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14. 2018

집사로 산다는 것

THE BIG ISSUE KOREA 190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깊어지는 고민이 있습니다. 6년 전까지만 해도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찬바람이 불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바닥을 보며 걷게 됩니다. 주변에 맴도는 찬 기운을 가장 먼저 견뎌야 할 존재. 길고양들 생각이 떠올라서죠. 20년 넘게 슬슬 피해 다니던 그들을 제 발로 찾아다니게 되다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사실, 집사가 된 건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었어요. 어느 봄날,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동생이 회색 아깽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혼자는 쓸쓸할 것 같다며 데려온 또 다른 한 마리는 새하얀 털에 노란색과 파란색 눈을 지닌 오드아이였어요. 그렇게 덜컥 두 마리의 집사가 되었지만, 몇 달간은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강아지와 달리 쉽게 경계를 풀지 않는 눈빛. 달려와 안기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는 냉랭한 행동. 같이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뚝뚝한 이들은 오직 사료를 채워줄 때만 '골골골' 신기한 소리를 낼 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보다는 두 고양이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거니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둘 사이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어요. 틈만 나면 발톱을 세우며 서로를 경계했고, 누군가가 피를 봐야만 싸움이 끝났습니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죠. 가족이 사는 집과 당시 제가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각각 격리시키기로. 그렇게 저와 하얀 고양이 '하미', 둘만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랴부랴 하미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인생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한 생명을 평생 보살펴줄 수 있을까. 그럴 여유도 공간도 충분치 않은데,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하미가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제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독립적인 동물이라고 해도 애정을 필요로 하는 건 고양이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나서 더 신경 쓰셔야 합니다."


제 입으로 사료 먹을 힘조차 없던 하미를 끌어안고 병원으로 달렸던 그날,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어요. 제 공간에 핑크빛 젤리 같은 발을 내딛던 날인지, 멀찍이 자던 녀석이 처음으로 제 머리맡에서 잠든 날인지 확실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했습니다. 그동안의 편견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만큼, 귀한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었죠.



World For All 'Pet Adoption Campaign' (출처: Charitypaws.com)



"THERE'S ALWAYS ROOM FOR MORE. ADOPT."


그래서 이 광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나 봐요. 인도의 'World For All'이라는 동물 보호 협회에서 진행한 이 캠페인은 반려동물의 입양률을 높이기 위해 연인, 가족, 그 모든 관계 안에서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은 반려동물의 모습을 담았죠. 이 광고를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하미와 살게 되었을 때 그토록 고민스러웠던 건 함께 살 여유나 공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함께할 마음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요. 비록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이제 새로운 집에 새로운 집사까지 생긴 하미는 하루가 다르게 애교가 늘고, 새 반려인이 된 남편은 저와 같은 수순을 밟아가고 있어요. 처음엔 무서워하다가 그다음엔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버리고 마는, 흥미로운 과정을요.


"행복을 미루는 고양이는 상상할 수 없다.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지금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애묘인이라면 한 번쯤 본 적 있을 스노우캣 작가님의 책을 보면 이런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언뜻 까칠하고 도도해 보이는 고양이가 실은 가장 자신답게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때론 조심스럽게 다가와 얼굴을 비비고, 때론 거리를 둔 채 홀로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는, 순간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존재들. 멀리 가버렸나 싶으면 또 어느샌가 성큼 다가와 곁을 지키고 있는 신기한 존재들. 그러고 보면 제가 하미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한 건 저만의 착각이었나 봐요. 혼자 살던 시절, 밤새 켜 두었던 형광들을 처음으로 끄게 해 준 게 바로 하미였으니까요.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말이 있죠. 그때가 되면 꼭 묻고 싶습니다. 나도 너만큼 좋은 반려인이었는지, 나도 너만큼 많은 사랑을 주었는지.






이전 07화 점심은 혼밥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