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부킹닷컴, 메리어트와 구글의 전략
Publy에 파이낸셜 타임즈 큐레이터로 기고한 세 번째 글은 내 얘기보다는, 내가 일하고 있는 산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마침 최근에 에어비앤비, 메리어트, 구글 등 굵진한 회사들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서비스를 런칭하며, 여행산업이 격전지가 되고 있기에, 내 생각을 풀어내기에 적절한 타이밍인 것 같았다.
내 일, 내 일터, 내가 일하는 산업에 대한 얘기다보니, 글을 '줄이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얻은 점이 있다. 내 제품(Product)과 회사에서의 내 분야를 벗어나, (간만에)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가 속한 산업을 분석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몇 년 동안 한 산업에 있으면서 일하다보면 내가 꼭 전문가가 된 것 같이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 나를 둘러싼 부분을 더 넘어선 큰 틀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트래킹하고 앞을 내다보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내가 내 일에 대해 더 흥미를 갖게 되고,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 2019년 6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메리어트 호텔, 부킹닷컴(Booking.com), 에어비앤비. 숙박 산업의 큰 회사들이다. 이 세 회사는 각기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다른 이미지만큼 실제로 셋은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거나, 서로 다른 종류의 숙소(세그먼트)가 주 무대이다.
메리어트는 7000여 개의 오프라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호텔 그룹이고, 부킹닷컴은 고객을 전 세계에 있는 200만 개 이상의 숙소와 연결시켜주는 온라인 여행 에이전시이며, 에어비앤비는 개인의 집이나 방을 공유해줌으로써 게스트와 호스트를 연결하는 숙박 공유 서비스이다.
그 외에도 힐튼(Hilton), IHG(InterContinental Hotel Group) 등의 대형 호텔그룹, 온라인 여행 에이전시 업계의 또 다른 공룡 익스피디아 그룹(Expedia Group), 그리고 여러 국가와 지역의 수많은 온, 오프라인 여행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여행 전문 리서치 업체인 Skift의 리포트에 따르면, 2019년 호텔 업계의 전체 매출은 5500억 달러(약 651조 원)로 예상된다. 이는 2018년에 비해 4% 증가한 수치로 파이의 크기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제 여행자의 수 또한 계속 성장 중이다. 2019년에는 전 세계에서 14억 명이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 산업의 또 다른 큰 축인 항공 업계의 2019년 예상 매출은 6060억 달러(약 718조원)이다. 여기에 크루즈 업계, 티켓, 교통, 레스토랑 등 여행자가 여행 중에 경험하는 모든 접점에서의 매출을 합하면, 2조 달러(약 2370조 원)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여행 업계 트렌드의 가장 큰 축에 대해 말한다면,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업체가 더 큰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분야(세그먼트)로 진출하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숙소 예약 1위. 월 사용자 1500만 명.* 호텔 예약의 강자 부킹닷컴은, “온 세상 사람들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empower people to experience the world)”라는 미션 아래 비즈니스 모델을 다변화하고 있다. 자매회사인 렌터카닷컴(Rentalcars.com)과 병합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제품을 강화하고 FareHarbor를 인수함으로써 투어, 액티비티 분야로의 새로운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숙소뿐만 아니라 렌터카,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모두 연결시키고자 하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Booking.com plans to take on Airbnb (CHINA TRAVEL NEWS, 2018.2.22)
** 관련 기사: Rentalcars will join Booking.com and forge ‘BookingGo’ brand (CHINA TRAVEL NEWS, 2017.12.13) / Booking.com acquires FareHarbor: 5 fast facts about World’s leading Dutch travel fare aggregator (Silicon Canals, 2018.4.24)
현재 부킹닷컴 홈페이지를 보면 항공권 예약 메뉴도 볼 수 있다. 아직은 다른 항공권 예약 사이트로 단순히 연결해주는 단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보를 봤을 때, 부킹닷컴은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위한 통합 및 개선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어느 정도 포화 상태에 이른 호텔을 넘어, 에어비앤비가 강세를 보이는 홈(Home, 숙박 공유) 분야의 성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아직 인지도나 고객 경험은 에어비앤비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품 개발 및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보유한 숙소 개수가 5.7백만 개에 이르렀고, 이는 에어비앤비와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보인다.* 이미 부킹닷컴 전체 매출의 20%가 홈 타입 숙소에서 나오고 있다.**
* 에어비앤비의 숙소 개수는 대략 5백만 개 이상으로 보인다. 관련 자료: Airbnb Statistics (2019): Users, Booking, Financials & Fun Facts (Muchneeded.com)
** 관련 기사: Booking Holdings breaks down private accommodation revenues for first time, now at 20% of total (Phocus Wire, 2019.2.27)
반대로 숙박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는 프레임을 깨고 호텔로 사업 분야를 넓히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지난 4월에 호텔 업계의 유니콘 업체인 호텔투나잇(HotelTonight)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호텔투나잇은 주로 비체인 호텔(independent hotel)이나 부티크 호텔 위주의 숙소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깔끔한 디자인에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데, 특히 막바지(last minute) 숙소 예약에 특화된 서비스로 유명하다.
에어비앤비는 이 인수를 통해 2만 5천여 개의 호텔 리스트를 추가하게 될 뿐 아니라, 막바지 예약 분야의 강화, 그리고 특정 규제로 인한 주요 비즈니스(숙박 공유)의 제약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에서는 법적으로 호스트가 1년에 30일 이상 에어비앤비 렌트를 진행할 수 없다.
* 관련 기사: Airbnb Is Buying HotelTonight: Here’s What That Means (Skift, 2019.5.7) / HotelTonight and Airbnb Finalize Acquisition (Airbnb, 2019.4.15)
전통적인 여행 업체 외에, IT 업계의 트렌드에 있어 구글이 빠질 수 없다.
지난 5월, 구글은 구글의 여행 관련 서비스를 모은 구글 트래블(Google Travel)*의 데스크탑 버전을 런칭했다.* 해당 페이지에서 항공권, 호텔, 투어와 액티비티를 검색 및 예약(실제 예약은 파트너사의 웹사이트에서 진행)할 수 있다. 더불어 여행을 계획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툴(Google Trip) 기능도 있으며, 관광 코스 추천부터 여행 일정과 지역에 따른 날씨 확인까지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미 모바일에서는 작년부터 가능했던 일이다.
* 사실 구글이 공식적으로 구글 트래블이라는 이름을 발표하진 않았다. 위 이름은 저자가 해당 서비스의 웹페이지 주소 www.google.com/travel 을 참고해 사용했다. Skift라는 여행 전문 리포트 업체에서도 구글 트래블이라는 이름으로 리포트를 공개한 바 있다.
구글의 강점은, 지메일(Gmail)과 구글맵(Google Map)이라는 인프라성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웹사이트에서 항공 및 호텔을 예약한 내역을 지메일 계정으로 수신하면, 구글은 이를 읽어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짜고 구글 트립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다. 또한 구글맵을 통해 공항이나 시내 명소 근처의 호텔을 쉽게 예약할 수 있으며(여러 예약 사이트의 리뷰 점수도 보여준다),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장소를 토대로 관광 계획을 알아서 짜주기도 한다.
유럽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된 앱 중 하나가 구글맵이다. 차량 내비게이션 용도 뿐 아니라, 모르는 곳으로 이동할 때의 대중교통 정보도 쉽게 알려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 전에 맛집을 검색해놓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남긴 평점과 리뷰 덕분에, 저 식당 들어갈지 말지 고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앞서 열거한 여행 업체의 서비스는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서비스지만, 구글의 서비스는 계획뿐만 아니라 실제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사용하게 되는 서비스다. 숙박과 여행 산업의 비즈니스 경쟁자들이 ‘여행 경험의 시작과 끝'을 이으려고 하는 시점에서, 구글맵이란 서비스를 가진 구글은 이미 한 단계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한 회사가 여행 산업을 독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숙박 산업은 기본적으로 방을 찾는 사람(수요)과 방을 가진 사람(공급)을 연결해주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보수적인 산업이다.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고, 여러 비즈니스 모델이 공존하고 있으며, 로컬 업체도 많다. 기반 기술도 상당히 오래된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 한 회사가 모든 걸 다 하기는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다.
솔직히 누가 승자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회사 혹은 서비스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을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뻔한 소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고객의 여행 경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연결하여 ‘OO 없이는 여행을 가지도 못하겠어'와 같은 말이 나오게끔 하는 회사. 더하여 웹사이트 뒤에 있는 수많은 파트너, 즉 호텔, 액티비티 제공 업체, 레스토랑, 그리고 기술 협력 업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파트너'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본 글에서는 주로 온라인을 바탕으로 하는 여행 비즈니스 플랫폼, 그리고 고객 경험 등의 사용자적 요소를 얘기했지만, 여행 비즈니스의 중요한 다른 한 축은 바로 공급이다. 실제 숙소와 액티비티를 공급해주는 파트너가 있어야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 주요 관광지의 호텔에서 오랫동안 일한 분들 중에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우버의 등장으로 택시 업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로컬 사업을 하고 있는 소규모의 여행 관련 업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기회를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술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진짜 ‘파트너'로 대해야 신뢰가 쌓이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러 서비스를 지속적인 운영함으로써 쌓이는 수많은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를 잘 분류하고 분석하고 활용함으로써, 고객에게는 ‘하나의 유기적인 여행 경험'을 제공하고, 파트너들과는 데이터 통계와 인사이트를 공유해서 지속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스스로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계속 찾아나가는 회사가 살아남지 않을까 한다.
솔직히 현 상황에서 상당히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고 있는 기업은 구글이라고 본다. 이미 구글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검색과 지도라는 강력한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구글맵은 핵심 서비스다.
여행 산업의 버티컬을 모두 장악할 수는 없겠지만 사용자와의 접점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만큼, 구글은 여행 경험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연결하고 다양한 여행 상품의 메타 검색 서비스만 추가로 제공해도, 스케일과 수익성 모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자체적인 여행 서비스로 인한 수익이 빠르게 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 같은 온라인 여행 에이전시가 매년 조 단위(KRW)의 마케팅비를 구글에 지불하기 때문에, 구글은 여행 분야에서 단기 수익성 추구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고객 경험'에 포커스를 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 있다.
‘여행'이란 단어에 설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1년에 몇 차례 경험하게 되는 여행을 망치고 싶은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여행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걱정을 덜어줄 수 있어야, 소비자의 뇌리에 계속 남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