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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Sep 20. 2016

나의 패트로누스

아이들이 해리포터에 푹 빠져있다. 

재미있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이불 위를 뒹굴거리며 책(나의 경우는 주로 만화책이었지만)을 읽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고 있기에 아이들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내버려 두었다. 

야심차게, 하지만 조금 버겁게 진행하고 있는 중국사 공부는 주나라가 멸망하면서 잠간 시간의 흐름을 막아놓고 나도 슬쩍 해리포터를 집어 들었다. 


'얘들아, 다른 공부는 안 해도 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하면서 책을 봐야 한다.'


할 일은 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애들 보던 책을 집어들고 하루종일 집안 일도, 다른 할 일도 내팽겨치고 있는 건 나, 엄마였다. 애들은 중간중간 운동도 하고 씻기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하지만 나는 책읽다가 졸리면 자고 깨서는 다시 읽다가 졸다가 읽다가... 이틀째 이러고 있다. 


재미있어서일까? 그래, 재밌긴 하다... 하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옆구리를 찌르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쉬고싶어 괜히 애들 핑게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너무 재미있는 책, 해리포터가 마치 늘어져 있어도 좋다는 허가증인 것 처럼...!

이틀동안 뒹굴거리기만 했더니 소화도 안 되고, 해리와 함께 온갖 악한 것들과 싸우느라 지친 나는 약간의 우울까지 덮쳐 무기력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아즈카반(해리포터에 나오는 감옥)에 갖힌 죄수처럼 즐겁고 행복한 기억은 디멘터(아즈카반의 간수이며 인간의 희망이나 좋은 감정들을 흡수해버린다)에게 다 뺏기고 소망과 기대 없이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같은 기분.....! 

그런데 어느 페이지에서 갑자기 나의 패트로누스(희망과 살고자 하는 열망 같은 것으로 디멘터를 물리치는 힘)가 나타났다! 해리가 남은 방학을 보내기 위해 론 위즐리의 집으로 가서 따뜻하고 유쾌한 위즐리 가족들과 재회하는 장면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개성 넘치는 론의 형들과 세련되진 않지만 사랑으로 꽉 차있는 엄마, 머글들의 물건 모으는 게 취미인 재미있는 아빠, 뭔가 익사이팅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온갖 물건으로 가득찬 통나무 집! 아! 이런 분위기 참 좋다! 이런 집에서 이런 모습으로 홈스쿨링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마법을 부려서 나도 론의 집으로 가서 오후를 보내고 싶다...! 


무엇이 나를 깨웠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이 뛰고 왠지 심장이 팔딱거리는 느낌이 나를 채우고 있었다. 뭔가 있다. 론의 집에는. 나를 깨우는 뭔가가 있었다! 

어쩌면 홈스쿨링을 처음 시작하며 꿈꾸었던 그림이 이런 분위기였을까? 

나는 어쩌면 매일 이렇게 활기차고 예상불허의 모험같은 홈스쿨링을 꿈꿨나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실은......

반복되는 일상과 가~~~끔 마주치는 신비.

별스러울 것 없는 하루와 뛰.... 엄.... 뛰.... 엄 있는 감동.

다행인 건 매일 익사이팅을 꿈꾸는 엄마와 달리 두 아들은 일상과 반복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보다 훨씬 더 현실에 뿌리 박고 있는 아이들이다. 


부러움과 동경으로 론의 집을 그리며 뒹굴거리다가... 갑자기 론의 말이 기억이 났다!! 집에 처음 놀러온 해리가 신기한 듯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론이 약간 소심하게 했던 말!  


It's not much. but it's home...

론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론의 가정이, 그 집이 얼마나 따뜻하고 재밌고 아름다운지.....!!!

이야기 밖으로 나와있는 나는 볼 수 있었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론에게는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집도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집이 이야기 속에 나온다면....나는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

특별한 무엇이 주어져서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특별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일어나 가만히 집을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널부러져 있는 건 론의 집이랑 비슷하네...ㅎㅎ  거실에서 두 놈이 티격티격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웃는 소리도 들렸다. 거실 베란다에선 우리집 강아지 사과가 잠꼬대를 하며 실룩거리고 있었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냉장고에 붙어 있었다. 넘어가는 해가 작은 방을 통과해 거실로 햇살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나의 패트로누스는 바로 지금, 이곳에 있다고! 


나는 이틀만에 가장 씩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얘들아! 배고프지? 뭐 먹을까?"

"엄마! 고기! 고기반찬 해주세요!"

요즘 매일매일 키가 크고 있는 아들놈들이 소라도 잡을 기세다! 고기를 줄이고 채식을 지향하려는 엄마지만 오늘은 이놈들이 게걸스럽게, 맛나게 쩝쩝거리며 밥 먹는 걸 보고싶다! 

"그래! 알았어!"

"와! 감사합니다!"


나는 장을 보러 나가며 콧노래를 불렀고 다시... 설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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