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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un 01. 2017

<여중생A>에서 미래가 걷는 꽃길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웹툰 <여중생A>(허5파6 작)의 주인공 ‘미래’는 네이버 웹툰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응원을 받는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은 작품 속 상황이 주인공이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읽어야 할 정도로 암울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초반 미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부정적인 상황인식과 자기비하에 빠진 인물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미래는 좌우명이 ‘호사다마’인 중학생이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고, 곧 나쁜 일이 생기게 될 거라고 암시한다. 친구들을 사귀는 데에도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등 매우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작품은 가정폭력과 따돌림의 경험이 주인공의 인간관계에 강한 장애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한 존재의 성향을 좌우할 정도로 강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미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러한 폭력적 상황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고, 그런 미래의 모습은 웹툰 곳곳에 독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자기반성과 그를 통한 타인과의 관계 맺음의 과정을 통해 미래는 점차 성장하게 된다.


작품 초반 미래는 현실의 고통을 게임을 통해 잊고자 한다. 그러나 점차 새로운 인물인 ‘이태양’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와의 관계를 통해 현실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여중생 미래가 짝사랑을 시작하면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학교에서도 점차 변해가는 익숙한 서사가 진행되는 듯 하다. 하지만 곧 둘의 관계는 어긋나고야 만다. 이는 미래의 성장이 기존 로맨스물에서의 성장과는 다른 쪽으로 흘러갈 것을 암시한다. 미래의 성장에는 남성이 큰 역할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다.


곧 미래는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자신이 쓴 글이 반응을 얻게 되자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자존감이 충족된 이후 미래는 점차 현실 속 타인과의 관계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이후 미래는 반 아이들과 조 과제를 하면서 친해지고, 그들의 무리에 속하게 된다. 더 이상 소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등 미래의 변화는 학급 친구들이 생기면서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미래가 점차 삶에 의지를 느끼고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래는 점차 친구들과의 관계로 자신의 닫혔던 마음을 열고 인간관계를 점차 확장해간다. 이 지점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우며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 과정에서 미래는 성장한다. 개인의 내면적 성찰과 연대가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여성 주인공은 성장하게 된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윤리적 주체는 기존의 남성적/여성적, 선/악, 우/열의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 있을 것이라 분석된다. 그리고 거대한 규범들이 해체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윤리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단독적인 윤리적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원칙에서 벗어난 연대여야 한다는 점이다.


조디 딘은 “반성적 연대” 개념을 소개한다. 반성적 연대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경청하고 이에 반응하는 의사소통적 과정을 공유하며 도달할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또한 내적이고 외적인 차이를 배제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차이를 장려하는 여성주의적 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반성적 연대에서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인정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가 타자에게 그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을 포함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미래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는 모습이나, 갈등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려는 노력은 반성적 연대의 모습으로 읽힌다. 미래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통해 완벽한 윤리적 옳음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실패하고, 반성하고, 다시 노력하는 과정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가 탄생한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 실수를 곱씹고 반성하며 천천히 성장하는 인물들. 이들은 미래와 함께 존재한다.      


이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잘 표현된다. 작품 초반 엄마는 가정 폭력으로부터 미래를 돕지 못하는 무력한 피해자이다. 그래서 미래 또한 엄마와도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고, 연대적 관계는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작품 중반 술 취한 아빠가 들어온 집에 엄마가 먼저 들어가면서 미래를 숨겨주거나, 미래가 아빠의 외도를 보고도 엄마에게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등 점차 폭력적 상황에서 약자인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한다. 그리고 결국 사고로 아빠를 잃게 된 순간 모녀는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이버불링과 마녀사냥의 일종으로 '아이피녀 사건'에 휘말린 유리 에피소드 또한 주목해볼 만하다. 이때 미래는 자신이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한다. 그리고 폭력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돕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자기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는 상황의 국면을 전환시키는 적극적 행동으로까지 나아간다. 주목해볼 것은 ‘미래’의 관계 확장 출발 지점에 ‘경험 공유’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어떤 권력에 억압되었던 각각의 사적인 경험은 폭력의 경중이나 사건의 경위 등을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도 ‘공감’을 통해 ‘이해’의 차원으로 한걸음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무력했던 ‘미래’는 주체적으로 서게 된다.

여기서 공감은 동정과는 다른 개념이다. 동정은 은혜를 베푼다는 태도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식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에 비해 공감은 수평적 위치에 있는 대등한 인간으로서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그를 위해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한다. 계급과 권위가 존재하는 관계 속에서는 공감이 아닌 ‘동정’밖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는 기존의 학원물 웹툰이 약자들을 대하는 방식에 종종 드러나곤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경우에도 약자에 대한 묘사를 철저하게 비관적으로 하는 것을 통하여 연민의 감정을 들게 하곤 했다. 더불어 주인공이 이후 약자들을 바라보며 정당화된 폭력으로 이들을 구원해주곤 하며 수평적 태도가 아닌 권위적 태도로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여중생A>의 주인공은 이러한 권위적 태도를 탈피한 존재이기에 뭉클하다. 자신이 친구가 생긴 이후,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동정이 아닌 ‘공감’에 가깝다. 이처럼 작품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해결에 동참하는 모습을 통하여 주인공의 성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현실 속 고통받는 타인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성장한 주인공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결 방식을 찾아낸다. 가정폭력에의 해소로 가부장의 명예 회복이 아닌 부재와 망각을 제시하거나, 글을 잘 쓰는 미래가 '등단'할 것이라는 댓글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미래는 남성 캐릭터와의 로맨스가 배제된 상태에서 여학생들과 연대하고, 어머니와 둘만 남게 된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다. 페미니즘적 주체의 성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느 곳을 향하는지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작품 속 '하늘이' 에피소드는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2016년 트위터를 강타한 #OOO_내_성폭력 고발의 출발은 ‘#오타쿠_내_성폭력’ 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서브컬처 영역에서 활동하는 한 성인 남성이 같이 활동하는 십 대 초반의 여성 유저에게 SNS로 성적인 농담과 요구를 한 것이 폭로되며 <여중생A>의 유사한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익명의 발화로 시작된 이어진 폭로는 다양한 성폭력을 가시화시켰다. 이후 해당 분야를 넘어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유사한 사건들이 폭로된다.


일상적이고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자조차 피해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이루어졌던 숱한 성추행의 고백들은 한 익명의 발화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연이은 고백들은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던 또 다른 누군가가 이어 말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사 경험들의 고백이 계속되며 문제를 공론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무력한 피해자였던 이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고백과, 타인의 경험에 대한 공감을 통해 연대하게 된다. 주체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연대한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다.


작품 속 미래의 성장도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는 상처 입은 과거를 극복하고 그 과거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주된 서사가 작품을 튼튼하게 지탱했기에 <여중생A>는 여학생의 성장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여성들을 기존의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소비하지 않았다.

작품은 완결되지 않았고, 미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수많은 댓글들이 미래를 응원하고 미래의 꽃길을 염원하고 있다. 미래가 앞으로 정말 꽃길만 걸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미래는 최근 화에서처럼 넘어지기도 할 것이고, 실수도 할 것이고, 또 다른 관계에서 어려움들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래는 반성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두 능력을 가진 미래는 이제 언제고 실수하는 자신을 이해하고 실수를 바로잡거나 혹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비롯한 우리의 성장 서사에서 실패보다는 
누구와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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