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늦봄 Oct 06. 2021

아기가 엄마에게 화났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9월부터 흥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오는 적응단계까지 가고, 그다음 주부터 어린이집에서 낮잠까지 자기로 했을 때, 흥이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 거의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을 쉬게 되었다. 감기에서 회복을 하고, 어린이집에 다시 나간 게 지난주 금요일. 그리고 어제부터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게 되었다. 11월에 내가 복직을 해야 하니, 이제 어린이집 적응의 막바지 단계이다. 


어제 아침, 13개월이 된 흥이는 긴 연휴 탓에 어린이집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아침 낮잠을 충분히 못 자서 짜증이난 흥이에게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 가방과 낮잠이불을 챙겨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생각이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불어서 바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리둥절하던 흥이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간다는 것을 안 것이다. 


울고 있는 흥이가 교실로 들어가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약 5시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요즘에 유행이라는 오징어 게임도 보고, 아픈 왼팔 치료기도 하고, 점심도 먹고, 그동안 미루었던 흥이 옷장 정리도 했다. 흥이는 반 아이들과 놀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다시 일어나서 간식까지 먹는 긴 시간이었다. 잠투정이 심한 아기라서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잘 잘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잠은 잘 들었다고 한다. 다만 길게 자지 못해서 피곤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지난주까지 점심을 먹고 나면 데리러 오던 엄마가, 밥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났는데도 나타나지 않고, 오후 간식을 먹고서야 나타나자, 흥이는 엄마에게 화가 났나 보다. 아이를 픽업하러 갔을 때 내 얼굴을 보고 안도의 밝은 웃음을 지어준 후, 집에 와서는 눈도 안 마주치고, 웃지도 않고, 소극적인 행동만 보였다. 


평소에 좋아하던 커튼에 숨는 까꿍놀이에도 시큰둥하고, 엄마가 놀자고 따라다녀도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평소에는 놀이터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놀이터에 갈까 했더니 도리도리 하며 거부했다. 그리 좋아하는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도, 평소에는 팔다리를 파닥거리며 좋아하는데, 그저 주변을 관찰할 뿐이었다.  


저녁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저녁 7시에 잠에 들었다. 아이에게는 너무나 고단한 하루였나 보다.


잠이든 아기방의 불을 끄고 나와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며,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다. 


때마침, 같은 반에 새로운 친구가 2명이 와서, 그 친구들은 엄마와 함께 적응시간을 가지고 있다. 흥이는 우리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보이지도 않고, 평소보다 훨씬 늦게 자기를 데리러 왔으니, 그동안 엄마가 안 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을 것 같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다소 기분이 풀렸는지, 내 다리에 매달리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못난 엄마를 용서해준 걸까.


오늘 아침도 울면서 등원한 우리 흥이.


회사에서 나의 자리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지만, 우리 흥이에게 엄마의 자리는 대체될 수 없는데, 복직하기로 한 나의 선택은 과연 옳았던가. 주변에서는, 아이는 어차피 지금 시기는 기억도 못하며, 결국에는 적응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찢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 집에 돌아왔을 때, 흥이는 엄마에게 눈을 맞추며 웃어줄까?

작가의 이전글 12개월 아기,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