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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Sep 06. 2019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출발

사실 교육 경력이 그리 길지 않아서, 고작 9년의 경력을 가지고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선배 교사, 동료 교사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선생님들과 교직에 대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었을까. 가 국어 교사로 남든지 진로 교사로 전과를 하든지, 교단에서 지낸다면 피가 되고 살이 될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교감 선생님


나는 영어 교사로 지내다 전문직으로 전직하고 교감 발령을 받았다. 교육계에 지내며 깨닫게 된 교사의 장점은, 자신의 적성과 강점에 따라 폭넓게 자신의 저변을 넓혀나가고 역량을 발휘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로 지낼 때는 이를 잘 못 느꼈고, 일찌감치 전직을 했다.

당신은 국어 교사로 지내면서도 충분히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 철학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영어 교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뒤처진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만, 국어 교사는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 자리라 생각한다. 우리 학교에 계시는 수석 선생님이 참 좋은 롤모델이니, 참고 삼아 지내보는 것좋을 것 같다. 교과 교사로서 지내다 진로 상담으로 갔을 때, 수업 시수나 업무 등이 메리트가 될 순 있지만, 한편으로는 입지가 다소 줄어드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진로 교육은 진로 교사만 하는 것이 아니니, 진로에 관심이 있다면 국어 교사로서 전문성을 쌓으면서 동시에 좀 더 진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추후 전문직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담을 통한 보람과 뿌듯함은 진로교사로서 상담할 때보다 담임교사로서 일 년간 학생과 관계를 맺은 상황에서 상담 때 더 클 것이다. 진로진학상담은 일회적인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매우 존중한다. 그리고 당신은 어느 위치에 있든 어떤 일이든 잘 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만약 진로 교사가 된다 하더라도 전문직으로 꼭 나가면 좋겠다.


동료 국어 선생님

 혼자 뚝딱뚝딱 수업을 새롭게 구성하는 걸 좋아하고, 혼자서도 이런저런 행사를 추진하는 등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 진로 교사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미 짜여 있는 교육과정을 따라 수업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주체적으로 나서서 진로 교육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상담도 참 잘 어울린다. 진로 교사로서 일 잘 못한다거나 힘들어할 것 같은 의구심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동료 영어 선생님


어! 그거 해! 진짜 좋겠다. 나도 하고 싶다.


선배 진로전담 선생님


나는 진로 교사가 되어 인생의 이모작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다. 영어 교사로 지낼 때는 판에 박힌 수업을 하고, 평가 때문에 아이들을 옥죄는 듯한 느낌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면 수업도 재미가 없고 아이들을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진로를 담당하게 되면서 수업의 재미도 더 느끼게 되었고, 내가 하는 일에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저런 다양한 일도 시도해 보고 도전해 보고, 그걸 교육에 적용하고 결과를 보는 것이 참 좋다.

진로 교육은 크게 진로 상담과 교과 수업, 체험 계획과 수행 정도의 세 파트가 있는 것 같다. 진로 상담은 주로 수월성 교육 학부모 상담이나 인문계와 특성화의 경계에 놓인 학생 상담이 많다. 교과 수업은 한 학년을 도맡지만 시수가 많지는 않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자유학기제 진로 수업을 구상하고 실행한다. 그리고 각종 체험을 학교 안으로 끌어오거나 바깥으로 나가 하도록 계획을 짜고 인솔, 지도한다. 수업이 적어 편해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기에 의욕이 있는 교사라면 당연 일이 많아진다. 수업 준비조차도 지 않다. 로 교육 자료로 한 번 쓴 자료는 다음 해에 쓸 수 없어 버려야 할 정도로 시대가 빠르게 변하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업 연구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진로 교육에 대해 철학과 의욕이 없고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감수할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편한 자리일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진로 교육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일이 끊이지 않는 자리이다. 진로 교육에 진정 뜻이 있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뿌듯함도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리이다.


동료 전문상담 선생님


요즘, 전문상담교사와 마찬가지로 진로 교사를 전문화하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제는 '진로 교사로의 전과'가 과원인 과목의 교사를 전환하는 용도라기보다는, 실제로 학교 현장의 진로 교육을 내실화하려는 일환으로 보인다. 담임교사도 좋지만 진로 교사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자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진로 교사들 중에 전문직으로 가는 경우도, 관리자가 되는 경우도 최근에는 꽤 있다. 승진이나 전직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자리이며, 당신이라면 충분히 잘할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전보 다닐 때 학교당 한 명뿐이라 외지로 가거나 자리를 못 찾아 고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상담 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학교에서는 진로 교사에게 일반 상담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있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리고 번외편... 나의 짝.

남편

국어 교사로 십 년, 진로 교사로 십 년 살아보는 건 어떤가. 한 가지를 십 년 정도를 꾸준히 했으면 다른 데 도전해 볼 만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엄청 오랜 시간 국어 교사로 지낸 것은 아니지만 국어 교사로서 해 보고 싶은 것들이 특별히 더 이상 없고, 이 삶에 지치고 재미를 잃었다면 새 분야로 나아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직업으로서, 돈을 번다는 측면에서 단순히 생각해 볼 때, 같은 돈을 벌어도 더 관심이 가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짝꿍의 이야기는 특별하진 않았다. 하지만 짝꿍의 말 중 한 단어가 꽂혀서 도통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을 해라. 지금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면, 겁내지 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도 좋을 것이라는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어쩌면 나를 움직인 말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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