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커피 됩니까?”
남편이 15년 근속휴가를 받았다.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식탁에 앉아있다가 남편이 일어섰다.
“밥 먹었으니 설거지 여보가 좀 해줘 “ 남편이 말했다.
“응, 알겠어. 오늘 뭐 해? 나랑 지하철 타고 학교 갈래?”
쉬는 김에 여행이나 어딘가 쉬었다 오면 좋겠지만 따로 일정을 잡지 않았던 남편이었다. 매주 월, 수요일에 나는 소설을 배우러 학교에 다닌다. 오늘 나가는 길에 지하철 타고 데이트도 하고, 서울에서 구경이라도 했으면 싶었다.
내가 의견을 물으니 남편이 대답했다.
“나 바빠 할 일도 많고 집 청소도 해야 해”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 예전에 전 남자친구가 여의도로 출퇴근할 때 평택에서 회사 앞으로 데릴러오고 그랬다? 나 늦으면 회사 앞에서 40분~1시간까지 기다렸는데... 막상 만나면 짜증은 하나도 안 내고 웃으면서 피곤하죠? 당 떨어졌죠? 이거 마셔요. 하며 달달한 커피를 건네주던 남자. 그 남자 진짜 스윗했는데.. 보고 싶다.“
천상 순박한 얼굴로 웃으며 미소 짓는 사기캐였던 그 남자. 식탁을 정리하는 남편의 옆모습이 그 남자의 실루엣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던 거 같아. “
”그 남자는 지금 어디 갔을까? 갑자기 달달한 커피가 먹고 싶어졌어. 바리스타님, 라떼 됩니까? “
”뜨거운 거? 차가운 거? “
”뜨거운 걸로 주세요 “
남편은 식탁의 접시를 치우며, 주방으로 돌아서 우유를 따랐다. 커피 주문까지 마치고, 잠시 옛 생각에 빠져있는데... 남편이 다시 나타났다.
”설거지도 내가 할게. 내가 하고 나가는 게 더 빠르겠다. “
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기캐 남편이라니...
나는 또 오늘 사랑에 빠졌다.
14년 6개월 전 만났던 전 남자 친구가 다시 나타났다.
난 오늘 너무 쓰레기 같았지만, 내 남편은 천사가 되었다.
옛 남친찾기 성공~!
내 연애는 젠병이었다.
맨날 망해버린 연애때문에 울었지만 결혼은 성공이길 바랬다. 그래서 제일 괜찮은 사람과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계속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같은 사람을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니!!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남자이기도 하지만...
사랑은 빠지는 것보다 오래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