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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흩어진 자리에서 피어난 다정함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온기.

by 윤슬
사랑이 끝나면 공허함만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자리에 다정함이 천천히 자라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순간의 소소한 사랑을 좋아한다.


사랑에 진심이었지만 연애에는 진심이지 못했던 시기를 지나 문득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궁금해졌다

이 순간을 흘려보내면 어쩌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법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던 시기였다


낯선 사람, 낯선 공기, 낯선 마음들이 신기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따스하게 느껴졌고 맞지 않는 부분보다 맞는 부분을 더 찾으려고 애썼던 시기를 지나왔다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면 그 사람의 하루가 궁금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밥은 잘 먹었는지,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나누고 싶지 않아 했던 사람과 내 하루를 온전히 나누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우리는 분명 연결되어 있었지만 자꾸만 끊기는 느낌이었다

어떤 카페에서는 와이파이의 신호가 약하듯 접속이 되었다가 자연스럽게 끊겨 버리는 느낌이 드는 날들이 많아졌다. 서운함을 이야기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그는 빠른 사과와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그 말을 믿었던 것 같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또 믿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그 사람을 보고 기뻤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몸이 아팠던 시기에 마음도 함께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씩씩하게 이겨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안아 주고 있는 시기에 그 사람과의 통화에는 온통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거지?'


분명했던 건 우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 차 버렸다.

'뭐가 또 서운 한 거야?'라고 묻는 그 사람에게 '아니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거 같아'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노력한다면 그 사람도 변할 거라는 믿음과 기다림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결국 사랑이라고 믿었던 시간들은 그렇게 흩어져 버렸다.



시간이 필요하다던 그 사람에게 '시간을 온전히 가져도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나의 시간도 너의 시간도 모두 소중하기에,

너와 연결이 끊어진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너무 명확히 알게 돼 버렸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던 시간은,
나 혼자 연결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구나.


그 사람과 연결이 끊겼던 시간은 오히려 마음이 평온했다

'넌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긴 시간을 함께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 속에서 남아 있는 건 깊은 공허함이었다


함께 카페에 가면 산책을 하고 오겠다며 나를 혼자 두고 산책을 하던 사람, 책임감이 가득하다고 말했지만 늘 많은 것을 내가 책임지게 했던 사람, 내 배려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물론 좋았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지만 결국 나 혼자 애썼던 시간들이구나 싶어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 갈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 같아. 잘 지내!"


그 사람과 마지막 통화에서 그는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한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감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네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냐고 말이다. 그렇게 감정적인 통화를 끝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통화하고 싶지 않고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넌 또 한 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난 그 시간을 기다렸지만 결국 너는 아무 말 없이 없었다.

인생에도, 사랑에도 모든 순간에는 타이밍이 있다. 내 마음이 완벽히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 준건 모두 너였다. 오히려 고마웠다, 그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지 않게 나를 문 밖으로 내보내준 너에게.



얼마 전 곡성에 다녀왔다.

눈부시게 아름 더웠던 별을 이번에는 자리를 잡고 앉아 오랜 시간 눈에 담았다


가을 하늘에 유독 반짝이던 별이 가득했던 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언니! 봤어?"


함께 별을 보던 언니에게 방금 별 끝에서 빛나던 별똥별을 보았냐고 물었다. 언니도 나와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는지 깊게 빛나던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처음 보는 별똥별에게 간절히 빌었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더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고.


우리 조금 더 행복한 방향으로 가요!

또 다른 사랑에 대해 고민하던 이와의 대화에서 걱정하는 이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랑이 흩어진 자리에는 어떤 그림자가 남을지 모른다는 걱정보다는 앞으로의 시간을 우리가 더 어떻게 행복해질지를 고민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너를 온전히 응원한다고, 너는 할 수 있다고. 그 시간들도 분명 소중했지만 앞으로의 시간이 더 소중하기에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결국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내가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믿기에.



오랜만에 윤슬처럼 반짝 이는 대화였다.


분명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는데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화가 편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특유의 밝음이 흘러나왔다. 불편하지 않은 느낌, 온전히 내 모습으로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다는 감각이 진짜 '나'를 꺼내 이야기를 했던 기억. 그 시간의 다정함이 다시 한번 나를 흔들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 갈래'


온전히 나답게 빛나는 모습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 빛을 알아봐 주는 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의 끝에는 늘 무언가가 남을까 궁금했는데 결국 사랑이 흩어진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온전한 '나'였다


여전히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나다운 모습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 다정한 나.


이별은 끝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된 계절이었다
사랑이 흩어져도 내 마음은 여전히 봄을 믿는다


결국 사랑이 흩어진 자리에 내가 어떤 마음을 남길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고, 사랑을 주고받는 다정한 관계를 좋아 하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랑의 끝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사랑이 흩어진 자리에 어떤 상처가 남지 않을까 너무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 내가 느끼는 마음이 정답이라고 믿으면 된다.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결국 온전히 '나'를 믿고 지켜주는 사람은 '나' 이니까.


사랑은 흩어졌고 그 자리에는 여전히 다정함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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