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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콘텐츠 산업, 어떻게 볼 것인가

인공지능과 콘텐츠 비즈니스 미리보기

by 이성민

인공지능과 콘텐츠 산업의 관계를 고민한 결과를 얇은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책에 어떤 생각들을 담았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책에 담긴 글의 일부를 발췌해서 공유합니다.
(서문과 1장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서 재구성했습니다.)

전문은 아래의 책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이성민(2025). <인공지능과 콘텐츠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북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256481


기계는 디지털 데이터를 이해하고 학습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로 변환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는 모든 영역은, 인공지능이 가장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콘텐츠 산업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성장해 온 대표적인 분야로, 다수의 콘텐츠가 이미 디지털 데이터의 형태로 전환되어 있고 많은 창작의 과정들 역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까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다.


그동안 우리는 창작을 오롯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겨 왔다. 이제 우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음악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기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인간의 것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기계가 인간보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에, 인간의 창의성은 어떤 지점에서 기계와 차별화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콘텐츠 기업은 창의성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기술의 변화에 빠르게, 그리고 적절하게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과거의 미디어 기술 발전 과정도 이러한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전파의 발명은 ‘방송’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영역을 만들어 냈고, 사진의 발명은 화가들의 화풍에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음원 기술과 인터넷의 발전은 스트리밍 방식의 서비스와 저작권 관리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인공지능 기술이 기존의 디지털 전환에 버금가는 근본적인 변화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그 변화의 영향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은 범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이 콘텐츠 제작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짧은 콘텐츠의 경우에는 유용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반면, 깊이 있는 전문 콘텐츠 제작에서는 더 많은 고민과 발전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콘텐츠 산업 전반을 인공지능 기술이 완전히 바꾸어 가기에는 꽤 오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영향이 콘텐츠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무엇이 콘텐츠인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지속적으로 기존 콘텐츠 산업의 여러 전제들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예를 들어, ‘무엇이 콘텐츠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과거 미디어와 콘텐츠가 결합되어 있던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와 비교할 때,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콘텐츠는 보다 유동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미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도 콘텐츠는 더 이상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형태로 변환되고 재구성되며, 이용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액체 미디어(liquid media)’의 특성을 보인다(이성민, 2022).


이는 콘텐츠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인식을 바꾸는 변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가 동일하게 완결된 형태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과거의 미디어 콘텐츠는 정해진 러닝 타임과 분량, 고정된 서사, 소비의 속도 등으로 완결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공되었다. 이제 우리는 콘텐츠 자체를 각자의 속도로, 각자가 원하는 부분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도 디지털 전환 시기에 하이퍼텍스트가 ‘텍스트’의 존재 양식을 바꾼 것처럼, 콘텐츠가 데이터로 세분화되어 학습되고 결과물을 생성하는 과정을 통해 데이터의 존재 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콘텐츠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들은 프롬프트의 형태로 분석되고, 다양한 학습 모델들을 적절한 비율로 조합한 결과로 다시 인식될 수 있다. 이용자의 개입에 의해 보다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형태로 콘텐츠가 설계될 수 있으며, 이용자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기존보다 더 유동적인 형태로 콘텐츠의 존재 양식이 변화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콘텐츠의 재구성을 보다 용이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콘텐츠의 유동성을 한층 더 강화한다. 이로 인해 콘텐츠는 완결된 것이라기보다 언제든지 재구성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의 정의와 범주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바꾸는 새로운 '판' 읽기를 위하여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시기엔 으레 기술 자체에 매몰되어 전체 판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되곤 한다. 하루가 멀다 하며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술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변화 자체에 빠르게 올라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우려는, 특히 인력 수요와 산업 구조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도한 불안과 냉소를 촉발할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창작자의 대체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거나, 콘텐츠 산업 생태계에 대한 인공지능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식의 상반된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과도한 찬사, 혹은 필요 이상의 무시와 회피를 넘어서기 위해 균형을 찾는 노력이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과 맹목적인 기대, 환상의 영역들은 걷어 내고 실제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점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콘텐츠 기업에 가장 필요한 태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는 단순히 ‘창작’이란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획에서 제작, 유통을 거쳐 최종적으로 이용자와 만나기까지의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 단계마다 서로 다른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들의 역할과 가치 역시 각각의 특성을 갖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 역시 이러한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서 단계별로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터의 구조와 활용 방식, 그리고 콘텐츠의 존재 양식, 비즈니스 전략과 시장의 경쟁 환경 등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콘텐츠 기업과 콘텐츠 산업의 관점에서 우리의 작업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며, 콘텐츠의 결과물과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식을 전체적으로 바꿀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인공지능 도구들이 10년 뒤에도 여전히 쓰일 것인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의 도구들을 활용해서 콘텐츠 창작과 제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새로운 프로세스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후의 산업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인공지능을 개별적인 활용과 효율성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태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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