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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리꽃

정원에세이

by 간호사 박도순

마타리꽃



입대를 앞둔 쌍둥이 중 큰아이가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차량 흐름을 수신호로 정리하는 일이란다.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작업화에 안전모, 햇빛 가리개 토시를 챙긴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대견했다가 짠했다가, 자랑스러웠다가 안쓰럽다. 퇴근 후 식탁에 마주 앉으면 아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힘들지? 점심밥은? 현장 분들이 잘해 주니? 모르는 것은 여쭤봐. 안전이 우선이다. 적당히 꾀도 부려. 알았지?” 꾀를 부리라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성 과잉 오지랖을 떨기도 한다.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어머니!”


아들은 웃으며 대답한다. “힘들죠. 나만 힘든 게 아니잖아요. 괜찮아요. 식당 이모님들이 잘 챙겨줍니다. 맛있어요. 현장 분도 다들 친절하세요. 덤프 기사님들 차 안 온도는 40도가 넘는대요. 에어컨 틀어도 소용없어요. 포클레인 기사님들도 마찬가지고요. 먼지 때문에 마스크 써야죠, 자외선 때문에 긴팔, 긴바지, 장갑 챙겨야죠, 복면까지 완전무장이라니까요. 저야 알바생이지만, 그분들은 베테랑이에요.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멋져. 측량 기사님, 기술사님, 작업반장님, 직원들 모두 핵간지라니까.”


기술사님이 말씀하시길, 하루이틀 만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험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녀석도 며칠 하다가 말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고 좁은 길 따라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침마다 안전을 기도한다. 마당에 들어서는데 마타리꽃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실편백나무 둘레에 심은 꽃이다. 아침 햇살이 양산처럼 퍼지면 금빛 실루엣은 더욱 선명해진다. 특유의 연초록을 잃지 않는 나무 아래를 환히 에워싼 마타리꽃 기운은 단아하다. 몇 해 전 산책길에 우연히 마타리꽃을 마주했다. 한참이나 서서 바라봤다. 오래도록 잊고 지낸 사랑을 다시 만난 반가움이랄까. 밤나무 아래에 아무렇게나 뒤엉켜 자라고 있는 모습은 순하고도 순순했다. 흔한 듯 귀한 저 꽃. 나는 씨앗이 영글기를 기다렸다가 받아왔고 어린 뿌리 몇 개는 데려와 심었다.


옹기종기 자잘한 꽃무리,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하면 마치 움켜쥐고 있던 노랑 매듭이 풀리는 듯한 장관을 이룬다. 장마가 끝나가는구나, 무더위가 시작되겠구나, 가을 소식도 머지않았구나. 꽃은 계절의 시간표를 데려와 안도와 각오를 준다. 여름을 잘 버텨보자는 비장함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럴 때면 나는 이 꽃을 더 자주 올려다본다. 꽃밭에 마타리를 심고 놓고 다시 만나다니. 상상조차 못 한 일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 심오함. 그렇게 마당으로 들여온 꽃이 뿌리를 내리더니 이 여름에 첫 꽃을 피운 것이다. 어느새 나를 내려다본다. 손이 닿지 않는 하늘 자리로 피어올라 자태를 뽐내는 미다스 왕의 사랑꽃.


엄마 생각이 난다. 동생을 돌보던 어린 시절. 혼자 서지도 못하는 동생을 마루 구석에 세운다. 나름 꾀를 내어 등에 업는다. 엄마 젖을 먹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칭얼대던 동생은 솟대골 지나 서당골 어귀에 다다르면 등에서 잠이 든다. 멀리 도라지밭에 계신 엄마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낮달 같던 우리 엄마. 한 번 더 동생을 들춘다. 땀에 젖은 나는 얼른 동생을 내려놓고 싶지만, 엄마는 동생을 받기보다 잔소리부터 하셨다. 울지도 않는 아를 왜 업고 왔느냐고. 그때는 몰랐다. 아, 엄마는 한 고랑이라도 더 일을 하려고 그러셨구나. 어린 내가 엄마 속뜻을 알 리 만무하다. 게다가 나의 잔머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본능적인 것이었을까. 멀리 엄마가 보이기 시작하면 잠든 동생 엉덩이를 꼬집는다. 울어야 아니, 울려야 했다. 깜짝 놀란 동생이 울기 시작하면 대성공이다.


“왜 그러냐? 어여 와라~” 엄마의 우렁한 목소리가 또랑을 건너온다. 메아리가 골짜기를 치면 더위에 졸고 있던 마타리꽃도 깜짝 놀라 몸을 떨었을 것이다. 엄마의 음성을 듣고 힘을 내어 걷던 오솔길, 그 길에는 늘 들꽃이 피어 있었다. 진달래, 창포, 착한 도깨비방망이 같은 깨끔 나무꽃. 바위틈으로 숨어들던 꽃뱀. 유년의 기억에 각인된 세포의 창밖 풍경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절정이다. 산 그리메 옆으로 검뿌연 소나기 기둥이 다가오면, 달궈진 흙내가 훅훅 올라오고, 시큼털털한 엄마 땀내가 젖내와 뒤우러지면 밭자리를 감쌌다. 그러면 어느새 소나기 기둥은 저 혼자 부서지다가 사라지기도 했지.


마타리는 한여름 불볕 태양과 때로 태풍과 맞선다. 나는 마타리가 서 있는 저 자리에 한 시간 아니, 반 시간도 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가녀린 자태는 더 애련하다. 어디 마타리뿐이랴. 식물이든 사람이든 삶의 경이로움과 경외감마저 드는 동력의 기저가 무엇인지 거추한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냥 그 자체, 존재 그 자체로 위대하다.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거룩하다. 여름은 더운 것이 여름이니까. 당연한 것을 뭐 새삼스럽게 묻냐는 아들의 달관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옆으로 뻗은 꽃가지 하나, 일 나가는 아들 어깨를 툭 건드린다.

마타리, 꽃은 노랗다.



@무주읍,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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