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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해를 돌아온 광복절/ 이현우


여든 해를 돌아온 광복절/ 이현우


돌아갈 고향집을 그리며 새벽 기차가 달린다.

철로 위에 놓인 것은 푸른 빛 강철이 아니라

여든 해 전, 피로 물든 아리랑 노랫말이다.

차창 밖, 들풀들이 태극기처럼 펄럭이며

가슴을 도려내는 바람은 만주 벌판의 먼지를

머금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지킨 민족의 영웅들

지울 수 없는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돌아오지 못한 청춘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남편, 누구의 형... 누구의 희망

누구의 생명줄 이었다

손톱만 한 독도의 간절한 소원은 파도였으며

밤마다 울먹이는 어머니의 등불이었다.

그 등불 아래, 우리는 역사책이 아니라

울음의 냄새로 광복을 배웠다.


2025년의 기차는 과거로만 달리지 않는다.

가고싶어도 갈 수 없는 녹슨 선로를 걷어내고

남과 북을 잇는 모진 목숨들 한숨을 깔고

대양 건너 이역만리 동포의 심장을

바늘로 엮어 한 줄기 숨결로 묶는다.

광복은 경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아니라

한글 모음 사이에 심장을 심는 일이다.


날마다 가슴치며 고향으로 떠나고 싶은

날들 도착역은 아직 이름도 없다.

붉은 곰, 늑대에 의해 그어진 3.8선의 통곡은

임진강 떠다니는 뱃사공의 통일도 아니며

값싼 낭만을 노래하는 평화일 수는 없다.

아니면 날마다 총부리 겨누며 새로 만든

서로의 심장을 향해 목청 높여 욕을 하는

귀가 아픈 확성기도 더더욱 아닐 것이다

소식없는 가족들 안부를 손꼽아 기다리는

박물관 잠든 철마는 잃어버린 땅을 달리고 싶다.

배가 고파 집을 버린 꽃거지는 무궁화 꽃잎날리는 날에

눈물도 말라버린 애국가처럼 태극기를 머리 위로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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