나로 영국 전역이 봉쇄가 되었을 때, 각자 집에서 화면 너머로 와인잔을 부딪치며 새해를 축하했던 일도 지나고 나니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내 나라에서 주인으로 살다가 타국에서 이방인이 되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회적 성원권’과 ‘환대’의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건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15. p.37)


  영국에서의 3년을 돌아보니 타국에서 힘겹고 막막한 순간마다 따스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그 덕에 때로 어렵긴 했으나 오래 서럽진 않았다. 그리고 영국이라는 사회 안에 들어와 귀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기꺼이 나와 가족에게 자리를 내준 이들 덕에 말이다.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라면 아이에게 한국말 한마디 못하는 외국인 친구와 잘 지내라고 당부했을까? 낯선 이를 집에 선뜻 초대해서 함께 식탁을 나눌 수 있었을까? 요리를 좋아해 다른 사람을 불러다 먹이는 취미를 가진 남편을 둔 덕분에 손님 초대가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사람을 가리고 취향이 맞는 사람과만 어울리려고 했을 뿐, 나와 다른 이를 내 공간으로 초대할 준비는 안 되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     


  아끼는 시를 꺼내 다시 읽어본다. 예전엔 유명한 앞부분에 매혹되었다면 지금은 뒷부분, “부서지기 쉬운 마음,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더듬어볼 수 있는 바람”에 더 눈길이 간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외롭고 괴로운 때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덕에 언 마음을 녹이는 봄바람 같은 환대의 순간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시간이 흘러 더 단단하고 소중한 관계로 자라났다. 바라건대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받은 환대의 기억들이 갈피가 되어 나 역시 누군가의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알아볼 수 있기를. 그간 진 사랑의 빚을 흉내라도 내어 나 역시 경계 없는 환대의 식탁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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