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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13. 2017

전장의 아메리카노

영화 <강철비>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한반도를 살아가는 민족에게 따라다니는 전쟁의 개념이란 영화 가까이 붙은 죽음과 같다. 이미 <변호인>으로 한 차례 영화계에 돌풍을 일으킨 양우석이 만든 고작 두 번째 작품 <강철비>는 자료조사에만 10년이란 세월을 소모했다. 영화가 끝난 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박수가 의미하는 바, 민족 정서의 치부를 잘 건드린 <강철비>의 설득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판타지 영화로 단정 짓기엔 섬뜩한 시나리오를 이끄는 힘은 실제로 우리의 뇌 구조 속 다른 결론의 도출이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이에 필요한 건 딱 세 가지의 전제조건이다. 영화의 가정 상황이란 대개 맹목적 허구가 보통이지만 <강철비>는 그렇지 않다.



첫째, 정권교체시기와 맞물린 북의 쿠데타.

둘째, 북한 1호의 개성공단 방문 시점.

셋째, 전직 특수임무요원의 호위.


나쁘게 말하면 ‘좋을 대로’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한 1호가 의식을 잃고 쿠데타를 피해 남한으로 넘어오는 상황은 흔히 일어날 수 없으니까. 설정을 거부하고 영화의 시작점부터 흥미를 잃은 사람이라면 자주, 그리고 짧게 등장하는 주변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아마도 그 현실감에 주눅 들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는 장장 140분의 러닝 타임을 긴박하게 이끌어간다.




북한의 전직 특수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새로운 임무를 받는다.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세력의 수장을 제거하는 것. 그러나 개성공단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북한의 권력 1호. 임무와 다른 상황에 당황한 그는 남한으로부터 날아온 미사일에 초토화된 곳에서 의식 잃은 북한 1호를 모시고 탈출한다. 중국 고위 관료들은 전쟁이 일어난 줄 알고 급히 남한으로 탈출하는데 그 사이에 끼어 탈출한 엄철우는 권력 1호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지만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



강철비

나 남한 1호 모시는 사람이야. 전처와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으로 간 곽철우(곽도원)는 남한의 외교안보수석으로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다. 쿠데타 이후 공교롭게도 가장 빨리 정보를 얻게 된 그가 엄철우와 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상황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시대에 걸맞게 정보전의 위력을 실감하는 건 중국 쪽 정보통과 미국 CIA 요원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데 그 긴밀한 물 밑 작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남한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대선 이후, 정권의 이동을 할 시기에 벌어진 북의 쿠데타를 해결하는 데 있어 대통령과 당선인의 의견 차이는 상당하다. 보수와 진보의 입장을 보여주며 결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지 않는다. 전쟁 억제를 위해 선제 타격을 하느냐 혹은 대화를 이끌어 불안정한 시국을 견디느냐. 그렇게 두 명의 철우는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함께 밥을 먹다가도 서로에게 쉴 새 없이 겨눠지는 총구는 근본적으로 깔린 분단의 의심과 불안을 담은 클리셰다. 남과 북의 뚜렷한 입장차와 비견되는 공동의 목표는 전쟁을 막는 것. 어쩌다 같은 이름인 게 신기하여 무슨 한자를 쓰냐고 묻는 질문으로 둘 중 누구의 의미도 되지 않는 강철비. ‘철우’의 이름이 된다.



과거와 미래

과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변호인> 이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강철비>의 철학은 무엇일까. 함부로 담을 수 없는 미래의 극단적 상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분개할 수도 있는 일. 우리가 그 어떤 반대 없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우습게도 엑스트라의 입장이다. 영화의 출발은 아마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몰아칠 때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일렁일까.'라는 물음일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이권이 얽혀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일본이 대표적인데 영화를 보며 진행되는 그들의 태도에 화딱지가 나지만 너무도 타당한 논리를 갖는다.



감독은 북한 1호의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 북한의 일인자가 누구인지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역을 찾지 못해 하는 장난일까. 이는 정치적 시각에 의한 대립을 대표적 인물로 표현이 가능한 남한과 달리, 지속적으로 권력 1호를 이어갈 수 있는 북의 정권을 돌려 말한 것이다. 결국 이 상황이 무한히 지속될 수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빗대었음에 차라리 적합하다.


엄철우에게 쿠데타 주동자 암살 임무를 줬던 리태한(김갑수)은 사실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군부의 수장 박광동이 거슬리니 엄철우를 이용해 제거하려는 목적이었을 뿐. 인민을 희생해 만들어 놓은 핵을 권력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쿠데타로 드러난 것이다.


중국은 곽철우가 건넨 정보를 보는 앞에서 이리저리 넘길 정도로 어떤 쪽의 편을 들지 않은 채 전쟁의 승패를 관망한다. 입수한 정보를 주변국에게 모조리 제공하며 되려 객관적인 힘의 논리를 측정하려는 계산은 무섭게 들어맞는다. 반면 미국은 모든 수치를 돈으로 판단한다. '전쟁은 돈'이라는 단순한 명제로 선제 타격이 갖는 경제적 이득을 고려할 뿐 다른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 채 남한 1호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다른 모든 시나리오가 허구라 한들 열강의 태도는 부정할 수 없는 철저한 타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자.

과연 엑스트라는 엑스트라인가.



복합적 대결 구도의 이해

보수와 진보, 열강의 대립, 국민의 태도. 이 모든 대결 구도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은 무시할 수 없다. 계엄령이 선포되었음에도 다른 나라 이야기인양 커피를 마시는 국민들에게 CIA 요원은 ‘일상화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은 자조 섞인 곽철우의 말에 요원의 대답으로 ‘동맹국이 결코 정서적 동맹’까지 내포할 수 없다는 경계를 보여준다. 최근, 작가 ‘한강’의 뉴욕 타임스 기고문으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는데 미국식 정서상 돈으로 귀결되는 한반도의 전쟁을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 판단하지 말라는 사설에 걸맞다. 생존 배낭을 선물하고 미사일을 쏘는 북한을 보며 ‘또 난리네’라는 말이 결코 위트가 아닌 체념과 자조에 가깝다는 일에 동의한다면.


결국 주변국들의 힘겨루기를 벗어날 고루한 싸움에 실마리를 주는 건 영화의 결말이다. 핵을 발사할 암호키를 들고 북으로 복귀하는 엄철우는 위치추적기를 달아 쿠데타 무리의 본거지를 알린다. 북한 1호가 사망하지 않았으므로 쿠데타는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상황은 종료된다.


감독은 마지막 거래로 평화 노선을 향한 대안을 제시한다. 북한 1호를 건네주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 절반을 건네 달라는 요청. 핵을 막기 위한 핵무장으로 강제적 평화 노선을 구축한다는 제안은 결국 관객에게 마지막 딜레마를 던져준 셈이다. 무력 노선으로 갈 수 없는 환경적 제약으로의 결말은 결국 전부 다 죽을 수도 있다는, 비록 단순하나 확실한 방법이 된다. 주변국들이 함부로 정치적 개입을 할 수 없고 그에 좌지우지하지 않는 자주적 형태의 통일론으로써.





영화를 보고 하나의 긴 의견이 되어버린 그의 주장을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 앞서 말했듯 열강의 태도는 영화와 썩 다르지 않을 것이며, 꼭두각시가 되어 다시 한번 대리전쟁을 펼치지 않으려거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는 것.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


냉소와 자조를 지날 시기가 올 언젠가를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가 완벽하게 들어맞진 않더라도, 함부로 점칠 수 없는 미래의 예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저 국민의 정치적 의식에도 쿠데타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 흔한 배경음악 하나 몇 개 깔지 않은 묵직한 영화 속 지디의 노래가 유쾌하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고 그저 짐작될 뿐이다. 그는 과연 북한까지 들릴 노래의 미래를 알고서 제목을 지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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