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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05. 2015

시골역에 남아 있는 일곱의 나에게

성에 차지 않았던 시절에 남겨져.

오랜 습관이 있다면, 출발 시간 전에 터미널이나 역에 앉아 사람을 구경하는 일이 그렇다.


정신없던 일곱 살. 한 해 더 늦게 나온 동생의 손을 잡고 시골역 끝에서 신신당부하던 엄마가 있다. 동생을 어떤 말이든 복종하게 만들었던 바나나우유와 보름달 봉지빵을 쥐어 주며 "말 잘 듣고 형 손 놓으면 안돼." 한 번, 두 번, 세 번이나. 하필이면 열차의 마지막 칸이라 불편한 몸에 숨을 색색 몰아쉬면서도 마중 나온 엄마는 우릴 열차에 싣고도 출발까지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 집에 가는 게 무슨 대수냐고 아버지는 신경도 없었으나, 스물에게 열아홉 동생은 별 것 아니었어도 일곱에게 여섯의 동생은 감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할 때의 익숙했던 열차는 뒤틀린 채, 새롭고 위험하고 낯선 공간이 되어있었고 승객 모두가 우릴 공격할 것 같은 괴물로 보였다. 세상 모르고 잠들 수 있었던 동생 곁에서 눈을 비비며 모든 것을 지켜야 했던 난 얼마나 힘들었나. 그리 도착한 서울역엔 무수한 사람들, 무서운 괴물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 주소 하나만 보고 길을 묻기도 여러 번, 착해 보이는 아주머니나 늙은 할아버지와 경찰 아저씨들에게 쭈뼛쭈뼛 서울 사람 행세를 하려 다분히 애썼다. 화정역에 사는 할머니 집으로 가려고 대화행 열차를 열 번도 더 보내며 어째서 화정행 열차는 안 들어오는지. 역무원 아저씨가 알려주기 전까지 동생을 다독이며 기다려야 했던 마음도 모른 채 궁금한 것 많은 동생을 붙잡느라, 서울역까지 마중 나오지 못한 할머니가 야속해 집 앞까지 가서 초인종도 없는 문을 두드릴 땐 왈칵 눈물도 비집고 나왔다.


돈 백 원 잃어버리지 않고.

동생도 잃어버리지 않고.

나는 할미집 주소를 꺼낼 때조차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말 잘 듣고 형 손 놓으면 안돼."라는 말은 분명 동생을 보고 했는데도, 되려 나에게 동생을 잘 지키라는 의미 같았던지 한 번, 두 번, 세 번을 말하던 그 말의 무게가 내 몸 만한 배낭보다도 무거웠던 듯 싶다.




그 시절이 박혀, 난 역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한다.

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와 혹여 행선지가 같을까. 무슨 이유로 가는 걸까. 누가 아파서 급하게 가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나도 나의 차에 오른다. 기껏 오른 서울에 앞뒤 돌아보지 않고 할머니 집으로 곧장 향해야 했던 내가 서글퍼서. 엄마는 왜 동생을 같이 보냈나 얼토당토 않은 원망을 하기도 하고 서울역 근처에 살지 않은 할머니가 그렇게 미웠다.


동생에게 문득 그 이야기를 꺼내니 말하길,


"난  그때 형이 너무 무서웠어. 험상 궂은 얼굴을 하고 신경질적으로 할머니 집을 찾았거든. 난 이리저리 구경하고 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결국 할머니 집 앞까지 잘 가서 울어버리길래 오다가 뭘 잃어버렸는 줄 알았어."


형이어서, 형 이어야만 했었던 것들을 여전히 동생은 모른다. 동생이어서 모르는지도 모른다. 내 힘으로 한 서울행 여정에서 만난 고난을 엄마와 할머니는 달래지 않았고 칭찬도 없었다. 다만 당연히 여겼을 뿐이었다. 동생을 지키는 것, 어떤 일에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 비록 그 일 이후로 역마살은 나에게 신내림처럼 깊이 들어와 세상을 누비게 되었지만 수줍은 그 시절의 상처가 한 시간, 두 시간 전에 미리 날 역으로 향하게 한다.


아직 그 시골역에 남아 있는 일곱의 나에게

거칠고 불친절하고 무딘 위로를 건넨다.


"미안, 보름달 빵은 팔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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