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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5와 LLM의 한계, 그리고 에이전트 시대

#AI 산업혁명

GPT-5와 LLM의 한계, 그리고 에이전트 시대의 도래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1. 서론 – GPT-5가 드러낸 벽

GPT-5의 등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지만, 동시에 대형언어모델(LLM)이 맞닥뜨린 벽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AI 업계에서 선구적 역할을 해온 데이비드 루안 아마존 부사장은 이를 두고 "AI가 또 한 번의 혁신을 위해 껍질을 깨야 할 시점"이라 말한다. 그는 오픈AI, 구글, 어댑트, 아마존을 거쳐 최전선에서 AI 진화를 이끌어온 인물로, GPT-2와 GPT-3, CLIP, DALL·E, 그리고 구글의 PaLM 개발에 관여했다. 이런 그의 발언은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AI 발전의 방향성을 짚는 현실적 경고에 가깝다.

그는 GPT-5를 포함한 최근 프런티어 모델들이 성능 면에서 수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더 이상 '새로운 차원'의 도약이 아닌, 이미 익숙해진 길을 조금 더 다듬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AI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은 곧 혁신의 고갈을 의미한다. GPT-5가 보여주는 성취 뒤에는 '한계'라는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2. 플라톤의 동굴과 LLM의 현실

루안 부사장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들어 LLM의 본질적 한계를 설명한다. 인간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하듯, LLM은 훈련 데이터 속 그림자만을 현실로 인식한다. 즉, 실제 세계를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라는 단면을 모방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비유는 오늘날 LLM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더 많은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투입되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예측'의 구조 속에 갇힌 LLM은 언어를 능숙하게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인과를 이해하거나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내는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멀티모달과 추론 모델 역시 이전보다 성과를 내기 어려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AI 발전은 단순히 데이터와 파라미터의 크기로 승부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GPT-5가 상징하는 것은 LLM의 영광스러운 정점이자 동시에 성장의 정지선이다.


3. 에이전트, AI의 새로운 돌파구

루안 부사장이 내세우는 해법은 '에이전트'다. 그는 "현재의 챗봇은 친숙한 인터페이스일 뿐, 진정한 에이전트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챗봇은 자기회귀적(next-word prediction) 구조에 갇혀 있으며, 따라서 진정한 인과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에이전트는 단순 대화가 아닌 의사결정을 수행해야 한다.

아마존에서 추진하는 전략은 ‘노멀코어(normcore) 에이전트’다. 이는 세 번 중 한 번만 작동하는 화려한 기능이 아니라, 99%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일상적 워크플로우에 초점을 둔다. 본질적으로 에이전트는 ‘멋진 기술 시연’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접근은 AI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에이전트는 단순히 지식을 흉내 내는 모델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행동하며 과제를 해결하는 존재다. 루안이 이끄는 ‘아마존 AGI SF 랩’과 브라우저 에이전트 ‘노바 액트’는 이 가능성을 실험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


4. AGI 정의의 재구성

2018년 오픈AI가 정의한 AGI는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작업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루안은 이제 이 정의가 구시대적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AI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으며, 앞으로의 AGI는 "인간이 컴퓨터에서 원하는 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느냐"가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성능이 아닌 사용자 경험과 신뢰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인간이 원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반복적으로,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AGI의 본질은 ‘초지능’이 아니라 ‘초실용성’에 가까워지고 있다.


5. 결론 – LLM의 끝과 에이전트의 시작

GPT-5는 분명히 뛰어난 모델이다. 그러나 그 성과가 오히려 LLM이 닿을 수 있는 지평선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더 이상 '데이터와 연산량의 경쟁'으로는 혁신을 이끌 수 없다. 이제 AI가 나아갈 길은 에이전트다.

루안 부사장은 "앞으로 5년 안에 지금은 상상조차 못한 핵심 제품 형태가 6~7개 더 등장할 것"이라 전망한다. AI의 새로운 진화는 단순한 대화나 코딩을 넘어서, 인간의 삶과 산업을 바꾸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시작될 것이다.

GPT-5가 보여준 벽은 곧 새로운 문을 여는 신호다. 그 문 너머에서 AI는 더 이상 단어를 예측하는 기계가 아니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에이전트로 거듭날 것이다. LLM의 시대가 막을 내릴 때, 비로소 에이전트의 진정한 서막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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