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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23. 2018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1991년 6월 26일
선영에게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네가, 너희 반 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그 아이가 불쌍하다고 애처로워하는 걸 보고 엄마의 기분이 어땠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는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지?  
어쩌면 너와 나, 우리 가족도 그 아이와 같이 상복을 입고 남들이 애처로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거든.  
선영아, 그 때에 우리는 함께 굳세어지자.  
이 험한 세상의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강해져야 하거든.  
아빠는 엄마와 함께 열심히 투병하고 있지만 워낙 어려운 병이어서….  
아빠의 옆구리에 달린 호스와 주머니를 보고 너도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지?  
나는 도저히 너희들에게 아빠의 병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단다.  


1991년 11월 24일  
아빠는 오래 못살아.
어제 현우와 선영이는 자신들의 계획 때문에 아빠에게 못 와봤다.  
토요일인데도 위중한 아빠의 병실에 올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는 애들이 밉고,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얘기해버렸다.  
선영이의 연합고사 때까지는 이런 얘길 안하려고 작정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남편은 헛소리를 한다.  
초점없이 천장을 보고 있기도 하고…
선영이와 현우도 아빨 보고 운다. 나도 따라 울었다.  
애들이 운다고 나도 따라서 울면 안되는데…



다니던 중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막길로 20분 정도 쭉 내려오면 아빠가 입원해계신 병원이 있었다. 한번은 하교하면서 병원에 들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울먹이는 것을 친구가 보고 놀랐는데, 차마 나에게 뭐라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갔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원래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엄마도, 남동생도, 심지어 올해 6학년이 되는 아들도 눈물이 많다.  


그 눈물을 지금도 종종 참지 못하는데 젊은 환자가 임종을 맞이할 때 그렇다. 20대의 젊은이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절절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를 두고 저 세상으로 가야 하는 30대, 40대의 환자가 있으면 더욱 감정이입이 될 때가 많다. 가끔 병동 구석이나 계단에서 울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을 볼 때가 있는데, 대개는 아픈 부모를 만나러 온 아이들이다. 그들을 볼 때면 1991년 겨울 버스 차창에 비친, 눈물범벅 내 얼굴이 보인다.  


종양내과 병동 계단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은 대개 환자의 자녀들이다.

“선생님 30세 여자 환자 A씨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내원했습니다. 항암치료는 중단하신 분이고 흉수 증가 소견이 있으며...."

지난 겨울이었다. A씨. 익숙한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통의 외마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자들이 있다.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이들. 항암 치료가 힘들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효과도 좋지 않았던 분이다. 더 이상 도움이 안되어 일찌감치 접었던 상황. 환자도 힘들지만 나도 뭘 해줄 수 있을지 대안이 없어 괴로운 분들. 응급실에 왔을 때는 대개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폐 전이 진행이 빨라졌습니다. 점차 숨이 더 차실텐데, 이번처럼 폐에 물이 찬 것을 조금씩 뽑아주어야 좀 편하실거에요. 체력도 점점 떨어지고 거동도 힘드니, 효과적인 증상조절을 위해서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증상이 좀 좋아지면 항암치료 다시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언제나 처음같은 표정을 하고 물어본다. 외래에서 상담할 때마다 나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 그녀는 어두워진 얼굴로 진료실을 나가지만, 다시 돌아올 때면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처음같은 표정이다.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않아야 한다는 표정. 하지만 시간이 없다. 오늘은 쐐기를 박기를 작정하고 이야기한다.  


“환자분… 많이 안좋아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죽어요? 얼마나 남았는데요?”

“앞으로 한달 남짓…정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녀에겐 두 살짜리 아기가 있다. 언제나 처음같은 표정으로 돌아온 이유는 그 아기가 아니었을까. 그런 그녀가 무너진다.


“선생님…. 이번달만…어떻게 12월만 넘길 수는 없을까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데… 아기한테 12월을 엄마랑 헤어진 달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제발….”  


그 날은 어떻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환자에게 너무 미안해서, 두 살짜리에게 너무 미안해서, 환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별을 겪은 아이가 어떻게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슬픔을 어떻게 마음에 담아두게 될 지, 이별 이후엔 내가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떠나야 하는 부모는 이 모든 것이 두려울 것이다. 그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어서 나는 번번이 실패했고, 때론 울면서 병실을 뛰쳐나가는 못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환자를 살리지 못한다는 무력감 한가운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 이 비극에서 한발 물러난 의사로서의 자아를 지킬 수가 없다.

아니, 의사로서의 자아를 지킬 수 없어도 괜찮으니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한심하게 환자 앞에서 울어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의사보다는, 이별의 슬픔에 대해 말하는 두 편의 동화로 얻을 수 있는 위안이 더 클 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아빠가 예전에 사주셨던 책에서 본 동화들이다. 아빠는 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서울로 출장을 갈 때면 늘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창비아동문고 단행본을 열권씩 사들고 오시곤 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수일전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쌍둥이 아이를 해산한 어머니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내려온 천사에게 그녀는 빌고 있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누가 돌보느냐”고 읍소하는 어머니의 말에 천사는 빈손으로 올라가지만, 그 일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날개를 잃고 인간 미하일이 되어 내려오게 된다. 구두장이 시몬에 의해 구조되어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 미하일은, 쌍둥이 아이를 거두어 키우는 부부가 아이들의 구두를 맞추기 위해 방문한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또는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살아가지만, 사실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은 이 동화에 나온 종교적인 경구는 아직도 되뇌어보아도 완전히 이해를 하기는 어렵다. 신은 비정하고 아이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치밀어 오른다. 타인의 이타심을 막연하게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동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장치들은 한데 어우러져 그래도 무언가를 믿고 싶게 만든다. 처음엔 미하일을 돕는 것에 갈등하던 구두장이 시몬과  냉정했던 아내의 변화, 오만했지만 한치 앞의 자신의 죽음을 알 수 없었던 귀족, 미하일이 벌거벗겨진 채 버려졌던 러시아의 황량한 들판과 대조되는 시몬의 구둣방 안의 가득한 온기. 사람의 운명은 바꿀 수 없고 비극은 피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힘을 믿고 싶게 만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표지와 삽화는 원래 서양화가 이만익 화백의 작품이었다. 삽화와 어우러져 남아있는 이야기의 기억이라, 새 판본에선 이야기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또 하나의 동화는 E.B. 화이트의 “우정의 거미줄”이다. (시공사에서 낸 번역본인 “샬롯의 거미줄”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내가 읽은 것은 80년대에 나온 창비아동문고의 “우정의 거미줄”이다.)동화작가 케이트 디카밀로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지’에 대해 동료 동화작가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1]에서 이 책이 언급된 것을 읽고 나는 많이 울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샬롯의 대사, 아기돼지 윌버가 만끽할, 그러나 샬롯은 보지 못할 봄의 아름다움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케이트 디카밀로는 이렇게 말한다[1].  


E. B. 화이트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기에,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했죠. 그 슬픔을, 애통함을, 가슴 미어지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그는 자신의 독자들을 충분히 믿었기에 그들에게 진실을 말했고, 그 진실과 더불어 위안이, 또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던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독자들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보는 것, 또한 남들도 우리를 보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정의 거미줄> 80년대 읽었던 창비문고본은 반갑게도 아직 표지그림과 삽화 그대로 나오고 있다.

아기 돼지 윌버는 자신을 지켜주던 친구인 거미 샬롯의 죽음 이후 슬픔에 잠겨있었지만, 곧 그녀가 남기고 간 작은 아기 거미들을 보며 눈물어린 환호를 보낸다. 세상은 슬프지만, 슬픔이 있어 그만큼 아름답고, 그것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가 살아가는 방법은 부모를 잃지 않은 아이가 살아가는 방법만큼이나 여러가지이고, 반드시 결핍만이 그 아이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슬픔이 있는 삶은 다른 슬픔에도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색깔을 하나 더 지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는 잘 살아갈 것이라고.

지금은 아마 고인이 되었을, 두 살 짜리 아이를 두고 가야 했던 젊은 엄마에게, 그리고 병원 계단과 복도에서 울고 있던 어린 학생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와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을 글로나마 전해주고 싶다.  


저희 아빠도 12월에 돌아가셨어요. 크리스마스를 딱 일주일 남겨놓은 날이었죠.  

물론 저는 당신의 아이같이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어요. 중학교 3학년이었고, 그 전에 아빠와의 좋은 추억도 많았죠. 기억마저도 남겨두고 갈 수 없는 당신의 슬픔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직도 12월이면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힘겹게 내뱉던 아빠의 마지막 숨이 떠올라요. 아빠의 임종 이후 울다가 자고 일어나니 이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 같지 않았던 그 미어지던 극한의 괴로움도 다 떠올라요. 그리고 아직도 눈물이 나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크리스마스를 울면서 보내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한테 줄 선물도 사고, 맛있는 요리도 하고, 케잌도 사고, 집안에 트리 장식도 하죠. 송년회에 가서는 오랜만에 보는 이들 만나서 즐겁게 수다도 떨고, 새해 소원도 빈답니다. 아빠를 잊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슬픔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외면할 수도 없죠.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낙인 같은 것은 아니에요. 당신의 아이의 삶에는 기쁨도 정말 많을 거에요. 엄마가 없다고 해도 그걸 누릴 자격이 없는 건 절대 아니잖아요.   

슬픔을 안고 산다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을 기억하고, 슬퍼하겠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행복을 갉아먹진 않을 것이니 먼 곳에서도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슬픔을 견디고 받아들이며 더 강해질 것입니다.  

아이의 12월은, 크리스마스는 행복할거에요. 나의 12월이 그렇듯이.



[1] 번역가 김명남님이 타임지 2018년 1월자에 실린 이 글을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둔 내용을 인용했다.  https://starlakim.wordpress.com/2018/01/25/why-childrens-book-should-be-a-little-sad-kate-dicam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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