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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삽질의 결과

에필로그. <라이프 리셋>

by 스텔라윤


처음 리셋 버튼을 눌렀던 2015년,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게 두렵기도 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야?"


"나는….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어."


"네 삶에서 주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뭔데?"


"자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나한테 자유를 주는 것 같아."





10년 삽질, 아니 리셋의 결과


10년 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둥지 틀었던 나무를 떠나 나무 심을 땅을 다지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때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웠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나를 믿어줄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품고 끙끙거렸다. 두려움을 덮어버리고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겠지만,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텅 빈 땅을 얄팍하게 덮고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삽질이 시작됐다.


흙범벅이 되어가며 리셋 버튼을 눌러온 결과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면, 내 안에 꽈리를 틀고 있던 두려움이 자리를 비켜주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려고 노력하며 삶의 모든 것에 진심인 나를 지켜보면서 자기 불신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의 신 강성태 강사가 말하길 AI시대에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역량은 '자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능력'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려면 내가 고유한 존재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지지고 볶으며 몸으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좋은 길로 나아가려고 시도했던 경험과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끝까지 마무리 지었던 기억이 쌓여서 자기 자신에 대한 깨지지 않는 믿음이 된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내가 소중한 만큼 모두가 그러함을 알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삽질을 시작해 볼까. (unsplash.com)



운명과 자유의지


시간이 흐를수록 삶 앞에서 겸허해졌다. 삶을 리셋한다는 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겠다는 용기이다. 하지만 삶을 내 뜻대로 좌지우지하겠다는 오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운이 팔 할 이상이며 모든 건 우연이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운조차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내가 의도하는 대로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 또한 '운명과 자유의지, 도대체 어떤 힘이 더 센 거야?' 저울질했던 적도 있으나, 몸소 겪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경우 운만으로 되는 일도 없었고 의도만으로 이뤄지는 일도 없었다. 의도가 확실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과가 좋지 않았고, 운이 나쁠 땐 의도와 상관없이 휩쓸려 가기도 했다. 최악의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운 좋게 최악을 빗겨 나간 적도 있었다. 운과 의도가 맞아떨어질 때는 작은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일이 술술 풀려나가기도 했다.


결국 커다란 흐름 안에서 깨어 있는 상태로 자유롭게 살겠다고 결론지으며 '운명 vs 자유의지' 논쟁을 마무리했다.




주체성과 내맡김


운명이라는 말이 자유를 박탈하는 것 같아 반감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선택들이 진정 나의 의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리셋은 거부하거나 지체할 수 없는 강렬한 앎에서 시작됐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의 신호를 깨끗하게 읽어내는 것에 집중했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어떤 태도를 취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주체성을 추구하는 그 과정에서 더 많이 연습해야 했던 건 내맡김이었다.


내맡기는 삶은 '될 대로 돼라.'라는 태도가 아니다. 유연하게 알아차리면서 순간마다 충실한 삶이다. 그리 긴 인생은 아니었지만 내맡기고 텅 빈 채로 순간순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영혼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다. 끝없는 파도타기 끝에 주체성과 내맡김 사이를 조율하며 살아가고 있다.


흐름에 내맡기는 동시에 나도 흐름 일부이자 전체임을 직감하게 되었고, 그 흐름에 사랑을 보태는 것이 결국 나에게 사랑을 보내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랑을 선택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살고 있다.




진솔한 자유


겉보기에는 단순히 이름과 직업을 바꾸고 엄마와 화해하고 소신껏 사랑하며 살아온 10년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주체성과 내맡김, 운명과 자유의지, 두려움과 사랑 등등 내면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몰아쳤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과정을 없던 일로 하고 삶을 리셋할 수 있다고 해도 섣불리 다시 갈아엎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자유는 '주체적 자유'를 의미했다. 30대 후반인 지금은 '진솔한 자유, 여과 없이 나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한다. 수많은 가치 중 진솔함을 선택한 것은 주체적 삶만큼 진솔한 삶 역시 나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10년은 주체성을 키워드로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10년은 진솔함으로 살아봐도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날들이 만족스러운 만큼 살아갈 날들도 기대가 된다.


10년 간 삽질하며 충분히 땅을 고르고 다졌다. 이 비옥한 땅에 무얼 심어볼까나. 아니, 무엇이 자라나려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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