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Dec 14. 2016

#11 <직장>

직장일까? 막장일까?



01| 쉼표가 마침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더 이상 '노동자'로 살지 않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품고 시작한 글쓰기(라고 쓰고 백일장이라고 읽는다). 직장에서 그간 있었던 내 심경 변화로 인해 이번 글을 쓰기까지 쉼표가 길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내가 켜켜이 쌓아놓은 삶의 무게로 단번에 쉬기까지 너무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의지가 꺼지면 다시 불을 켜고 하는 반복된 날이 계속되었다. 뜬 눈으로 여러 밤을 넘긴 후에, 심지가 굳어질 무렵 퇴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절차에 대해 알아보고, 작성해야 할 문서도 찾아보고, 실업급여도 어떻게 받는지 알아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누가 보면 벌써 뛰쳐나간 사람의 자리처럼 사무실 책상 위 물건을 싹 비워버렸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전화, 머그컵 끝. 그동안 이 회사에 들어와서 겪었던 힘들었던 관계에 대해 생각났다. 결재판을 집어던졌던 상사도 있었고, 본인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나를 이용했던 사람들. 퇴사할 때 눈길 한 번 안 주고 정문을 나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때론 슬며시 입가에 미소까지 지어지곤 했었다. 이쯤 되면 정말 직장 속 내 모습이 여느 아침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과 뭐가 다를까. 


마음을 굳히고, 주변인을 인터뷰해보았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지금은 그 결정에 만족을 하고 있을까? 내 아는 선배는 40대에 이직을 했는데, 지금 직장에 있는 것을 '행운이었다'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선배는 지금의 내 나이에 이직을 했고, 더 늦으면 힘들다고 했다. 나 보다 나이의 이점이 많은 후배는 어떨까.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진학하고 지금은 취준생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나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 업무는 내 심경을 아는 마냥 얼러주듯이 강도가 낮아 있었다. 철옹성 같았던 내 결심에 서서히 금이가고 있었다. 아무런 대책과 계획 없이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다. 불안을 용기로 바뀌는 변곡점은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서서히 진행된다. 반대로 용기는 종종 불안으로 쉽게 바뀐다.

이 정도면 막장이다.
 
 



02 | 그래도 출근


사람은 간사하다. 특히 본인의 이득에 대해선. 노동자로 살면서 매달 누리고 있는 마약과도 같은 포근한 일상들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다시 출근하여 모니터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마음은 '체 게바라'인데, 실제 행동은 줄이 묶여 있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개에게 소리 지르고 있는 '똥개'보다 못했다. 이게 현실이고, 험한 사회생활에서 살아남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성공한 자들과 인기 있는 노래의 가사들은 '너의 꿈'을 쫓아 살라고 하지만, 난 그저 직장인지 막장인지 모를 환경에서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하루 반 이상의 시간과 노동력을 바치고 있다. 


모든 영화, 드라마, 그리고 소설의 엔딩 같이 난 희망의 다짐과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메시지로 마무리하고 싶지만, 지금 난 그저 7일 중 그나마 2일만 승자로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버티자. 막장은 끝이 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나는 30대다. 지난 세월 동안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 있다고.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야.


작가의 이전글 #10 <여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