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치웁시다.
첫눈이 내렸다.
눈을 좋아하진 않지만, 첫눈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설렘이 있는 듯했다.
아직 노랗고 빨간 단풍잎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첫눈이 내렸다. 너무도 급하게...
단풍과 눈의 조화.
평생 살면서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해와 달의 만남처럼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작은 틈
아직 질 수 없는 단풍과
너무 급히 내린 첫눈의 만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학교에서 긴급 알람들이 울렸다. 폭설로 등교시간이 변경된다는 것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 더 재우고, 아침을 누렸다.
아파트 단톡방에는 밤 사이 폭설로 나무가 부러진 곳도 있었고, 차들도 움직일 수 없이 주차장도 마비가 되었다고 했다.
눈길에 미끄러울까 아이들과 등굣길을 함께 나섰다.
오늘따라 학부모님이 많이 보였다. 아마 다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학교 가는 길에도 나무가 부러진 곳도 있었고,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반쯤 휘어버린 나무도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마음이 통했다. 우리는 경비 아저씨께 삽을 빌려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짐을 들고 남편이 대부분 치웠다.
여러 사람이 밟고 다녀 빙판이 된 길을 눈 쓰레받기로 싹싹 밀었다.
어린 꼬마도, 늦게 학교 가는 학생들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혼자 많은 구간을 치우진 못했지만, 이곳을 지나다닐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들어오기 전, 아직 온기가 남은 핫팩을 들고 눈을 치우고 계신 70대 할아버지께 핫팩을 전달해 드렸다.
집에 돌아와 아파트 단톡방에 눈을 치운 소감과 사진을 함께 올렸다.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셨고, 함께 동참해 주신다는 분도 계셨다.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렸지만, 경비아저씨와 청소아주머니만으로 아파트 전체의 눈을 치우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각동에 한 명이라도, 자기 앞동 길만 조금씩 치워주면 사람들이 통행하기 한결 수월할 듯 싶었다.
오후에 길을 나서니, 경비 아저씨가 아닌 일반 주민들이 눈을 청소하고 있었다.
미처 부끄러워 고맙다는 말은 못 했지만 기분이 좋으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살던 동네에서는 제설차가 빨리 움직이기도 했고, 경비아저씨들이 새벽부터 눈을 많이 치우셔서 눈길이 쌓여있는 적이 별로 없었다. 첫눈인 데다가 폭설이라 모두 예상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아파트 주민들의 협심으로 아파트에 통행로들이 생겨났다.
내 집 앞 눈 치우기... 어릴 때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통 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씩 조금씩 서로 양보하고 돕는 사이좋은 아파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