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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08. 2021

이사의 기쁨과 슬픔

영국 집, 계약 해지 통보부터 보증금 분쟁까지

   

  영국에  첫해 여름,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한창 일할 시간인데  시간에 오는 전화는 다소 불길함이 깃들어 있다. 아마 급하거나 중요하거나 주로  다일 것이다.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방금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 집주인이 재계약을  하겠단다. 얼마 전만 해도 재계약한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남편은 ‘집주인이 세입자로서 우리를 신뢰할  없다고 나가달라고 했다 전했다. 이유는 얼마전 페인트  때문이란다.

  페인트 건이라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지난달 갑자기 집주인이 집 전체에 페인트를 칠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굳이 지금 페인트를 칠한다고? 하고 나면 깔끔하긴 하겠지만 냄새는 어떡한담.’ 썩 달갑지는 않았으나 알겠노라고 답했다. 약속한 날 아침, 8시 전까지 인부들이 오기로 했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약속을 잊었나 보다고 별생각 없이 넘기고는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주느라 8시 25분쯤 집에서 나왔다. 이게 내 쪽에서 기억하는 진실.

  페인트 업체와 집주인의 주장은 8시 10분쯤 도착해 우리 집 현관문을 세 번 두드렸으나 아무도 안 나오더란다.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문을 안 열어주니 밖에서 10분쯤 기다리다가 돌아갔다고. 이 일로 집주인은 세입자 과실로 약속된 작업을 못 했으니 업체 출장비 및 인건비 300파운드, 한화로는 45만원 가량을 지불하라고 했다. 게다가 이 일을 빌미 삼아 재계약 불가 통보까지. 당황스러움, 억울함, 막막함...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통화를 끝내고 길가에 망연자실 서 있는데 지나가던 터키 친구 아슬리가 나를 붙잡았다.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래.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차 한잔하자.”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아슬리가 하는 말.     


“정인, 나쁜 일이 있으면 꼭 좋은 일이 따라오게 되어있더라고. 나는 이번 기회에 너 학교 근처로 이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애들 학교랑 집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하잖아. 어쩜 잘 된 건지도 몰라. 너무 걱정하지 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냥 집주인과 잘 얘기해서 그대로 살았으면 했다. 집은 또 어떻게 구하고, 이사는 어떻게 해. 고단한 해외 이사 기억이 생생한데 다시 이사라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집에 와서 렌트 매물을 찾아보려고 영국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익숙한 집 사진이 떴다. 어라, 이건? 우리에게 재계약 불가라고 얘기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세입자 구함’이라고 떡하니 올려놓다니. 남편이 다시 부동산과 통화를 했지만, 집주인은 예상대로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도리어 300파운드를 물어내지 않으면 보증금에서 깎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내 집 없는 설움은 매한가지구나.     


  부랴부랴 우리도 이사할 집을 알아보았다. 아이들 학교에서 도보 통학이 가능한 곳에 딱 두 집이 있었다. 둘 중에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사는 집보다 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더 많고, 다락이 있는 3층 집. 정면에는 공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고, 동네 아이들이 모이는 놀이터가 창 너머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이 장점. 집 상태와 위치 모두 마음에 쏙 들었지만 문제는 가격. 살던 집보다 500파운드가 더 비싸 우리 형편엔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 마침 최근 영국에서 취업한 사촌 동생에게 방 하나를 내주기로 하면서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다.

  이사도 걱정했던 것보다 순조로웠다. 한인 이삿짐 업체의 도움을 받아 반 포장이사를 했다. 책이나 옷 같은 기본 짐들은 미리 싸놓고, 가구, 가전, 그릇같이 혼자 싸기 어려운 짐들은 당일 포장해서 옮겨주셨다. 이삿날, 정신없는 남편과 나 대신 아이들을 봐준 친구들과 밥과 반찬, 국까지 만들어 집으로 배달을 해준 이웃들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난제는 보증금.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옆집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이 집은 매년 세입자를 갈아치우는 집이야. 이번엔 좀 오래 살게 할 줄 알았더니 똑같네. 꼭 보증금 떼이지 말고 다 돌려받아”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주위에 물어보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에 의견이 일치했다. 처음엔 그냥 집주인 말대로 해주고 잊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흥, 외국인 세입자라 만만했나 본데 사람 잘못 봤다고. 우리가 또 억울한 건 못 참지! 결국 보증금 분쟁(deposit dispute)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영국에서는 정부가 보증하는 보증금 보호 시스템이 있다. 의무가입이며 보통 DPS(Deposit Protection Service), MyDeposits, TDS(Tenancy Deposit Scheme) 세 곳 중 한 곳을 선택해 가입한다.  그중 우리는 TDS에 가입되어 있었다. 이사를 나갈 때 집주인은 처음 입주할 때와 비교해 집에 손상된 부분이 있거나 청소가 미흡한 경우 해당 금액을 보증금에서 제할 수 있다. 이때 세입자의 동의가 필수고, 동의하지 않는 경우 분쟁으로 가게 된다. 

  분쟁은 인터넷 서면 제출 방식으로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집주인이 먼저 왜 보증금을 다 돌려줄 수 없는지 이유를 제출했고, 우리는 그 일에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페인트칠은 사전에 협의한 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으며,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렸어야 했다는 점을 피력했다. 양쪽의 의견을 들은 후 보증금 보호기관이 최후 판결을 하는데 결과는 두둥, 우리의 승!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하고, 늦은 밤마다 남편과 둘이 컴퓨터 앞에 앉아 영어 작문을 한 노력이 큰 보람으로 돌아왔다. 금액보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인정받은 기쁨이 더 컸다.     


  두 번째 집에서 산 지 벌써 2년, 그간 구석구석 정이 많이 들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주택에 처음 살아보는 나는 뒷마당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여름이면 워터 슬라이드를 설치해 아이들이 물 미끄럼을 타는 동안 어른들은 바비큐를 준비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차갑게 칠링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 어딜 따로 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벽한 여름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봉쇄령으로 하루 한 번 운동 목적으로만 바깥출입이 허용되었던 때 집 앞 공원이 있어서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놀이터도 테니스장도 다 막혔지만 산책로와 넓은 풀밭은 열려있어서 아이들과 걷고 달리며 그 지난한 날들을 버텼다. 봉쇄 상황이 끝난 뒤에는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어서 아침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졌다. 단축된 10분과 사라진 운전 스트레스로 아이들을 닦달하고 화내는 일이 줄었다. 등 떠밀려 한 이사였지만 결국 아슬리의 말대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살다보면 꽁꽁 엉킨 매듭 같은 일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영어로 반박문을 쓰던 숱한 밤들과 포기하지 않고 얻어낸 우리의 작은 승리를 기억해야지. 다정한 이웃들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도. 비록 불행의 외피를 쓰고 있더라도 속을 열어보면 행운의 씨앗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 것. 언제든 고개만 돌리면 푸른 잎사귀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볼 수 있던 작고 긴 나의 3층 집을 오래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Photo by Wooj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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