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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간호일기

해몽

간호일기

by 간호사 박도순

해몽


몇 가닥 실밥 터진 금빛 월계수 위에 태극 마크가 허름하다. 모자를 눌러쓴 강 씨가 또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보나 마나 막걸리 몇 사발 드신 것이 분명하다. 태연한 척하셔도 당신의 혀는 힘을 잃었고, 눈동자는 이미 노을처럼 붉다. 귓불에 눌린 백발이 곱슬거렸다.


“볏짚에 불붙은 거 마냥 또랑이 버∼얼건 거라. 시상 천지 그렇게 많은 까재는 첨 봤네. 버글버글한 그거를 한참 바라보다가 집으로 왔지. 할망구가 왜 안 잡아왔냐고 어찌나 성화를 대던지. 할 수 없이 다시 가봤더니, 이번에는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여. 거 참 희한하다고 생각하면서 빈손으로 돌아왔지. 눈 떠보니 꿈이여 꿈. 소장! 이게 무슨 꿈인가? 해몽 좀 해보시게.”


어르신은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흥얼거렸다. 민물 가재가 엄청 많은 것을 만나는 꿈,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사라진 꿈. 해몽 좀 해 줄래? 나는 AI에 채팅을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친절한 답변이 좌르르 펼쳐졌다.

해석 아래로 더 많은 글밥이 쏟아졌고, 여러 단서를 더 이야기해 주면 상세하게 풀이를 도와줄 수 있다며 커서가 깜빡거렸다. 참고 문헌까지 물고 왔다. 딸칵딸칵! 클릭. 나는 화면에 나타난 글밥을 다 읽어드리지는 못했다. 다만, 누군가 돈을 들고 나타나든지 선물을 들고 나타난다네요. 길몽입니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허허허. 얼어 죽을 길몽은 개뿔! 어르신은 허탈하게 웃으시더니, 며칠 전에 겪은 일을 말씀해 주셨다.


“할아버지! 서울에는요, 이런 것을 버릴 곳이 없어요. 태울 곳도 없고요.”

“이놈아! 그렇다고 이걸 여기로 싣고 오면 어쩌자는 것이냐?”


테리비 보니까로 해당화 뿌링이가 그 병에 좋다고 하드만. 내가 말이여, 전라도 땅끝마을까지 가서 그 나무를 캐온 사람이네. 큰메누리 살려 보것다고 안 댕긴 산이 없어. 다 소용없는 일이 되았네. 고것이 가고 나니까 손자란 놈이 아 글씨, 서울로 보낸 약초를 죄 싣고 무주로 내려왔더랑게. 감잎, 칡즙, 돼지감자, 더덕, 오갈피, 잔대, 민들레, 망개나무, 소나무껍질. 말로 다 못 햐! 밭 가운데 놓고 불을 싸질렀네. 뜯지도 않은 택배 상자를 불에 내던지니 잘도 타드만. 그래, 잘했다, 잘했다고 했지. 소장! 밭 가운데 앉아 울었네. 며느리 첫 제사가 어제였어. 큰아들은 즈 각시 숫밥이나 떠 놨는지 모르겄네. 우리는 우리대로 밥 한 그릇 떠 놓고 숟가락 하나 얹어놨었네.


“어르신! 돈 들어올 꿈이랍니다. 혹시 선물 들어오면 꿈풀이 삯 좀 주세요.” 나는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크게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식 웃으시더니, “부탁 하나 더 하세. 육백아흔세 평, 십 일만 원씩이면 얼만가?” 육백아흔세… 곱하기 십일만…. “그깟 밭뙈기 놔두고 죽으면 뭐 허것는가? 어떤 놈이 여기 들어와서 농사지었다간 굶어 뒈지기 십상이네. 나 죽으면 조상님께 면목이 없네. 오늘 땅금 남은 거 준다는 날인디, 그 돈 들어올랑 갑네. 소장 해몽이 참 신통하고만.”


진료실 창가로 다가가 뒷짐 진 채 모퉁이 돌아가는 당신을 바라본다. 함께 걸어가는 그림자가 비틀거린다. 며느리는 살아생전 당뇨 합병증으로 투석까지 받은 것으로 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환자 수칙은 얼마나 많았을까. 셀프 케어 실천하기에도 버거웠을 것이다. 무엇이 당뇨에 도움이 될꼬 하여 끊임없이 서울로, 서울로 쏘아 올린 것들. 당신의 소원은 만날 수 없는 며느리를 보고 싶어 그리워하신 것이 아닐까. 방문 간호 출장에 나섰다. 제사 후 남은 것이라며 술병을 꺼내신다. 잔을 내미신다. 나는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앞에 놓으신다. 받아 든 막걸릿잔 속에 전구 보름달이 일렁인다. 한숨 불어 휘휘 마시는 한 잔. 반주 없는 단가(短歌)를 안주로 읊조린다.


이 몸 태어날 때 우리 부모 기쁘셨나. 할망구 평생 연분 하늘이 주셨지. 나 젊고 각시 어여쁘니 무엇이 부러울까. 검은 머리 파 뿌리 대더락 살자더니 늙어지니 쪽파로 갈라지는 신세로다. 나라 유공 탑을 세워도 또랑에 불 지른 가재가 칠천 아니라 칠억을 데려와도 무슨 소용이랴. 꿈자리 어이 이리 심란하오, 소장님아! 자는 듯이 편히 눈 감는 약 있걸랑 그거나 한주먹 줘보시게.


노년에 겪는 상실의 슬픔은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물리적 손실을 넘어서는 심리적 고독은 감정의 소진을 부른다. 강 씨는 애통의 배를 타고 오늘도 눈물의 술강을 건너신다. 깊은 무의식 골짜기에 취기로 지친 당신 몸 누이실 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간호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행하는 간호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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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읍,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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