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되어도 피해 없는 스포주의
얼마 전 이머시브 공연 <슬립노모어>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일반 공연과는 달리 정해진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6층 건물의 100여 개 방을 직접 돌아다니며 관람하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입니다.
폐업한 대한극장 공간을 꾸며 만든 무대에서 23명의 배우마다 다른 동선을 그리며 연기를 하고, 마스크를 쓴 관객이 동선을 따라다니며 관람을 합니다. 이런 형식의 공연을 처음 관람하는 것이다 보니, 입장 전에 꽤나 긴장되고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궁금했습니다.
손에 도장을 찍고 입장을 하면, 짐을 맡기고 포커 카드를 한 장 받습니다. 어두침침한 골목길을 벽을 타고 따라가면, 맨덜리바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재즈 공연과 함께 칵테일과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무대 공간입니다. 본격적인 공연 관람 전에 재즈 피아노를 들으며 릴랙스 하는데, 현실과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 도착해서인지 마음이 편안하고 벌써부터 새로운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포커카드 순서에 따라 20명 정도 나누어서 입장을 하게 되는데요. 외국 배우분이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마스크를 쓰게 됩니다. 저는 안경을 쓰고 있어서, 마스크를 끼기가 불편했는데요. 가능하면 렌즈를 끼고 가시길 권장합니다.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나누어지게 되고, 저는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는데요. 엘리베이터 안내원 역할을 한 여배우분이 사람들을 나누어서 하차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내리기도 하고, 저는 마지막에 여러 명이서 내렸습니다. 정말 새로운 세계에 당도한 것처럼 섬세하게 꾸며진 무대 세트와 맥베스 세계관에 맞춰 분장한 배우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보게 됩니다. 어떤 배우들은 관객과 스킨십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관객 중 한 명을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관객석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정쩡하게 서서 관람을 하게 되는데요. 조금씩 이 공간에 익숙하게 되면서, 마치 관객도 하나의 조연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수많은 장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탐험하면서 마치 XR 기기를 쓰고 무대를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요. 점점 상황에 몰입하게 되고,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깁니다. 간혹 전라 노출 같은 19금 상황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게 되고 특정 배우에게 이끌려 1:1 상황도 기대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배우가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1:1 연기를 감상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저에게 그런 영광은 없었습니다.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배우들의 움직임에 관객이 초집중하고 배우의 동선을 쫓아 뛰어다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꾸며놓은 무대 세트가 너무 섬세하고 현실감이 느껴 저서 모든 공간을 돌아다니며 소품 하나하나 관찰하고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배우의 연기를 감상했습니다.
공연을 보러 가실 분이라면 미리 사전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챙겨가시길 권해드립니다. 워낙 랜덤 한 상황이 연출해서, 너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관람하면 오히려 맥락 파악이 안돼서 혼란을 겪을 것 같습니다. 저도 맥베스 줄거리를 다시 살펴보고 갔는데요.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추측하며 공연을 관람하니 더욱 재밌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수십 회 공연을 재관람하기도 한다는데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재관람해보고 싶긴 하네요. 체력 준비를 많이 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3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관람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