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넘어지는 삶 속에서 배우는 마음.
퇴사를 하고 긴 연휴가 흘러갔다
쉬는 동안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왔다
모두가 쉬어 가는 연휴였고 정작 며칠 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불안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나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의 편차가 심한 아이였다
좋아하는 건 꾸준히 좋아하고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반면, 싫어하는 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던 아이.
유독 나는 체육 시간을 가장 싫어했던 것 같다
어떤 학년에는 체육 선생님을 잘못 만나면 체육을 못한다는 이유로 맞기도 했으니까.
달리기가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거야?
앞 구르기, 물구나무서기를 못한다고 인생이 달라져?
그렇게 내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는 일에,
굳이 그렇게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아이였다.
성인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시기는 25살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려고 애썼지만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던 상사, 부당한 대우는 참지 말고 나오면 늘 책임져 준다던 아빠에게 오히려 더 힘들다며 징징 거릴 수 없었던 사회초년생 시절. 억울함에 펑펑 울기도 했고, 하루하루 표정을 잃어 가는 날들이 존재했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았던 날,
너무 아름 다운 하늘이었는데 마음이 맑지 않았던 탓인지 우울감이 심하게 밀려왔다.
어렵게 했던 취업이었으나 결국 또 내 발로 나왔기에 자존감은 더 바닥을 치고 내려갔다.
모두가 취업을 잘하고 잘 지내는 것만 같은데 나에게는 모든 게 어렵게만 느껴지는지, 매일 밤 이력서를 넣고 다음날 취업 연락을 기다리던 날들. 여행은 너무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기력했던 날들. 지독하게 외롭고 추웠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늘 내가 원하는 방향을 쫓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을 돌려 보면 물론 완벽한 선택이 아니었던 적도 있다.
아쉬움이 남기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싶은 날들. 작년, 수술을 하고 안정을 되찾고 싶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했으나 실적 업무가 있었던 곳, 긴 교육 기간을 마치고 이제야 조금 꽃이 피어나려나 봄이 오려나 하고 기대했던 나에게 또 한 번 쉬어 가라고 몸은 신호를 보냈다
한송이의 꽃이 피자마자 꺾여버렸다 해도 너무 좌절하지 마십시오.
꽃을 피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실만큼은 남습니다.
그 애씀으로 또 다른 꽃을 피울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당신 안에 이미 생겼습니다
< 나를 살게 하는 것들>
수술 후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또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독 예민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무덤덤한 척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탓일까. 결국 몸이 탈이 나 버렸다.
꽃이 필 것이라고 기대했던 내 삶에 또다시 정지 버튼이 눌러진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척척 잘 걸어가는 것만 같은데 나는 왜 자꾸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일까. 25살의 시간이 지나 35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걸까. 예전 글에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문장을 자주 적곤 했다.
나는 과연 단단한 사람일까. 여전히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 과정 중에 서 있는 사람일까.
여전히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또 넘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노력했던 시간의 단단함이 내 안에 또 자리 잡았으려나. 여전히 알 수 없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새싹이 되어 피어나기 위한 준비를 했던 꽃, 얼마큼 자랐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또 한 뼘 자라난 걸까.
알 수 없는 생각들에 마음속에 소나기가 내리던 날,
책 속에 한 문장이 또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지만,
요즘은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참 좋다.
유독 나무가 예쁜 5월의 시작, 푸릇푸릇한 나무가 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출 때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구름까지 예뻤던 날, 나무와 바람 그리고 하늘. 내가 좋아하는 자연이 또 나를 한번 위로해 주었던 시간이었다.
누군가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일으키려고 하면 우리는 영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조그마한 도움, 살며시 기댈 수 있고 받쳐 줄 수 있는 작은 돌멩이와 같은 누군가가 있을 때,
그가 곁에서 부드러운 흙으로 우리의 상처를 가만히 덮어줄 때 우리는 다시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 나를 살게 하는 것들>
작년 수술을 마치고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지인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다정한 안부를 물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인들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 가느라 또는 그 정도의 마음이 아니어서 일까.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다시 같은 상황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상황이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누군가의 큰 위로와 도움이 아니라 늘 곁에서 머물러주는 고마운 돌멩이 같은 누군가의 덕분이었던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말을 아끼게 된다.
나의 작은 마음 하나 까지도 공감받기를 바랐던 마음은, 이제는 함께 소소한 이야기로 꽃 피우는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슬픈 이야기를 너무 슬퍼하기보다 기쁜 이야기를 더 축하해 줄 수 있는 사이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
나를 살게 하는 사람들,
나를 살게 하는 마음들.
그 모든 것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믿는다.
노력했던 마음, 소소하지만 다정한 마음,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 내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용기.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모두 내 안에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야 함을 배운다.
자꾸만 넘어지는 삶 속에서,
나는 앞으로 또 언제 어떻게 넘어 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작은 돌멩이처럼 나를 응원해 주는 소중한 이들이 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용기를 내는 단단한 내가 있다.
고요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힘들 때 나 역시 돌멩이 같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사랑하며,
내 마음속에 쾌쾌한 감정들이 쌓이지 않도록 자주 훌훌 털어 내며 살아가야겠다.
몸은 다시 한번 나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늘 내 마음속 정원에 다양한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던 나를 안아 주며,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주며 다정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니까.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