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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엄마를 리셋하겠습니까?

by 스텔라윤


성인이 되고 피해 갈 수 없었던 건 엄마와의 관계 리셋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리셋 버튼을 누르고도 15년 이상의 과정이 필요했으니 가장 지지부진했던 리셋 버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 리셋은 어려웠던 만큼 나에게 가장 큰 자유를 주었다.


공저로 쓴 첫 번째 에세이 <사랑이 이긴다>의 1장에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해 시들어가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담았다.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삶의 뿌리이자, 뿌리내릴 땅과 같은 존재이다. 그리하여 나는 뿌리 없는 나무처럼 위태로웠고, 메마른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엉성한 상태로 살았다.

에세이 '사랑이 이긴다' / <누구나 처음 가는 길> 수록


엄마는 말한다.

"나도 알아. 내가 너한테 살갑게는 못했어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내 나름 최선을 다 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엄마의 사랑이었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우리 딸이 최고라고 엄지 척해주는 엄마가 필요했던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30년 동안 서로를 겉돌았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엄마와의 관계를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뿌리 없는 상태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지 못하면 부유하는 먼지처럼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겉으로 티 나지는 않지만, 내 안의 불완전함이 무겁게 나를 따라다닐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진실되게,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온전한 나로 살고 싶었다.


엄마와의 관계 리셋은 나 스스로와의 관계 리셋이었으며 모든 관계에 대한 리셋이기도 했다.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고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었기에 어떤 관계에서든 사랑받고 싶어서 눈치를 보고 애를 쓰며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날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게도 보인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신의 사랑이 아니라면.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것도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내가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슬펐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고 집안일을 돕고 용돈을 모아 엄마에게 선물을 사주며 노력했지만,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엄마 행복 되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물론 내가 엄마의 행복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자기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먼저, 삼 남매를 키우는 고됨에 늘 지쳐있는 엄마에게 즐거움을 되찾아주기로 했다. 처음으로 엄마와 데이트했던 날, 귀찮아하던 엄마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전시회며 덕수궁이며 여기저기 엄마를 끌고 다녔다. 억지로 따라나섰던 엄마도 밖에 나가면 표정이 풀리고 눈빛도 초롱초롱해졌다.


서로가 조금 편안해진 후에는 엄마와 여행하기 시작했다. 국내여행으로 시작해 단둘이 해외여행까지. 엄마도 어느 순간부터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겁게 여기는 듯했고 늘 어색하게 미소 짓던 엄마가 함박웃음을 짓는 순간도 늘어갔다.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 / 겨울의 삿포로


또 한 가지, 엄마의 취미를 되찾아주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복도에 걸 그림을 그려오라는 미션을 받고 난감해하니 엄마는 새벽까지 식탁에 앉아 수채화 물감으로 바구니에 담긴 과일을 그려주었다. 그 그림은 내가 졸업할 때까지 복도에 걸려있었고 그림을 볼 때마다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엄마에게 수채화 도구를 사줬는데 처음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 늦어서 무슨 그림을 그리냐던 엄마는 본능적으로 연필과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에서 아크릴화, 유화까지 섭렵한 엄마는 독학으로 프랑스 자수도 시작했다. 이제 그림과 자수는 엄마의 오랜 취미가 되었다.


지금도 습관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아유, 할 게 너무 많아. 바빠 아주 바빠! 그림도 그려야 되고 자수도 놓아야 하고 밥 할 시간도 없다니까."라고 말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그림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엄마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나아진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어린 날의 깊은 상처가 건드려져 생채기 나는 날도 많았다. 때로는 엄마에게 따져 묻기도 했고 섭섭함을 토로하며 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변화는 내가 나를 돌보기로 선택하며 찾아왔다. 명상하고, 내면 글쓰기를 하며 나와 대화하고, 내면의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기쁘게 하는데 시간을 썼다. 남들 생각으로 가득 찼던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나 홀로 텅 빈 공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그렇게 숨통이 트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주변을 살필 여유도 생겼다.


엄마를 리셋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꾸는 것, 그리고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뿐이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이해해보기도 하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함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엄마와의 관계도 조율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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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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