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May 10. 2021

너와 내가 주고받는 사랑의 비밀암호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는 나만의 비법

  

  3월 둘째 주 월요일, 드디어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날이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방학 후 1월 4일이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는데 영국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져서 개학 하루 전날 급하게 학교 문을 닫는다는 결정이 났다. 그 후 온라인 수업으로 보낸 두 달 반 동안 늦게 자고 일어나는 게 익숙해진 아이들은 개학날이 되어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일어날 때가 됐는데. 첫날부터 늦으면 안 되는데......’ 내 속도 모르고 아직 꿈나라인 아이들. 이럴 때 쓰는 나만의 처방이 있다.      


  “자, 피곤하지? 엄마가 마사지해줄게. 쭉쭉! 하늘 끝까지 기지개를 켜볼까? 그렇지, 잘하네. 팔이랑 다리도 쭉쭉!” 목 뒤부터 어깨를 지나 등, 가슴, 배, 팔, 다리까지 구석구석 눌러주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뽁뽁 소리가 나도록 잡아당긴다. 주문인지 바람인지 모를 짧은 기도도 곁들인다. 가슴을 손바닥으로 둥글게 어루만지며 “하나님, 오늘도 우리 선율이 마음에 아름다운 생각이 깃들게 해주세요.” 다리를 꾹꾹 누르며 “하나님, 오늘 우리 선우가 걸어가는 모든 곳에 복을 주세요.” 하는 식이다. 온몸을 돌아 기지개까지 시키고 나면 아이들 잠은 어느새 다 달아난다. 마무리는 역시 간지럼 태우기.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면서 깔깔깔 웃는다.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보통은 아이들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지만, 가끔 일어날 시간이 넘었는데도 콜콜 자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에겐 마사지가 특효약이다. 이걸 몰랐을 때 아침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다정한 말로 흔들어 깨워보기도 하고, 음악을 크고 작게 틀어놓기도 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둘째 선우는 큰 잠투정 없이 아침에도 배시시 웃으며 일어나는 편인데, 첫째 선율이는 달랐다. 충분히 자고 일어나 스스로 깨는 경우가 아니라 억지로 깨우는 날엔 늘 난리가 났다. 달콤한 잠을 방해한 엄마에게 아이는 짜증과 눈물로 반응했다. 안 그래도 바쁜 아침에 떼를 부리는 아이를 상대하다 보면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결국 모진 말로 아이를 울리며 시작하는 아침이 다반사. 겨우 우유에다 시리얼 좀 말아 먹이고 어린이집에 넣고 나면 나도 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날, 집에 오신 친정엄마가 “여기가 용천혈이라는 자리인데, 여기를 누르면 좋대.” 하면서 아이들 발바닥 가운데 부분을 꾹꾹 눌러주셨다. 아이들은 서로 “할머니, 용천! 용천해주세요!”하며 친정엄마를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엄마는 흔쾌히 손자들의 발을 주물러주셨다. 속으로 ‘아, 이거다!’ 싶었다. 그 후 아이들이 늦잠을 잘 때 친정엄마가 가르쳐주신 대로 발바닥을 눌러보았다. 처음이었다. 아이가 부드럽게 잠에서 깬 것은. 유레카!


  그 후 모닝 마사지는 아침잠이 많은 아이와 육아에 지친 엄마가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게 해준 나만의 비법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너무 사소한 깨달음일지 모르지만 내겐 귀중했다. 아침은 매일 어김없이 돌아오고, 일단 시작이 좋으면 하루를 잘 보내게 될 확률이 더 높으니까. 게다가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더 까다롭고 떼가 심해진 아이와 마주하는 일상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는 것 같았을 때, 이 비법 하나를 깨달은 것만으로 나는 마술봉을 쥐고 있는 사람처럼 든든했다. 적어도 너에게 접속할 수 있는 실패 없는 비밀암호 하나를 알게 된 기분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 혼자만 이 암호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몇 주 전 토요일 아침, 아이들이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나는 전날 늦게 잔 피곤이 가시지 않아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와서 내 몸을 마사지해 주기 시작했다. 제법 꾹꾹 힘을 줘서, 내가 저에게 해준 대로. 속으로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어린 두 아이와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막막하고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날들이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커서 나를 주물러주나. 아직 손아귀 힘이 세지 않아 재미로 몇 번 건드리고 가버린 둘째 놈과 달리 큰 아이는 그만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정성껏 내 몸 곳곳을 만져주었다. 그 손길에 피곤과 함께 오래 응어리졌던 마음도 같이 풀렸다. 실로 김병년 목사의 글은 옳았다.     


삶은, 시간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 사랑받은 만큼 사은하고, 사랑을 배운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한다. 그 사랑이 부모보다 커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사랑함에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모르면 아이가 되어 살아간다. (김병년)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를 지금껏 간호하며 아이 셋을 키워낸 김병년 목사님, 그분이 쓰신 글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사랑하며 보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그 속일 수 없는 시간이 모여 우리 인생이 된다고 되뇐다. 네 마음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랑의 비밀암호를 이제 나에게 돌려주는 걸 보며 너의 성장을 실감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겠지. 그렇게 사랑, 결국 남는 건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포기를 모르는 ‘반업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