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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Oct 25. 2017

#15 <다시>

인생도 '새로고침'이 가능하다면

01 | 익숙함과 지루함은 닮아있다

 

얼마 전 부서를 옮겼다. 지역적인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맡고 있던 업무가 마무리되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어영부영 놀면서 월급 루팡이 될 수도 있었지만 왠지 잉여 인간이 된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어찌 보면 타고난 '노예근성' 때문인가 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말이다. 그래도 옛날 노예의 꿈은 '그냥 노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장 위주 정책 속에 유행했던  '자기 계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하다. 돌이켜보면 90년과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서점에 가면 명령조의 책이 많았다. '미쳐라', '해라' 등. 새로 옮긴 부서에서 첫 날을 보낸 느낌은 '아, 괜히 왔나...'였다. 용어도 생소하고 그런 것도 모른다는 시선. 새로운 일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가슴이 막히는 하루였다. 예전의 일이 익숙했고 그래서 지루했기 때문에 과감히 결심한 일이었지만 현실은 영화와 같이 활기찬 BGM  대신 주변의 수군 거림이었고, 상쾌한 굿모닝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변해있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바로 나였다. 지루함, 매너리즘, 도태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피하고 싶어 나 스스로 선택한 일이지만 기대와 다른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였다. 언젠가부터 하고 싶은 일은 사라지고 해야 할 일들만 남아있었다.



02 | 퇴사가 답인가

 

20대 회사에 입사하면 팀 내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된다. 복사, 자료 전송, 회의 준비와 같은 잦은 심부름으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하나의 소모품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퇴사를 생각할 즈음 대리로 승진한다. 이제 팀의 중요 보고 자료의 초안을 작성하고 그나마 '일'다운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번 보고 단계가 올라갈수록 본인의 생각은 묻히고 결국 최고 상사의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다시 퇴사를 생각할 즈음 과장으로 진급한다. '책임감'이란 견장이 무겁게 느껴질 즈음 다시 퇴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럴 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차장, 부장으로 승진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년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은 현실의 생계 문제에 매번 부딪히고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 

30대는 취업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잘 팔리는' 시기이다. 회사에서 허리 축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말로 '끼인 세대'. 이 시기에 확실한 커리어를 쥐고 있지 않으면 나머지 일생은 별 볼일 없는 신세로 취급된다. 보통 40세가 되기 전까지 배우고 부딪히며 익힌 기술로 은퇴까지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 시기에 퇴사는 20대의 도전과는 다른 중요한 선택이 된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일이 힘든 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30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중간자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과 부담이다. 회사는 위와 아래의 중간에서 조율을 해야 하고 그러한 역할을 부여한다. 참으로 머리 아프고 토하게 만드는 주문이다. 현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할 곳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무거운 추를 맨 듯 버겁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 그냥 그만두고 좀 쉬고 싶다.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일을 찾고 싶다. 그러나 현실에선 여전히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산다. 



03 |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요새 '퇴사'를 키워드로 검색을 한다. 이미 퇴사한 사람들의 전과 후를 보면 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마치 그것이 본인들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로 자부할 만큼 '퇴사'의 욕구를 자극한다. 회사에서 새로 익혀야 할 일들이 많은데 솔직히 재미있지 않다. 그저 한 만큼 보상을 받고 싶을 뿐. 직장 내에서 무엇인가 이루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은 바보라 한다. 직장이 아닌 직업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내 인생.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초라하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의 동굴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동굴 끝엔 빛이 있음을 믿는다. 다시 리셋(Reset)하고 싶은 나의 인생. 30대를 잘 보내고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다만 체력을 아끼며 살아가려 한다. 누군가 그랬다. 직장에서는 최소의 에너지를 사용하라고. 평생 죽을 때까지 내가 행복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싶다.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는 몇 가지 안 되는 단순한 일들로 퇴근 이후의 삶을 꾸며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적는 이 시간에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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