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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un 30. 2017

#14 <늙음>

시간과 친구 하는 법 

01 |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추위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아침저녁으로 매서운 찬바람이 줄기차게 불어오던 올해 겨울. 세월의 두께와는 정반대로 면역력이 약해지고 있던 건 분명했고, 매년 독감 백신을 맞고 있었다. 추우면 껴입고, 목도리에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을 해왔건만, 콜록콜록 시름시름, 기어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예전엔 약국에 가서 두어 개 먹고 나면 나았지만, 이 나이엔 무조건 병원이 답이다. 주사와 영양제를 맞고 매끼마다 약을 챙겨 먹어도 쉽사리 낫지 않는다. 하루라도 야근을 하는 날이면 눈은 퀭해지고, 걸음걸이는 천근만근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진 사람처럼 무거워졌다. 병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는 것. 이게 늙는 건가. 아직 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새로운 일을 하고 싶지만, '나이 제한'때문에 지원도 못한다. 뭔가 섭섭하다. 괜히 '외국은 나이 따위는 안 본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왜 이러지?' 속으로 푸념만 늘어놓는다. 말이 많아진다. 불평도 많아진다. 계획했던 일이 빨리빨리 안되면 화도 난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나 늙었다.



02 | 멋지게 늙는다는 건

 

후배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난 늙는 게 정말 싫다. 어쩔 수 없지만. 이제 끝난 거 아닌가?' 

'왜요? 난 얼른 멋지게 늙고 싶던데. 중후하게 딱 정장 입고 여유 있게 살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그의 말 한마디가 참 의외였다. 어차피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흐를 테고 나는 늙을 테지. 그런데 그 시간에 멋지게 늙을 수 있다니. 뭔가 삶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더 멋지게 늙어 보기로 다짐했다. '난 조지 클루니처럼 늙을 거야. 더 여유 있고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 볼 거야. 환경보호에도 앞장 서보고.' 

가정용 커피머신을 사면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03 | 나의 늙음이 과거 죄의 결과가 아니기를

 

영화 <은교>에서 스승의 도움으로 베스트셀러의 작가에 오른 제자 서지우가 상을 받는다. 그의 스승 이적요에게 열일곱 살 소녀에 대한 뜨거운 감정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저 망상이고 수치일 뿐이다. 그런 감정을 담담히 숨겨왔던 그. 서지우에 대한 질투는 한마디 말로 표현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살아있는 날 중에 제일 젊다고 하지 않는가. 나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분명 다시 돌아가고 싶겠지만 지금 해결 못한 일들은 나중에 시간이 흘러가도 후회로 남을 것 같다. 내 주변의 복잡한 일만이라도 해결되면 좋겠다. 누군가의 존경을 받기 위해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보단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그저 하루하루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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