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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물러나,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자

당신의 취향은 어디에 속해 있나요? (Part 2)

by STUDIO 명랑


1. 한 발짝 물러나, 좀 더 넓은 시야로 브랜드들의 세계를 바라보기


이전 장에서 우리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철학의 프레임을 마주했습니다. 색 하나로 감정을 흔드는 비앙키, 감성과 성능을 설계하는 스페셜라이즈드, 기술력의 정직함으로 신뢰를 쌓는 자이언트. 그들은 단순한 탈것을 넘어, ‘우리는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에 각기 다른 언어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의 세계는 이 세 브랜드로만 설명되기엔 너무 넓고, 너무 다채롭습니다. 체레스테의 낭만에 마음이 기운다 해도, 결국 한 번쯤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됩니다. 더 가볍게, 더 빠르게, 더 멀리. 누군가는 에어로의 끝을 꿈꾸고, 또 누군가는 장인의 손길을 좇으며, 어떤 이는 조용히 실용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좀 더 넓은 시야로 브랜드들의 세계를 바라보려 합니다. 비앙키, 스페셜라이즈드, 자이언트가 감각과 감정을 자극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산업적 언어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죠. “지금 이 자전거 시장에서, 누가 가장 많은 바퀴를 굴리고 있는가?” “어떤 브랜드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손끝과 발끝에 닿아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타고 있는 자전거는 어디서부터 출발한 철학을 담고 있는가?”


브랜드의 세계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점유율, 생산량, 판매대수, UCI 팀 채택률, 시장 성장률… 마치 지도처럼 펼쳐진 이 숫자들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전거 시장의 물리적 지형을 알려줍니다. 물론 숫자만으로 자전거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브랜드가 왜 그렇게 존재하고, 왜 지금 그 자리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로드 자전거 세계의 지도를 펼쳐볼 시간입니다. 감각의 지도가 아닌, 점유율과 기술력, 브랜드 전략으로 구성된 산업의 지형도. 그 위에서 자이언트는 어떤 위치에 서 있고, 트렉은 어디를 지향하며, 비앙키와 콜나고는 어떤 방식으로 전통을 고집하는지—이제부터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숫자 위에 놓인 감각, 성능 위에 새겨진 철학. 그 복잡한 레이어를 풀어내며, 브랜드의 진짜 경쟁력이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2. 브랜드는 숫자 위에서 춤춘다 – 글로벌 점유율로 읽는 자전거 시장


자전거 브랜드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우리는 종종 색깔과 감성, 기술과 서사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산업의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언제나 숫자입니다. 숫자는 감정을 모릅니다. 대신 누가 가장 많이 만들었고, 누가 가장 많이 팔렸는지를 조용히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숫자들이 모여 세계 시장이라는 지도를 그려냅니다.


이 시장 지도의 중심에는 역시 자이언트(Giant)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만을 기반으로 한 자이언트는 2020년 기준 약 15% 이상의 글로벌 점유율을 차지하며 업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는 브랜드는 트렉(Trek)입니다. [주 1]


미국 위스콘신의 작은 창고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꾸준한 품질과 넓은 라인업,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내 탄탄한 유통망과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약 6~8%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트렉은 자전거를 물건이 아니라 관계로 바라봅니다. 고객과의 신뢰, 매장과의 파트너십, 선수와의 계약—모든 접점에서 성실한 브랜드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성장에는 어떤 꾸준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친구처럼요.


그리고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는 숫자보다 더 감각적으로 성장해온 브랜드입니다. 이 브랜드의 글로벌 점유율은 약 4~6% 수준으로, 자이언트나 트렉보다는 작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자이언트와 비견되는 또 하나의 대만 브랜드 메리다(Merida)도 탄탄한 기술력을 자랑합니다. 메리다는 OEM 기반의 생산 경험과 자체 라인업을 함께 발전시켜온 브랜드로, 글로벌 점유율은 약 2~4% 사이를 오갑니다. 화려한 마케팅은 없지만, 스펙 대비 가격의 효율성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으며 유럽 시장에서 두터운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메리다는 겉보기에는 자이언트보다 조용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전략적입니다. 리액토(Reacto)와 스컬트라(Scultura) 같은 모델은 퍼포먼스와 엔듀런스의 접점을 아주 정밀하게 다듬어낸 제품들입니다.


그 외에도 캐논데일(Cannondale)과 스캇(Scott) 같은 브랜드들은 각각 약 2~3%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며, 미드사이즈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캐논데일은 독특한 설계와 혁신적인 기술로 잘 알려져 있고, 스캇은 MTB와 로드 양쪽에서 모두 공격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이들은 마치 소규모의 혁신 연구소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비앙키(Bianchi)와 콜나고(Colnago). 이탈리아의 영혼을 담은 두 브랜드는 점유율로만 보면 각각 1% 내외에 불과하지만, 그 상징성과 감성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비앙키는 ‘체레스테’라는 색 하나로 브랜드를 설명하고, 콜나고는 수작업 프레임과 전통적인 장인정신으로 세계의 마니아들을 사로잡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숫자보다 기억에 남는 존재, 점유율보다 로망으로 존재하는 방식의 대표적 예입니다.


그리고 공기저항이라는 과학의 끝을 추구하는 체르벨로(Cervélo)는 매우 좁은 시장에 특화되어 있지만, 트라이애슬론과 타임트라이얼 분야에서는 절대 강자입니다. 프레임 설계의 정밀함과 공기역학적 효율성에서 이 브랜드는 이미 하나의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점유율은 작지만, 그 존재감은 레이스의 결정적 순간마다 빛납니다.


국내 브랜드 첼로(Cello)는 한국 소비자에게는 특히 친숙한 이름입니다. 글로벌 점유율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입문자에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가격과 스펙을 제공하면서 국내 시장의 허들을 낮춘 브랜드로 평가받습니다. 삼천리자전거라는 안정된 기반 속에서, 첼로는 ‘합리적인 퍼포먼스 브랜드’라는 포지션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브랜드를 숫자로만 바라보면 놓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점유율은 시장의 크기를 말해줄 수는 있지만, 브랜드가 주는 감각의 농도까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브랜드는 겨우 1%의 점유율로도 수많은 감성을 건드리고, 또 어떤 브랜드는 세계를 지배하면서도 조용히 그 성능만으로 감탄을 이끌어냅니다. 그렇기에 브랜드를 고른다는 건 단순히 시장의 강자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감각을 신뢰하고 싶은가를 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이 숫자 위의 세계에서 어떻게 각 브랜드가 자신만의 '다름'을 증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의 활약, 기술의 진화, 그리고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점유율 너머의 진짜 경쟁력’을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1] 이 순위는 산업 보고서(Statista, Allied Market Research, Research and Markets), 브랜드 연례 보고서, UCI 팀 장비 목록, 판매량 기반 랭킹, OEM 수출 규모, 대회 스폰서십 등 실증 기반 데이터와 업계 평가를 종합한 것입니다. 데이타 취합 방법에 따라 이 순위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자전거 브랜드의 점유율은 지역별 편차가 크며, 북미·유럽에서는 Specialized, Trek, Canyon의 점유율이 강세를 보이는 반면, 아시아나 남미에서는 Giant, Merida가 강세입니다. 최근엔 Canyon이나 Decathlon Van Rysel 같은 브랜드들도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보 중입니다.





3. 숫자 그 너머, 투르 드 프랑스에서 브랜드는 서사로 증명된다


그러나 시장의 점유율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로드 자전거의 세계에서 진짜 실력은 결국 가장 극한의 레이스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단 하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입니다.


매년 7월, 프랑스와 그 주변국을 종횡무진 누비는 이 레이스는 단지 사이클 대회를 넘어, 기술과 인내, 서사와 감각이 맞부딪히는 가장 극적인 무대입니다. 21일 동안 3,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리는 이 지옥 같은 여정에서, 라이더와 브랜드는 함께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레이스에서의 성과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브랜드의 신뢰, 성능, 그리고 철학의 증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100년이 넘는 전설 속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브랜드는 누구였을까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 자전거 브랜드는 단연 피나렐로(Pinarello)입니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피나렐로는 2023년까지 총 16회의 종합우승을 기록하며, 자전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르 드 프랑스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크리스 프룸(Chris Froome), 게런트 토마스(Geraint Thomas), 이간 베르날(Egan Bernal) 같은 선수들이 모두 피나렐로를 타고 종합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들은 팀 스카이(Team Sky)와 그 후신인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스(Ineos Grenadiers) 소속이었습니다. [주 2]


그 다음으로는 로체(Rochet)와 알페스카(Alcyon) 같은 고전 브랜드들이 각각 10회 안팎의 우승 기록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1930년대 이전의 기록입니다. 현대 레이스에서의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보면,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와 트렉(Trek)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습니다.


트렉은 1999~2005년 란스 암스트롱의 7연속 우승(이후 약물 문제로 취소됐지만) 당시 절대 강자였고, 2007~2010년에도 알베르토 콘타도르가 트렉과 스페셜라이즈드를 오가며 경쟁했습니다. 스페셜라이즈드는 2010년대 이후 줄리안 알라필립, 피터 사간 등 개성 강한 선수들과 함께 수많은 구간 우승과 포인트 저지를 차지해 왔고, 팀으로는 보라-한스그로에(Bora-Hansgrohe), 쾨닉-퀵스텝(Deceuninck–Quick-Step) 등의 핵심 스폰서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최근 5년, 투르 드 프랑스의 흐름은 새로운 브랜드 조합과 전략의 시대였습니다. 2020~2022년의 무대는 UAE 팀 에미리트(UAE Team Emirates)의 타데이 포가차르(Tadej Pogačar)와, 윰보-비스마(Jumbo–Visma)의 요나스 빙에고르(Jonas Vingegaard)의 2인 체제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포가차르가 타는 자전거는 콜나고(Colnago), 빙에고르는 체르벨로(Cervélo)였습니다.


콜나고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수공 브랜드였고, 체르벨로는 에어로 설계에 특화된 캐나다 브랜드였습니다. 이 둘은 기존 주류 브랜드(트렉, 스페셜라이즈드, 자이언트 등)에 비해 다소 ‘비주류’로 여겨졌지만, 이 두 선수의 활약으로 단숨에 세계 최정상 레이스에서 검증된 브랜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체르벨로 R5는 빙에고르의 업힐 전략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콜나고 V3RS는 포가차르의 전천후 퍼포먼스를 뒷받침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이언트와 메리다도 팀 DSM이나 바레인 빅토리어스(Bahrain Victorious)와 같은 팀을 통해 투르 드 프랑스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종합우승보다는 구간우승이나 팀 단위 전략에서 강점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두 브랜드 모두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전 세계 수많은 일반 라이더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투르 드 프랑스처럼 극한의 퍼포먼스와 전통이 집약된 무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주연보다는 조연의 위치에 가깝습니다.



[2] 피나렐로(Pinarello)는 이탈리아 트레비소에서 1952년 창립된 고급 로드바이크 브랜드로, "퍼포먼스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성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레임을 제작해왔습니다. 특히 에어로다이나믹 설계와 비대칭 프레임 구조를 통해 공기 저항 최소화와 페달링 에너지의 효율적 전달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여, 2022년 기준 총 16회의 팀 종합 우승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우승 프레임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브래들리 위긴스(2012), 크리스 프룸(2013, 2015, 2016, 2017), 게런트 토머스(2018), 이간 베르날(2019), 타오 게오게건 하트 등의 우승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피나렐로는 단순히 빠른 자전거가 아니라, 속도에 최적화된 예술품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전통적인 이탈리아 수제 철학과 최신 에어로 기술을 정교하게 결합시켜 왔습니다. 특히 대표 모델인 Dogma(도그마) 시리즈는 ‘레이싱 바이크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수많은 프로팀의 선택을 받아 왔습니다. 이는 곧 피나렐로가 ‘단지 빠른 것이 아니라, 승리를 만들어내는 기계’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 브랜드는 어떻게 세계를 설득하는가


자전거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재질과 똑같은 부품으로 만들어도, 어떤 브랜드는 감탄을 사고, 어떤 브랜드는 의심을 받습니다. 결국 브랜드의 경쟁력이란 단지 ‘무게’나 ‘스펙’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가 어떻게 이 브랜드를 기억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 이름을 다시 꺼내느냐의 문제입니다.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은 단지 판매량이나 점유율로는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브랜드가 어떤 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는지, 어떻게 기술을 브랜드 철학과 연결짓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타는 자신’을 상상하게 만드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브랜드는 역시 피나렐로(Pinarello)입니다. 앞서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확인했지만, 이 브랜드는 그 이전에 ‘럭셔리’라는 키워드를 먼저 선점한 브랜드였습니다. 페라리의 프레임을 만든다면 아마 이런 방식일 것입니다. 다소 과한 디자인, 화려한 도색, 그리고 정밀한 가공의 디테일. 피나렐로는 가격보다 자부심으로 팔리는 브랜드입니다. 오히려 “너무 튀어서 안 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브랜드. 하지만 그만큼 한 번 빠져들면, 다른 자전거가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면, 캐논데일(Cannondale)은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사이의 균형감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알루미늄 프레임의 왕으로 불리던 시절을 지나, 카본 시대에도 독창적인 설계와 꾸준한 기술 혁신으로 입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좌우 비대칭 체인스테이(ASYMMETRIC DRIVETRAIN), 오프셋 프론트 포크, Lefty 서스펜션 같은 캐논데일만의 독창적인 시도는 호불호를 떠나 브랜드 자체를 기술적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단지 라이더가 아닌,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에게도 캐논데일을 ‘한 번쯤은 소유하고 싶은 프레임’으로 만들었습니다.


스캇(Scott)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로드, MTB, 트라이애슬론을 넘나들며 공기역학과 경량화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해온 브랜드. Addict, Foil 같은 모델은 극단적으로 얇은 튜빙과 매끈한 지오메트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경쟁 브랜드보다 한 발 빠른 소재 실험과 과감한 설계 덕분에 ‘기술에 적극적인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다만 브랜드 감성보다는 기능성과 경량, 퍼포먼스 지향성이 강해 대중적 브랜드보다는 ‘빠릿한 사람들’의 선택을 받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룩(LOOK)은 그 존재 자체가 ‘예술’에 가깝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이 브랜드는 클립리스 페달을 최초로 상용화한 혁신의 상징이었으며, 로드바이크 디자인을 조각처럼 다듬어왔습니다. 비대칭 프레임, 노출된 카본 레이어, 화려한 도색. 어떤 면에서는 탈것이라기보다 ‘갤러리에서 전시해야 할 오브제’에 가까운 자전거입니다. 점유율이나 우승과는 별개로, LOOK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브랜드의 ‘존재 가치’를 설계해왔습니다.


윌리어(Wilier Triestina)는 이탈리아 전통 브랜드 중에서도 유독 시적입니다. 붉은 크롬 도색과 유려한 곡선은 이 브랜드가 단지 속도만을 추구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무대는 작지만, 그 프레임 위엔 여전히 '장인의 숨결'이 서려 있습니다. 프리미엄 로드바이크 시장에서 ‘비앙키는 알지만, 윌리어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말처럼, 이 브랜드는 감성과 안목을 중시하는 라이더에게 선택받는 브랜드입니다.


한편, 오베아(Orbea)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자전거 브랜드로,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르카(Orca) 시리즈는 올라운드 바이크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브랜드 철학에서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점도 독특합니다. 유럽 현지 생산, 친환경 소재, 지역 고용까지 브랜드의 확장을 넘어서 ‘브랜드가 살아가는 방식’을 설계하는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목할 이름은, 바로 한국의 첼로(Cello)입니다. 삼천리자전거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시작한 첼로는 한때 ‘국산 브랜드’라는 한계 속에서 머물러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유럽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프레임 설계와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카본 기술의 정밀도는 꾸준히 발전해왔고, XLR 시리즈, 케인(Cayne), 엘리엇(Elliot) 같은 모델은 퍼포먼스와 가성비의 균형을 보여줍니다. 특히 첼로는 국내 실정에 최적화된 지오메트리와 사후 관리(AS) 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으며, 입문용부터 중·상급기까지 단계별 라인업이 잘 구성되어 있어 첫 자전거로서의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해외 브랜드들이 상징성과 감성으로 ‘로망’을 자극한다면, 첼로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라이딩 경험을 설계합니다. 물론 투르 드 프랑스의 우승 리스트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첫 라이딩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첼로는 많은 한국 라이더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브랜드입니다. 그 점에서 첼로는 점유율보다, 그리고 수출보다 더 깊은 ‘기억의 점유율’을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각 브랜드는 시장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를 선택합니다. 누군가는 기술로, 누군가는 감성으로, 누군가는 가격으로. 브랜드 경쟁력이란 단지 점유율이나 우승 횟수의 총합이 아니라, 브랜드가 자기만의 자리에서 얼마나 선명한 메시지를 유지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라이더의 선택 위에서 천천히 증명되어 갑니다. 어떤 브랜드는 누군가의 첫 자전거로, 어떤 브랜드는 마지막 꿈으로 남습니다. 그 다양한 감정과 기억의 무게가, 오늘도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5. 브랜드의 세계를 지나,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


로드 자전거 브랜드는 신기하게도 하나의 색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때로는 단단한 성능으로 자신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의 첫 라이딩에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브랜드는 특별한 가치를 얻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만화, 『겁쟁이 페달』, 그중에서도 2015년에 개봉한 극장판 『겁쟁이 페달 : 더 무비(劇場版 弱虫ペダル, 2015)』에 등장하는 자전거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주인공 오노다 사카미치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소호쿠 고교 자전거부에 들어가며 숨겨진 잠재력을 터뜨립니다." (※ 참고)

이 영화는 TV 시리즈의 전국체전 이후를 무대로, 일본 전역의 강호들이 모여 치르는 특별 레이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오노다 사카미치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소호쿠 고교 자전거부에 들어가며 숨겨진 잠재력을 터뜨립니다. 극장판 속 그는 전국체전의 경험을 발판 삼아, 동료들의 신뢰와 응원을 등에 업고 다시 레이스에 섭니다. 신입이면서도 마지막 승부를 책임지는 소호쿠의 새로운 에이스로 성장한 오노다. 그가 동료들의 헌신 속에서 라이벌들과 맞붙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도 함께 페달을 밟는 듯한 열기를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극장판 속 캐릭터들이 실제 브랜드의 자전거를 타고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오노다는 Cervélo R5, 이마이즈미는 Pinarello Dogma, 나루코는 Colnago V1-r, 마키시마는 Specialized Tarmac을 타며, 라이벌 팀에는 LOOK과 BMC 같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각 자전거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합니다. 장비와 인물이 하나로 이어져, 브랜드의 정체성이 곧 캐릭터의 개성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고등학생이 수백만 원대 자전거를 타는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 선수가 실제로 사용하는 기종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만화를 넘어서 세계 무대의 선수들이 느끼는 몰입과 긴장, 그리고 로드 자전거가 주는 묵직한 희열을 잠시나마 공유하는 듯한 감각이 듭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로드 자전거 브랜드들이 세계를 어떻게 설득해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우승의 서사로, 어떤 브랜드는 장인의 손끝으로, 또 어떤 브랜드는 기술을 감성으로 번역하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구축해왔습니다. 브랜드는 단 하나의 색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단단한 성능으로 입증되기도 하며, 누군가의 첫 라이딩에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치를 완성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결국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매장 앞에서 가격표를 바라보며 고민하게 되는 그 순간—질문은 단순해집니다. “그래서, 이 자전거… 값어치를 할까?”


다음 장에서는 로드 자전거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가성비’라는 이름의 냉정한 리얼리티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자전거는 감성의 물건이지만, 동시에 지갑과 다리 근육 사이의 합의이기도 하니까요. 이제 우리는 성능과 감성, 브랜드와 가격의 복잡한 방정식을 다시 펼쳐볼 시간입니다. 이 세계에서 진짜 ‘합리적인 선택’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 장으로 넘어갑니다.



※ (참고) 본 스케치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弱虫ペダル / Yowamushi Pedal)』 의 한 장면을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원작자 와타나베 와타루(渡辺航) 및 저작권자 아키타 쇼텐(秋田書店)에 사전 허락을 받지 않은 참고용 창작물이며, 상업적 목적이 아닌 에세이의 서사적 맥락 속에서 ‘함께 달리는 열정과 청춘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원 저작물의 모든 권리는 원작자 및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발칙한 요약: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지난번에는 비앙키, 스페셜라이즈드, 자이언트 세 브랜드의 '감성'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물러나, "그래서 실제로 어떤 브랜드가 가장 크고, 어떤 브랜드가 세계적인 대회에서 인정받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봅니다. 숫자로 보는 자전거 세계 지도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시장 점유율: 전 세계에서 누가 가장 많이 팔까?

압도적인 세계 1위는 자이언트 (Giant)입니다. 이름 그대로 '거인'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전거를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브랜드입니다. 2위는 트렉 (Trek).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꾸준한 품질과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3위는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판매량은 3위지만, 영향력은 1위 못지않은 '자전거계의 애플'입니다. 기타 주요 브랜드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리다 (Merida)는 자이언트처럼 대만에서 온 실력파 브랜드로, 뛰어난 가성비로 유럽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비앙키 (Bianchi) 와 콜나고 (Colnago)는 판매량은 1% 정도로 적지만, 그 이름만으로 모든 라이더를 설레게 하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첼로 (Cello)는 우리나라에서 입문용 자전거로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브랜드죠.

투르 드 프랑스: 세계 최고의 대회에선 누가 이길까?

'투르 드 프랑스'는 자전거계의 월드컵입니다. 여기서 우승하는 것은 브랜드의 기술력을 세상에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승자는 피나렐로 (Pinarello).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챔피언' 자전거입니다. 특히 2010년대에 여러 번 우승하며 명성을 굳혔습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브랜드, 콜나고 (Colnago) & 체르벨로 (Cervélo). 요즘 세계 1, 2위를 다투는 두 선수(포가차르, 빙에고르)가 타는 자전거입니다. 덕분에 세계 최정상급 성능을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전통의 강자, 트렉 (Trek)과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꾸준히 우승권에서 경쟁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브랜드들입니다.

그 외에 알아두면 좋은 개성 만점 브랜드들

세상에는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브랜드가 아주 많습니다.

피나렐로 (Pinarello)는 페라리처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럭셔리' 자전거입니다. 캐논데일(Cannondale)은 남들과 다른 독특한 기술과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혁신가'. 스캇 (Scott)은 가벼운 무게와 빠른 스피드에 집중하는 '날렵한' 이미지의 브랜드입니다. 첼로 (Cello)는 무엇보다 한국 라이더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성능을 제공하는 고마운 브랜드입니다. 당신의 첫 로드자전거가 첼로였다면, 이미 훌륭한 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 장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자전거 브랜드의 가치는 판매량(숫자)만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가장 많이 팔리는 자전거가 있고, 가장 큰 대회에서 우승하는 자전거가 있으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자전거도 있습니다. 이 다양한 브랜드의 세계 속에서, 나의 예산과 마음에 맞는 '나만의 자전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각 브랜드는 시장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를 선택합니다. 누군가는 기술로, 누군가는 감성으로, 누군가는 가격으로. 브랜드 경쟁력이란 단지 점유율이나 우승 횟수의 총합이 아니라, 브랜드가 자기만의 자리에서 얼마나 선명한 메시지를 유지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라이더의 선택 위에서 천천히 증명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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