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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22. 2017

미루어진 사랑의 흔적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일본 멜로 영화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감성을 감성이라 느끼는 수위는 미묘하고, 그것이 거북하지 않은 조건은 영상미의 완급 조절과 음악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 또한 완벽했다. 일본 로맨스의 대표작으로는 <러브레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등이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적 요소와 기법으로 보건대 최근 흥행한 <너의 이름은>이 가장 가깝게 떠올랐다. 담백하게 아픈 영화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불치병이나 시한부와 같이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장치를 깔아 생기는 가치를 영리하게 담는다. 어쩌면 뻔하다. 그러나 뻔한 것들에게 오는 감동은 이토록 먹먹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맹장염으로 병원에 간 하루키는 사쿠라가 떨어트린 ‘공병 문고’를 주워 든다. 자신이 아팠던 날들을 기록하는 일종의 병원 일기인 셈인데 아무 생각 없이 펼쳐본 공책이 대뜸 죽음을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공책을 찾으러 돌아온 사쿠라는 하루키의 무심한 태도에 흥미를 느끼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다. 어쩌면 그 비현실적인 초연함이 그녀에겐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교사가 된 하루키가 학교 도서관 일을 떠안으며 담당 학생에게 읊조리듯 과거를 회상하는 전개는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동급생 사쿠라가 죽을 것이라는 무거운 사실을 가볍게 던져 놓으니 덤덤히 옛날을 짚는 하루키의 표정이 더욱 쓸쓸하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에서 의구심을 품은 이들에게 말하듯 영화 초입 부부터 제목은 그 역할을 분명히 하는데 이 짧은 문장은 관객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한다.



아주 먼 옛날에 치료법이 제대로 없던 시절, 사람들은 어딘가 병이 생기면 꼭 동물의 그 부위를 찾아 먹었다고. 자신이 아픈 곳은 췌장이니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며 사쿠라는 마냥 유쾌하다. 겉으로 유난히 밝아 보이는 사쿠라는 단짝인 쿄코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밀을 하루키와 공유한다. 죽기 전에 무언가 하고 싶으니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는 사쿠라. 거절할 수 없는 부탁에 단 둘이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며 둘의 사이는 미묘하게 흐른다. 그러나 학급의 가장 인기 있는 여자아이와 외톨이인 소년을 중심으로 소문이 생겨나고 아랑곳없이 점점 도를 넘는 사쿠라의 장난에 하루키는 화가 난다.



내일은 아무도 몰라.

사쿠라는 하루키에게 고약한 소리를 한다. 어떤 사고로 인해 네가 더 일찍 죽을 수도 있으니 너와 내가 가진 하루의 가치는 같다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그 최선의 투정이 마음을 울린다. 공포를 견디며 꾸준히 웃는 일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하기도 전에 사쿠라는 하루키에게 강한 사람이라 말한다. 아마 자신에게 필요한 강인함을 어느새 하루키로부터 받아 견뎌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듯이.


그녀가 하는 말은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착각을 부수는 역할을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 하여 갑자기 엄청난 용기가 생기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삶을 훌쩍 깨닫거나 단번에 변하지 않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 사춘기의 소년 소녀는 여전히 수줍고 하루의 가치와 질량을 소화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쿄코의 과거 이야기로부터 온 질투를 들으며 맞춰지는 퍼즐은 그녀를 이해하게 한다. 사쿠라가 사람을 사귀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았음을. 진실과 도전이라는 카드 게임을 할 때도 자신의 나약함과 겁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빗댈 뿐이다. 사실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진실해지기 어려운 이유, 그래서 운에 용기를 맡기는 일이라는 것 역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반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없던 건 하루키 자신의 문제였다.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껌을 권하는 아이의 호의를 마침내 받아 들게 되면서 둘은 친구가 된다. 결국 언제나 열려있던 것들이었다. 친구와 친구가 된 것은 언제나 기억나지 않는 사소한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표현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렇게 소년은 스스로 내친 것을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사쿠라는 죽음으로 참 많은 것을 남기고 간다. 사람이 떠날 때 너무나 많은 것이 떠난다는 것을, 또 그 흔적들은 켜켜이 쌓여 일상에 훅 들어오는 순간들이 된다. 지금의 순간을 미루지 말라는 삶의 소소한 진리들을 건네주고 가는 소녀. 사쿠라는 쿄코와 하루키가 친구가 되길 바랬고 그 바람이 생전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도서관 속 몰래 남겨둔 편지를 전하며 둘은 친구가 된다. 먼 옛날, 병실에서 잔뜩 핀잔을 받으며 연습했던 '친구가 되어줄래?’라는 대사는 결국 쓸 곳이 있었다.



울어도 되겠습니까.

끝까지 애어른으로 감정을 숨기던 하루키는 사쿠라의 어머니 앞에서 공병 문고를 읽은 뒤 무너져 솔직해진다. 끝내 마음을 전하지 못했고 어리숙했던 청춘의 사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기에 내내 얼음 같던 소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솔직함엔 큰 용기가 필요하다던 사쿠라의 말처럼 우린 무너져 우는 소년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순간, 둘을 가로막던 것은 과연 죽음뿐이었을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그들에게 왜 사랑은 오늘 오지 않고 미루어졌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쿠라가 세상을 떠나던 날, 하루키는 구구절절한 문자를 집어치우고 다 지운 뒤 짧게 축약한다. 그녀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고 길게 한참을 적다 말고 무슨 짓인가.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췌장을 먹고 싶다는 문장 하나가 크게 울린다. 그녀가 다시 입원하게 되었을 때 학교에서 자료를 정리해 와 수업 내용을 가르치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시는 생각을 압축해 토해 놓는 것과 같아.





병약한 소녀, 그런 소녀에게 선택받은 순진한 소년. 남성적 판타지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영화는 아쉽게도 조금 까슬거린다. 죽음을 앞둔 명랑한 인기 소녀가 반의 외톨이 소년에게 하는 짓궂은 골탕. 이를테면 멜로의 정석을 따르는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란 감정이 끝없는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이미 세상을 떠난 이와 남아 있는 이의 교류는 사물과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통속적인 뻔한 장면을 가능케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 감성이 바닥나 연료를 채우려는 듯 눈물을 잔뜩 쏟는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내 옆에 앉았던 남자는 후드를 뒤집어 얼굴을 가린 채 도망쳤고 앞쪽에 앉았던 남자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며 으스댔다. 영화는 순수했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미로 그 순수를 견디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이란 것이 흐르는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또는 버텨냄을 자랑으로서 역할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의 흔적을 보는 일엔 때로 눈물이 따를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그만큼 괜찮은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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