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성장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어우러지며 한국 문화의 힘과 가능성이 더 넓게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은 700만 명, 국내에 사는 해외 출신 이주민은 300만 명에 이른다. 정작 이주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통계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사회적 관심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
이주민은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수많은 심리적 어려움에 부딪힌다. 단순한 '이주의 스트레스' 만이 아니다. 우울과 불안, 가족 갈등 등 보편적 문제들이 겹쳐 나타난다. 그러나 상담이나 치료 접근은 쉽지 않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가 크고, 의료진도 이주민 진료 경험이나 문화적 이해가 부족하다.
이주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국 사회의 배타성과 획일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혼이주 여성은 시댁 간섭과 자녀 갈등, 전처의 흔적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다만 한국어를 배우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삶의 자리를 찾아간다. 다문화 가정 자녀는 부모가 겪는 차별과 폭력을 지켜보며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자기 뿌리와 정체성을 이해할 때 회복의 길이 열린다. 편견과 낙인이 개인의 마음에 남기는 상처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주민의 정신적 어려움은 이주 전의 경험 이주 과정의 고난 이주 후의 적응이라는 삼중의 과정이 겹치며 심화한다. 특히 자녀들은 부모의 언어와 문화적 한계를 대신 짊어지며 일찍 성숙해져야 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통역자' 역할을 하며 겪는 부담은 그들의 마음에 큰 짐이 된다. 이들의 정신건강을 세심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때 아픔을 겪었다. 특히 외국인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충분한 정신건강 지원을 하지 못했다. 당시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긴급히 '정신건강 상담 통역 가이드'를 제작했으나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은 미비했다.
최근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한국건강가정진흥원과 함께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자살 시도자 등을 위한 다국어 지원체계를 마련했다. 선진국에서는 통역이 정신건강 서비스에 기본으로 포함돼 있다. 한국도 언어 지원 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수련 역시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은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과정 초반부터 이주민의 상황을 이해하고 진료할 수 있도록 '문화정신의학'을 필수로 가르친다. 한국도 30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위해 전문 진료 체계 마련이 절실하다.
이주민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일은 단순히 그들을 돕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전과 건강과 직결된다. 이주민이 건강해야 우리 사회도 안전하다. 낯선 얼굴과 언어 뒤에 숨은 것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의 마음이다. 대화가 시작되면 이해가 열리고, 이해가 깊어지면 공감이 가능하다.
이주민과 자녀들이 더 이상 고립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관심과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함께 사는 사회'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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